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尹 정조준…역대급 강대강 정면충돌 벌어지는 이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7 12: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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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어·외교 논란에 지지율 추락, 국면 전환 절실했던 與
尹-文 포털 검색량, 최대 25배 차이에서 2~3배로 좁혀져
이유 있는 사정정국, ‘윤석열 스타일’로 지지층 복원 전략

역대급이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충돌과 갈등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 정도 수위로 정면충돌했던 적은 찾기 힘들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간 강대강 대치는 점점 가팔라지는 양상이다. 정면충돌의 최전선에 소환되고 있는 인물의 면면을 보면 갈등 수위가 실감이 난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모두 등장한다. 

여야는 각각 과거권력과 현재권력을 정조준하고 있다. 여야 모두 ‘눈에는 눈, 대통령에는 대통령’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배우자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여야의 과녁에는 지금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이재명 대표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자리한다. 

ⓒ연합뉴스

강대강 충돌의 강도와 속도도 전례가 없을 정도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 순방 과정에서의 각종 논란을 ‘외교 참사’로 규정하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곤 곧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카드를 꺼내들며 총공세를 펼쳤다. 그에 앞서선 ‘김건희 특검법’과 ‘대통령실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대선 기간에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검찰에 고발도 했다. 이제 겨우 취임 5개월을 맞은 새 정부에 ‘검찰 고발’ ‘국정조사’ ‘특검법’ ‘해임건의안’ 카드 모두를 꺼내든 것이다.

여당의 공세도 이례적이었다. 대선 이후 상대 후보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오랜 전례는 사라지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펼쳐졌다. 이 대표에 대한 수사는 쉴 새 없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소환됐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당시 태양광·탈원전 정책 등을 집중 추궁하더니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감사 중인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통보하며 논란이 커지자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선을 긋고 있지만,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낸 문자가 언론에 포착되면서 ‘정치 감사’라는 의구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10월6일로 취임 150일을 맞았는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허니문’은 없었고, 협치는 실종됐다. 강대강 대치만이 남았다.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서 보면 안 된다. 양보와 타협의 길로 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여야 모두 지금은 대화와 협상보다는 강공 드라이브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여야의 속내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특히 국정을 주도하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전략에 주목해야 지금의 강대강 대치 전선의 숨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지금 판을 움직이는 것은 행정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여당이라는 뜻이다. 강대강 대치 전선 아래 깔린 여야의 숨은 의도와 전략, 그리고 주요 포인트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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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8월29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 대문 주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왜 文을 국감 직전에 노렸을까

현재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은 결정적 계기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문 전 대통령이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며 조사 거부 뜻을 밝힌 데 이어 민주당은 감사원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한다는 방침을 밝히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특히 민주당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가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이자 ‘국면 전환’ 시도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사법·감사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원칙론을 앞세워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감사원이 전직 대통령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대응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권성동 의원은 “적폐청산 구호를 외치며 전임 정부를 털어댔던 과거는 유쾌한 일이고 자신이 조사받아야 하는 현재는 불쾌하단 말인가”라고 문 전 대통령을 직격했다. 여당은 실제 문재인 대통령 집권 초기인 2017년과 2018년에 감사원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서면 질의서를 보낸 적이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당시 이·박 전 대통령은 감사원의 질의서 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감사원은 9월28일과 30일에 문 전 대통령 측에 각각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서면조사를 통보했다. 10월4일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목전에 둔 시점이다. 국정감사의 성격은 물론 여야 모두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는 메가톤급 의제가 국감 직전에 투하된 셈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무적으로 보면 일정하게 국면 전환, 프레임 이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자 시점이다.

여권 입장에선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는 세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했다. 바로 ①진영 대결 강화 및 강대강 대치 전선 형성 ②비속어·외교 참사 프레임 탈출(국면 전환) ③국감 성격 전환 등이다. 세 가지 효과 모두가 여권에는 절실했다. 문 전 대통령을 논란의 한복판으로 호출하면 민주당과 그 지지층이 강력 반발할 것은 예측 가능했다. 그렇게 민주당은 윤 대통령 비속어·외교 성과 논란에 전력을 퍼붓던 상황에서 자원의 일부를 문 전 대통령 방어로 돌려야 했다. 동시에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상대적으로 흐려졌다. 언론의 보도량도 줄어들었다. 여권으로서는 강대강 대치 전선이 뚜렷해지면 위기감이 고조돼 흩어졌던 지지층이 결속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온라인 민심’을 보면 이런 흐름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지난 한 달간(9월6일~10월5일) 검색어 트렌드를 ‘네이버 데이터랩’으로 조사해 봤다. 윤 대통령이 순방외교를 떠나기 직전인 9월17일 ‘윤석열’과 ‘문재인’의 평균 검색량은 10과 3이었는데, 비속어 논란 등이 불거진 9월22일에는 그 차이가 25배로 벌어진다(윤석열 100, 문재인 4). 그런데 불과 열흘여가 지난 10월3일 그 차이는 다시 2배 안쪽으로 좁혀진다(윤석열 17, 문재인 10). 10월3일은 민주당을 통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 사실이 밝혀진 날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통보한 9월28일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엄청나게 확산되던 시기다. 그리고 민주당을 통해 감사원 조사 사실이 밝혀진 게 국감 직전인 10월3일이다. 당장 정치권의 전면적 이슈로 떠올랐고, ‘문재인 대 윤석열’이라는 진영 대립 구도가 부각됐다. 그렇게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여권으로서는 국면 전환 효과를 일정하게 봤다”고 평가했다. 

