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정해 놓고’ 평행선 구례 문척교 공청회…철거 예고편?
  • 정성환·전용찬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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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원인 호도” vs “범람 예방, 철거 최선”…10월 철거시한 닥쳐 주민·구례군 마찰 심화
구례군, 재해 예방사업 명분으로 철거 나서… 옛 문척교, 재작년 섬진강 범람 희생양되나

전남 구례군 지역사회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철거를 놓고 시끄럽다.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 옛 문척교를 ‘재해 예방’ 명목으로 문척교를 철거하려 하자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 다리 철거 여부를 놓고 환경부, 구례군과 지역주민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환경부와 구례군은 “수해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해선 철거가 최선이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역 주민들은 “문척교는 수해 원인이 아닌 데도 둔갑시켰다”며 보존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막판 반전의 기대를 모았던 주민공청회마저 양 측의 기존 입장만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나고, 행정당국의 철거 강행이 현실화되면서 환경부, 구례군과 주민들의 마찰이 심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전남 구례군 지역사회가 교량 철거를 놓고 시끄럽다. 구례군 옛 문척교.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 ‘재해 예방’ 명목으로 문척교를 철거하려 하자 문척면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옛 문척교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구례군 지역사회가 교량 철거를 놓고 시끄럽다. 구례군 옛 문척교.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 ‘재해 예방’ 명목으로 문척교를 철거하려 하자 문척면 주민들이 반대하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옛 문척교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50년 된 추억 서린 옛 다리 침수 주범 ‘낙인’…철거·대체교 설치에 주민 반발

1972년 놓인 옛 문척교는 섬진강 사이로 나눠진 구례읍과 섬이었던 문척·간전면을 이었다. 건설된지 올해로 딱 반백년이다. 길이 420m·폭 7.5m인 이 다리는 50년간 백운산 인근 문척·간전면 주민이 구례읍 내로 오갈 수 있는 역할뿐 아니라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지역 상징물로 자리매김했다. ‘역사와 문화, 생계, 아름다운 길과 길을 이어주는 다리’이라는 게 주민 정서다. 문척교가 이어주는 삶은 10개 마을 725가구 1293명에 이른다. 

이 같은 주민적 애정에도 불구하고 ‘철거’라는 운명에 처한 건 2020년 8월 발생한 섬진강 범람 후폭풍이 크다. 당시 기록적인 폭우로 구례읍 양정마을과 5일시장 비롯 구례 읍내가 물에 잠겼는데, 양정마을 부근에 위치한 문척교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다리가 섬진강 제방보다 낮게 설치돼 있어 부유물 등이 걸렸고, 하천 설계 기준상 계획 홍수위보다 교량 높이가 낮아 범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재해 예방 당국인 환경부 산하 영산강유역환경청과 구례군은 이 같은 진단을 기초로 문척교 철거와 대체 인도교 설치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철거 시한으로 잡은 게 올 10월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주민들은 지난달 20일 대책위를 공식 출범시켰다. 앞서 8월 25일 구례군의회도 나서 ‘구) 문척교 철거 반대 건의문’을 채택했다. 

5일 오후 전남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에서 주민 대표 패널로 참석한 김창승 농부시인이 “문척교가 2020년 8월 8일 수해 원인이 아닌데도 원인으로 둔갑시켰다”며 “섬진강댐을 준설하지 않은 등 섬진강댐 관리방법상 문제가 원인으로, 수해는 갑작스런 대량 방류와 폭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일 오후 전남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에서 주민 대표 패널로 참석한 김창승 농부시인이 “문척교가 2020년 8월 8일 수해 원인이 아닌데도 원인으로 둔갑시켰다”며 “섬진강댐을 준설하지 않은 등 섬진강댐 관리방법상 문제가 원인으로, 수해는 갑작스런 대량 방류와 폭우 때문”이라고 관련 자료를 제시하며 항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주민들은 “수해 원인이 문척교 때문”이라는 전제 자체를 부정한다. 옛 문척교 보존을 위한 구례군민 대책위는 보도자료에서 “섬진강댐과 주암댐의 유례없는 대량방류로 인한 참사였고, 양정마을·구례읍 침수의 직접적 원인은 서시천 제방 붕괴와 수중보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옛 문척교 구조물이나 걸린 쓰레기가 원인이었다면 다리 상류 지역이 침수됐어야 한다. 1972년 준공 이후 교량이나 교각이 수십 번 침수됐으나 월류되거나 홍수가 난 사실이 없다“며 ”지난 2002년 수해는 문척교 때문에 발생한 물난리가 아닌데도 군은 문척교가 수해 원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문척교 교량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반박 자료도 내놨다. 대책위는 “2020년 2월 옛 문척교 정밀안전진단 용역 결과 C등급이었다”면서 “이는 전체 시설물의 안전엔 지장이 없고, 내구성·기능성 저하 방지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행정당국의 주민 의견 수렴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2020년 8월 ‘구) 문척교 철거 또는 활용 방안 검토’라는 군수 지시에 따라 주민 의견 수렴이 이뤄졌다. 이 결과 구례읍에선 철거 찬성이 많았지만, 문척면은 10개 마을 중 2개 마을에서만 찬성했다.

