‘급급매’도 비싸다…아파트 경매 ‘주인 찾아 삼만리’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2.10.03 10:05
  • 호수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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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하락에 지방에서는 감정가 반값 낙찰 속출
물건 쌓이며 서울에선 전셋값 수준 매물도

최근 계속된 집값 하락과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부동산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런 위험 회피 심리는 경매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1년 전만 해도 아파트가 경매로 나오면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어 응찰자가 몰렸지만 최근에는 유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내몰리는 차주는 늘어난 반면 경매로 아파트를 값싸게 마련하려는 수요가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연이은 유찰로 서울에서는 전셋값 수준의 매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지방에선 감정가의 반값에 낙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장기화할 경우 유찰 횟수 증가는 물론 매물이 쌓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경매시장이 주춤함에 따라 미래 주택시장에 대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최근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아파트 매매 건수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공인중개소에 붙은 급매물 전단ⓒ연합뉴스

2회 유찰은 기본…경매시장도 관망세

법원 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경매가 진행된 전국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중 2회 이상 유찰 이력이 있는 물건(지분매각·일부지분 제외) 수는 190건에 달했다. 지난 8월 165건 대비 15% 증가했다. 앞서 4월 106건, 5월 78건, 6월 109건, 7월 95건 등 경매 건수가 100건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들어 유찰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3회 이상 유찰된 경우도 지난달 82건으로 8월(47건)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회 이상 유찰 물건이 크게 증가한 이유는 집값 하락 분위기에 관망세가 짙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통상 경매 물건의 감정가는 최소 6개월 전에 산정된다. 최근 나오는 물건들의 경우 지난해 부동산 활황기 가격이 반영된 셈이다. 집값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에서 참여자들이 경매 응찰을 꺼리는 이유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 유찰 횟수가 증가하고 매물이 쌓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매시장 지표도 최근 3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지난 8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85.9%로 2019년 9월(84.8%)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1억원인 아파트가 8590만원에 낙찰됐다는 의미다. 낙찰률(경매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 역시 전월(43.3%) 대비 1.8%포인트 내린 41.5%로 집계됐다. 경매에서 낙찰률 하락은 유찰에 따른 가격 하락을 기대하고 물건에 응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균 응찰자 수는 5.6명으로 지난 4월(8.0명)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대출 규제가 여전한 데다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며 경매 지표들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면서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내몰리는 차주는 늘어난 반면 수요자들은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매매시장에서는 급매물 위주로만 거래되면서 경매 물건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며 “감정가가 최소 6개월 이전 가격임을 감안한다면 최근 시점으로 가격 조정이 이뤄지는 올 하반기 이후에나 부동산 경매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경매 물건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부동산 경·공매 플랫폼 탱크옥션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경매 건수는 지난 8월 105건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았다. 부동산 시장이 타오르던 시절 유행했던 ‘갭투자’(전세 낀 매매)나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주택들이 하락장과 늘어나는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경매시장에 나온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국으로 보면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아직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진 않는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1871건으로 7월(1597건)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5월(1950건)보다 적었다.

물건이 쌓이고 유찰이 거듭되면서 지방에선 최초 감정가 대비 절반이 채 안 되는 가격에 낙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경매가 유찰될 때마다 최저 경매 가격은 통상 20~30% 낮아진다. 경남 사천시 서동 ‘동남아’ 전용면적 87㎡는 올해 1월 감정가 6600만원으로 경매를 시작해 4회 유찰 후 지난달 3126만7000원에 낙찰(응찰자 6명)됐다. 충북 음성군 음성읍 ‘프리안’(감정가 1억3100만원) 전용 80㎡ 역시 4회 유찰 끝에 6512만원에 낙찰(응찰자 5명)돼 낙찰가율 49.7%를 기록했다. 두 물건 모두 등기나 임차권 등과 관련해 특이 사항이 없는 정상 물건이다.

서울 경매시장도 수요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경매로 나온 서울 아파트 물건(지분매각·일부지분 제외)은 38건이다. 이 중 한 차례 이상 유찰을 겪은 물건은 20건(유찰 1회 15건, 2회 2건, 3회 3건)에 달한다. 최저 입찰가가 전셋값과 비슷한 물건도 등장했다. 지난 7월 경매시장에 나왔으나 연이어 유찰된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힐스테이트’ 전용 85㎡의 최저 입찰가는 6억1568만원까지 떨어졌다. 현재 이 단지 같은 평형의 전세 호가는 6억원에 형성돼 있다.

 

내년 초는 돼야 경매시장 풀릴 듯

업계에선 부동산 시장 불황과 금리 인상의 여파로 인한 물건이 내년 초부터 경매시장에 풀릴 것으로 봤다. 채무불이행이 경매까지 이어지려면 최소 반 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탱크옥션 관계자는 “올해 물건 수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위주로 증가하고 있다”며 “현재 흐름으로 볼 때 4분기엔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물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전국적으로 낙찰가율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며 단기간 내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고 했다.

경매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는 모양새다. 경매시장은 일반적으로 주택시장의 선행지표로 불린다. 낙찰가의 경우 주택시장의 매도 호가나 실거래가의 최저가를 바탕으로 써내는 가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매지표가 하락하고 유찰 건수가 늘어난다는 건 향후 집값 하락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있다”며 “거래 절벽으로 급매물도 소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매시장으로 가는 수요자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출 규제가 여전한 데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있어 당분간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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