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삼성’ 허문 자리에 ‘창조의 삼성’ 세워라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0 13: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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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주가 하락은 창조적 미래 전략 부재 탓”
‘이재용 시대’엔 컨트롤타워 아닌 서포트타워 세워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임박했다. 삼성그룹의 사장단 인사가 12월초에 진행되는 걸 감안할 때, 그의 회장 승진은 11월에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회장 승진과 함께 그룹의 사업 및 조직개편 등 쇄신안 역시 공개될 것으로 재계는 관측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조직개편 컨설팅을 의뢰한 바 있다. 해당 컨설팅의 핵심도 사업 및 조직개편에 방점을 두고 있다.

삼성이 BCG에 컨설팅을 의뢰했을 때부터 부각된 이슈는 바로 그룹의 컨트롤타워 재건이었다. 이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그룹 거버넌스에 대한 자문을 의뢰하면서 컨트롤타워 복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법감시위가 컨트롤타워 신설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면 당연히 BCG는 그 필요성을 증명하는 다양한 근거 자료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컨트롤타워 제2막은 비공식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2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월21일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해 건물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미래에 가야 할 삼성의 길은 다르다

1959년 회장 비서실로 시작된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는 국내 대기업의 컨트롤타워, 헤드쿼터의 효시와도 같다.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로, 다시 전략기획실에서 미래전략실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해당 조직의 기능은 늘 변함이 없었다. 컨트롤타워는 그간 비주력 계열사 매각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M&A에 대한 의사결정 및 각 계열사의 수익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왔다. 관리의 삼성은 컨트롤타워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삼성의 성공은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과 컨트롤타워의 관리 역량을 토대로 계열사가 수익 관리를 잘해 왔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성장의 동인(動因)으로 알려진 미래전략실이 2017년 공식적으로 해체된 후 그룹 내 일각에서 끊임없이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거론한 이유다. 그룹의 통일된 리더십이 부재하고 명확한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자 계열사 주도의 M&A 및 사업관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언론에서도 발맞춰 삼성의 컨트롤타워 복원을 요구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부활이 필요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가전, 반도체, 스마트폰 이후 삼성의 신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데, 이를 풀기 위해서는 미래 핵심부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컨트롤타워를 주문하는 이들은 해당 조직의 역량과 헌신이 지닌 강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 비서실, 구조본, 미래전략실에 근무한 이들의 충성도와 애사심은 다른 조직의 구성원들을 능가한다. 국내 방송사가 삼성의 컨트롤타워를 조명하기 위해 애를 썼음에도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못한 이유는 해당 조직에 근무한 이들이 모두 인터뷰나 자료 제공을 거부한 데 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배신한 이가 나올 수는 있어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한 이가 배신할 일은 없다는 농담이 재계의 평가일 정도다.

컨트롤타워 구성원들의 높은 충성도와 헌신, 뛰어난 관리 역량은 60년 넘게 그룹의 성장을 일궈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다른 기업들도 비전이 모호하다, 조직의 방향성이 일관되지 않다는 비판이 발생할 때마다 컨트롤타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해 왔다. 단적인 예로, 지나친 사업 확장에 따른 비판이 일자 카카오는 곧바로 컨트롤타워를 신설해 관련 문제를 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의 삼성이 가야 했던 길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삼성이 가야 할 길은 다르다. 환경의 불확실성은 그 강도를 더해 가고 있고, 미래는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경영학계의 정설이 된 상황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관리와 통제를 통해 계열사의 사업관리에 집중해온 컨트롤타워의 기능은 새로운 환경, 창조와 혁신을 위해 자율경영이 일상화된 현시점에서는 그리 타당하진 않다.

국내 대다수 기업에 존재하는 컨트롤타워의 핵심부서는 단언컨대, 재무팀이다. 일부 기업은 이를 사업팀, 운영팀 등으로 달리 부르고 있지만 재무부서가 가장 막강하다는 데 이견을 제기할 이는 많지 않다. 컨트롤타워는 말 그대로 수익관리에 초점을 둔 운영 효율성을 토대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신사업을 위해 과감한 실험과 투자 등 효과성에 초점을 둔 계열사와, 효율성에 초점을 둔 컨트롤타워는 종종 갈등을 빚어왔다.

불확실한 환경 그리고 운영 효율성이 아닌 혁신 효과성을 강조하는 경영전략의 변화, 글로벌 기업에서 삼성 임원으로 최근 영입된 젊은 S급 인재 등은 관리와 통제보다 탐험과 실험 등 변화를 원한다. 또한 삼성은 전자, 생명, 물산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사업지원TF 등 준컨트롤타워가 존재한다. 고객과 젊은 임직원들의 생각, 글로벌 패러다임 등 미래는 변화하는데 삼성만 과거로 회귀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삼성의 경쟁 상대는 이제 국내엔 없다. 사업 영역을 불문하고 구글, 애플, 테슬라, 아마존, TSMC 등 글로벌 초일류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혁신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 중 헤드쿼터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컨트롤하면서 사업 방향을 조정하는 곳은 없다.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자율경영과 권한 위임을 토대로 다양한 실험을 장려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추동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컨트롤타워가 만병통치약일까?

이병철 회장은 관리의 삼성을 통해 삼성을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세인 이건희 회장은 관리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경영하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관리가 아닌 창조로 나아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업관리를 위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계열사의 실험과 탐험을 장려하고 임직원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혁신관리에 기반을 둔 ‘서포트타워’를 성장의 실마리로 내놔야 한다.

대다수 전문가는 현재 삼성전자 주가 하락의 요인으로 창조적인 미래전략 수립의 부재를 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관리의 삼성이 열었던 성장의 문을 닫고 창조의 삼성이 열어야 할 혁신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린다 힐 교수는 관리와 통제로는 집단 천재성(Collective Genius)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에 필요한 해답은 컨트롤이 아닌 집단 천재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서포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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