문척면 주민 대다수가 철거를 반대하는 건 ‘보행 위험’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바로 옆에 새 문척교가 있지만 차량만 이용할 수 있어서다. 새 문척교는 1997년 준공됐다. 2차선 도로로 갓길이 있지만, 보행로와 연계돼 있지 않아 걸어서 이동하는 건 위험하다는 게 주민들 입장이다. 주민들은 “구례군은 철거 뒤 700~800m 떨어진 곳에 보도교를 설치할 계획이지만 해당 장소는 노인들이 타는 전동 휠체어 진입이 어려운 데다 마을 생활권과도 동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구례군은 지난해 3월 익산국토관리청에 해당교량 철거를 요청했다. 옛 문척교의 기둥 폭과 교량·제방 높이가 낮아 홍수 등 재해 위험이 크다는 게 구례군과 영산강환경청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들 기관의 진단은 이렇다. “문척교의 상판 높이는 하천기본계획상 수위 상승 시 여유고가 7.93m 부족하고, 교량 기둥 간격도 60m 좁게 설계됐다. 50년 전 건설된 문척교는 교각이 10m마다 하나씩 있는데, 70m마다인 최근 다리에 비해 촘촘하다. 이는 부유물이 교각에 걸릴 가능성을 키워 범람의 원인이 된다.”

구례군 관계자는 “이 다리는 50년 전 지어져 현 ‘100년 빈도의 홍수 국가 하천 설계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특히 밑 부분의 철근이 드러나 노후화가 심하다. 기둥 간격도 좁아 부유물이 끼어 물 소통을 정체시킨다. 철거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전남 구례군 지역사회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철거를 놓고 시끄럽다. 구례군 옛 문척교.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 ‘재해 예방’ 명목으로 문척교를 철거하려 하자 문척면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5일 오후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구례군 지역사회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철거를 놓고 시끄럽다. 구례군 옛 문척교.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 ‘재해 예방’ 명목으로 문척교를 철거하려 하자 문척면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5일 오후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 ⓒ시사저널 정성환

주민들 ”답정너공청회 요식 절차“ vs 영산강환경청 ”국가차원 수해 예방“

이처럼 입장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구례군과 영산강환경청은 5일 오후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처음으로 열린 주민공청회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김순호 구례군수가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8월 24일 철거 철회 공문을 관계기관에 발송하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군수가 먼저 철회 약속을 이행하고 공청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당국의 계획이 수정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공청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군수의 명확한 입장 선회는 없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은 이번 공청회가 ‘답정너 공청회’라며 반발했다. 자연스럽게 비판의 화살은 구례군정 수뇌부로 향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공청회장에서 ‘김순호는 각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전남 구례군 지역사회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철거를 놓고 시끄럽다. 구례군 옛 문척교.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 ‘재해 예방’ 명목으로 문척교를 철거하려 하자 문척면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한 주민이 5일 오후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에서 ‘김순호는 각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구례군 지역사회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철거를 놓고 시끄럽다. 구례군 옛 문척교.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 ‘재해 예방’ 명목으로 문척교를 철거하려 하자 문척면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한 주민이 5일 오후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에서 ‘김순호는 각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공청회는 시작에 앞서 김봉영 섬진강수해대책위 위원장이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김 위원장은 “공청회가 주민을 상대로 한 요식적 절차행위로 찬반 공청회 자체가 전혀 무의미하다”며 “철거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 백지화 후에 공청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주민은 김승희 영산강청장 대신 박세욱 영산강청 하천국장이 참석한 점과 김순호 구례군수가 불참한 점을 지적하며 항의하기도 했다. 30여 분간 주민들의 고성과 야유 속에 겨우 시작된 공청회는 주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양 측이 평행선을 달리며 논리 공방만 주고 받은 모양새였다. 

