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는 신호탄? ‘태풍의 눈’ 떠오른 ‘유병호의 감사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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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잡이’ 본격화한 ‘실세’ 유병호 총장, 文 정부 34건 감사 예고
절차 패싱·대통령실 배후 논란에 내부서도 이견…TF 구성 두고 뒷말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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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후 사정정국을 주도해온 감사원이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면서 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지난 9월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통보한 사실이 밝혀진 후 여야는 연일 극한 대치를 벌이고 있다. ‘정치 감사’라는 야당과 ‘성역은 없다’는 여당이 맞붙으면서 감사원발(發) 태풍은 국정감사 전체를 집어삼켰다.

감사원을 둘러싼 논쟁 한복판엔 조직의 ‘실세’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유병호 사무총장이 있다. 그림자 실세에서 점차 전면으로 등장한 유 총장은 평소 내부 직원들에게 “송사리·피라미급 사건엔 관심도 갖지 말라. 고래를 사냥하라”고 강조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철칙대로 ‘대왕고래’와 다름없는 문 전 대통령 관련 감사들을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 ‘서해 사건’ 감사에 착수하고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 질의서를 발송한 것도 유 총장의 결단인 것으로 파악된다. 유 총장은 지난 7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감사는 내가 전격 지시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전격 지시한 유병호

8월말 감사원이 공개한 하반기 감사 계획에 따르면 정기감사가 아닌 문재인 정부 정책들을 타깃으로 한 ‘특정사안감사’, 이른바 특별감사 사안만 34개에 달한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즉각 야권을 중심으로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시비가 붙었다. 민주당은 유 총장이 문재인 정부 당시 좌천됐다가 돌아와 ‘적폐 진상 규명’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온 만큼, 감사원의 잇단 ‘칼춤’에 그의 ‘사감(私感)’이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10월5일 공개된 유 총장과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 간 문자는 이러한 의구심에 기름을 부었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유 총장은 이 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 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란 내용의 문자를 보내다 언론에 포착됐다. 서해 사건 감사 절차를 문제 삼은 보도에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정부 한 관계자는 "국무회의장 배치상 유 총장 자리 근처에 보통 기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유 총장이 잠시 방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대통령실과 감사원 모두 ‘단순 질의’였다며 선을 그었지만 민주당은 “정치 감사의 배후가 대통령실로 드러났다”며 유 총장 사퇴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감사원으로부터 7주간의 특별감사를 받아온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도 감사원의 ‘배후 의혹’에 목소리를 더했다. 문제의 문자가 공개된 당일 전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가 종료되기 하루 전인 지난 9월28일 감사원이 권익위의 서해 사건 관련 유권해석에 대해 비밀리에 집중 조사했다”고 폭로했다. 전 위원장에 따르면, 석 달 전 국민의힘에서 권익위에 서해 사건 유권해석을 요구했고 감사원이 권익위 감사 종료 직전 돌연 해당 유권해석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으며 조만간 이와 관련해 검찰 수사도 이어질 예정이다. 전 위원장은 이를 두고 “국민의힘과 감사원, 검찰이 삼각편대로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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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우려는 최재해 원장과 맞서려는 유병호 총장

여권과 유 총장 측에선 정치 감사는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유 총장은 서해 사건 등 전 정부 관련 사안들을 가리켜 “이런 거 감사 안 하면 무얼 감사하라는 것이냐”는 의견을 강하게 내비쳐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 진영을 떠나 특별감사 대상으로 하나하나 들여다볼 만한 이유가 충분해 선정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사 대상이 선정·추진되는 데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가 ‘패싱’됐다는 지적이 감사원 내부에서부터 제기돼 논란은 더욱 커진 상태다. 감사원법 12조엔 ‘‘주요 감사 계획’에 관한 사항은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원장이나 사무총장이 감사를 독단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1995년 법으로 명시해둔 것이다.

서해 사건 역시 이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8월에 감사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안건 명단 가운데 서해 사건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권익위 감사 역시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두 건 모두 감사원 내 유 총장 휘하에 있는 특별조사국 주도로 빠르게 감사 개시가 결정돼 장기간 진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감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직권남용 등 우려가 제기되자 최재해 감사원장의 지시로 절차적 정당성을 따져보기 위한 내부 TF도 최근 구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최 원장과 유 총장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감사위원회에서 유 총장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안건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부결시키는 사례가 쌓여 왔다. 이런 내부 분위기가 수장인 최 원장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을 거란 분석이다.

민주당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시사저널에 “최 원장도 지난번 국회에 출석해 ‘감사원은 국정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잘못 발언하긴 했지만, 유 총장에 의해 감사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 전까진 최 원장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며 “‘침묵의 권력기구’로서 감사원을 유지하며 임기를 지키고 싶은 최 원장으로선 유 총장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둘은 기본 성품과 스타일부터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TF에 대해 감사원 홍보담당관은 “어떤 법률상 문제가 있어 꾸려진 것이 아니다”며 “감사 계획을 수립하는 데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 향후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또 감사위원회 ‘패싱’ 의혹과 관련해서도 “감사위가 연초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연간감사계획을 세우는데 중간중간 ‘상시공직감찰’ 사항이 생길 때마다 감사위의 의결을 거치진 않는다”며 “서해 사건 등 특정사안감사 추진에 대해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는 건 감사원 업무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서해 사건이 현재 공직에 있는 이들을 감사하는 ‘상시 공직감찰’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사안인지를 두고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감사원-검찰 협업 플레이” 野 공격에 與 “생트집”

감사원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은 유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할 방침이다. 최재해 원장에 대해선 10월11일 감사원 국정감사를 거친 후 고발 여부가 확정될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감사원이 서해 사건과 관련해 ‘중간 감사 발표’를 예고한 점 역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으며 직권남용 소지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감사원은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니만큼 감사 경과에 대한 중간발표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감사에 대한 중간발표는 전례가 드물고, 이 또한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야당의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감사 결과는 감사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해야 최종적으로 효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현재 내부 분위기상 감사위의 최종 의결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해당 감사를 주도해온 유 총장이 중간발표를 통해 감사 결과를 먼저 공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야당은 하고 있다.

감사원의 중간발표가 향후 검찰 수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란 주장도 나온다. 박범계 의원은 “감사원이라는 검찰의 전위부대를 활용해 당위성을 만들고 이를 검찰이 이어받아 수사하려는 것”이라며 “지금도 감사원과 대검찰청 간 협의체가 가동 중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교감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선 고발에 이어,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감사원 내 절차상 빈틈을 메우기 위한 대대적인 감사원법 개정도 계획하고 있어 여당과의 극한 대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유 총장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될지 여부를 두고는 관측이 분분하다. 민주당에선 직권남용을 확신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에선 논평 등을 통해 “민주당이 감사원의 마땅한 감사활동을 정치공작으로 몰며 ‘생트집’을 잡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유 총장의 업무 방식이 다소 거칠어 보일 순 있어도 명백하게 법을 위반해 권력을 사용한 바는 없다”며 혐의 적용 가능성을 낮게 봤다.

다만 법조계에선 감사원의 권익위 감사와 관련해 지난 1월 있었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련 대법원의 직권남용 유죄 판결을 주요한 변수로 꼽고 있다. 유 총장 등을 향해 직권남용 혐의로 법적 조치를 예고한 전현희 위원장도 이 점에 주목했다. 전 위원장은 9월3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감사원의 감사를 통한 사퇴 압박 행태는 지난 블랙리스트 판결과 이미 너무 판박이”라며 “감사원이 이 판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은 유병호 총장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언론 인터뷰는 일절 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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