 

국감 한복판에 투하될 감사원의 중간발표

또 하나 짚어야 할 포인트는 ‘국감의 성격’이다. 이번 국감은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감’이라는 성격과 문재인 정부의 임기를 되돌아보는 ‘마지막 국감’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여야가 공수를 모두 펼쳐야 하는 국감이었는데, 사실 여권으로서는 상대적으로 크게 불리할 게 없었다. 들여다볼 국정 임기가 윤석열 정부는 5개월에 불과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5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김건희 리스크’와 ‘대통령실 이전’에 대한 이슈 정도를 잘 방어하면 전임 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생겼다. 윤 대통령의 순방 기간 비속어 논란과 외교 성과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 다시 20%대로 추락하며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구·경북은 물론 60대 이상 전통 지지층인 집토끼들도 이탈하면서 비상등이 켜졌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여권으로선 이러다간 한 달여 국감 기간 내내 방어만 해야 할 판이었다. 국면 전환이 절실했다.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조사 움직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감사원이 ‘서해 사건’의 실지감사(현장감사)가 종료되는 10월14일쯤 중간발표를 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오는 14일은 국감의 한복판이다. 여권 입장에서는 14일 이후의 국감을 다시금 ‘문재인 국감’ ‘서해 국감’ 프레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호재다. 반대로 민주당으로선 동일 사안을 검찰이 수사하는 상황에서 감사원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스피커 구실을 하려 한다는 비판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즉 한층 더 가파른 강대강 대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집토끼부터 복원하겠다는 尹의 투트랙 전략

여권은 왜 강공 전략을 펼치고 있을까. 사실 정부·여당에 지금 시점만큼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타이밍도 없다. 야당의 협조 없이 정부·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예산안 통과도 윤석열 정부의 공약 정책화도 모두 야당 손에 운명이 달려 있다. 그럼에도 여권은 강대강 대치 전선을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치는 전략을 택했다. 

의미심장한 발언은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입에서 나왔다. 김 실장은 10월3일 고위 당정협의 자리에서 “정략적 공세에 대해서는 내각과 여권도 모두 단호히 대응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국감은 윤석열 정부의 초기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며 “법안, 예산 대응에 당정과 대통령실도 모두 혼연일체돼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언뜻 보면 별말 아닌 것 같지만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의 전략과 속내가 드러난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의석 차가 뚜렷한 여소야대 정국에 대통령실은 여권의 혼연일체를 강조하며 야권의 공세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메시지일까.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①위기의식 ②집토끼 전략 ③이유 있는 사정정국 등의 열쇳말로 요약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 실장의 말에는 세 가지 뜻이 내포돼 있다고 봐야 한다. 먼저 ‘이번 국감에서 밀리면 정말 끝’이라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20%대로 다시 추락한 지지율을 연초까지 40%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내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을 향한 탈당 촉구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다. 그 관건이 이번 국감이다. 그 국감에서 수비 대신 공격을 하겠다는 의미다.” 

공격의 과녁은 이재명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이다. 집권여당은 현재 자중지란 상태다. 지도부는 여전히 비대위 신세다. ‘이준석 리스크’는 법원 결정으로 해소됐지만, 20대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내부 질서가 복원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윤 대통령에겐 지지율 회복의 골든타임이 길지 않다. 대외적 경제 여건도 매우 나쁘다. 즉 민생정책으로는 지지율 회복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어차피 야당의 협조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러니 용산(대통령실) 주도로 윤석열 정부가 잘하던 일, 국민에게 평가받았던 일을 하자는 게 바로 ‘반문(反문재인) 기조’와 ‘법과 원칙의 회복’ 전략이다. 

이와 같은 전략적 서사는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핵심 지지층과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에게는 일정한 소구력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선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를 향한 수사는 사정정국이 아닌 법과 원칙을 복원하는 일이 된다. 부패(이재명)와 인권(문재인)이라는 가치도 소환할 수 있다. 야당의 반발이 세면 셀수록 여권의 긴장감과 위기감도 고조돼 내부 결속은 커지고 윤 대통령의 리더십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과연 여권의 전략적·의도적 강공 전략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효과적인 국면 전환처럼 국민 여론을 반전시켜 지지율 반등도 가져올까. 엄경영 소장은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직면한 국정난맥상이 너무 깊고 커서 현재의 강공책으로 내부 질서를 회복하고 지지율이 반등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좀 더 본질적 문제를 짚었다. 그는 “지금 중요한 것은 득점보다 실점을 안 하는 것”이라면서 “수비가 튼튼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수비가 튼튼해야 공격도 먹힌다. 이 철칙은 축구, 야구, 정치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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