공청회 최대 쟁점은 옛 문척교가 2002년 수해의 직접적 원인 여부였다. 주민 대표 패널로 참여한 김창승 농부시인은 ‘수해 원인이 문척교 때문’이라는 전제를 부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김 시인은 “문척교가 2020년 8월 8일 수해 원인이 아닌데도 원인으로 둔갑시켰다”며 “섬진강댐을 준설하지 않은 등 섬진강댐 관리방법상 문제가 원인으로, 수해는 갑작스런 대량 방류와 폭우 때문”이라고 관련 자료를 제시하며 항변했다. 

그러면서 김 시인은 “문척교 양안에 모래주머니만 쌓았어도 침수되지 않았다”며 “대량 방류가 8월 8일 오전 8시 이후에 이뤄졌는데 이날 낮 12시~오후 3시 사이에 수해가 발생한 점이 시간상 일치”한 점을 근거로 들며 반박했다. 이어 “환경부조차 지난 2020년 8월 섬진강의 홍수 피해 원인은 ‘댐의 구조적 문제·댐 관리 미흡·하천의 예방 투자 및 정비 부족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며 문척교가 수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5일 오후 전남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에서 박세욱 영산강환경관리청 하천국장은 “국가 차원에서 수해 예방을 위해 문척교 철거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공청회가 통과의례식 요식절차는 아니다”고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일 오후 전남 구례군 문척면 문일관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문척교 철거와 보존 관련 공청회에서 박세욱 영산강환경관리청 하천국장은 “국가 차원에서 수해 예방을 위해 문척교 철거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공청회가 통과의례식 요식절차는 아니다”고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에 대해 환경부 대표로 참석한 박세욱 영산강환경관리청 하천국장은 “옛 문척교 철거 여부는 영산강환경청장도 결정하지 못하기에 정부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공청회가 통과의례식 요식절차는 아니다”고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박 국장은 또 “국가 차원에서 수해 예방을 위해 문척교 철거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주민들의 산발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옛 문척교 존치시 문제점 △교량 철거에 따른 주민 불편 최소화 방안 등을 설명하며 다리 철거를 기정사실화 하려고 애썼다.  

공청회 말미에 나선 양동필 구례군 건설과장은 “2020년 수해 피해 당시에 소들이 떠내려가고 죽는 등 이런 과정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느냐. 그래서 제가 건의했다”며 “국가정책에 의해서 어차피 철거돼야 한다면 (철거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졌고, 익산국토관리청에 제가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주민들이 “김순호 군수는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 “문척교가 수해의 원인이란 말이냐”며 성토, 한때 장내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봉영 섬진강수해참사 비대위원장은 구례군정을 직격했다. “정말 구례군이 위험한 발언을 했다. 왜냐하면 김순호 군수는 최근까지도 (문척교)보존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주민들에게 했다. 그런데도 그것을 수행해야 할 주무부서 과장이 철거가 수해를 막는 대안이고, 이게 소신이라고 이런 얘기를 한 자체가 구례군 행정체계가 잘못된 것이다. 이런 과장을 두고 어떻게 군민들의 의견과 구례군 민의를 제대로 집행하겠는가. 이게 바로 문제다. 김 군수가 진정으로 문척교를 보존하고 민의를 존중한다면 구례군 주무부서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봉성산에서 당한 전례가 되풀이 될 것이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공청회는 2시간 여 지난 오후 4시 20분쯤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철거하겠다는 환경부, 구례군과 보존하자는 주민들의 선명한 입장 차이뿐이었다. 공청회에서 드러난 양 측의 입장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같은 현상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철거와 보존에 대한 생각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합의점을 찾기에는 한계를 보였다. 이처럼 양 측이 이견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뚜렷한 해결책마저 제시되지 않으면서 문척교 철거 문제를 둘러싼 행정당국과 주민들 간의 갈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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