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교수가 성범죄 상담을?…“대학 인권센터 뜯어고쳐야”
  • 박성의·조문희·변문우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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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캠퍼스 성범죄 보고서②]
‘유명무실’ 학내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상담‧심리 전문 센터장은 7%에 불과
인하대 캠퍼스 건물 계단에 설치된 폴리스라인 Ⓒ연합뉴스
인하대 캠퍼스 건물 계단에 설치된 폴리스라인 Ⓒ연합뉴스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통과에 따라 올해 3월부터 학내 성폭력 문제 예방과 대응을 위한 기구인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됐다. 인권센터는 성희롱·성폭력 사안을 포함한 학내 인권 증진 업무를 수행하는 ‘컨트롤타워’를 말한다. 문제는 일선 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인권센터를 운영 중인 대학 10곳 중 8곳이 성 문제 및 상담 관련 지식이 전무한 교수를 센터장에 앉힌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현황’(9월1일 기준, 국내 4년제 및 전문대학 295교 대상)에 따르면, 상담·심리학이나 여성학 등 관련 전공자를 상담센터장으로 임명한 대학은 7.12%(21개교)에 그쳤다. 

여성 복지나 상담 등을 부수적으로 전공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임명한 대학(22개교)을 합치더라도, 성평등 상담 관련 전공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학교는 14.58%(43개교)에 불과했다. 특히 성평등센터장의 전공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상담학과 무관한 이공계 12.54%(37개교)로 나타났다.

담당 교수의 전공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간호·물리치료학과로 11.53%(34개교) △체육이나 음악, 연기 등 예·체능학과 8.81%(26개교) △종교·철학 9.83%(29개교) △법대 6.78%(20개교) △경영·경제 6.10%(18개교) △교육대 5.42%(16개교) △유아교육 4.41%(13개교) △사학과 등 인문계열 3.73%(11개교) △사회과학계열 1.69%(5개교) △의예 0.34%(1개교) △조리과 등 기타 학과 3.39%(10개교)였다. 교수가 아닌 일반행정직원이 센터장으로 있는 학교는 9.83%(29개교)였으며, 아예 전담기구가 설치되지 않은 학교도 4곳이나 있었다.

ⓒ시사저널 양선영
ⓒ시사저널 양선영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법안이 성급하게 추진됐다고 입을 모은다. 센터를 운영하고, 발전시킬 ‘사람들’이 부재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센터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젠더(gender) 문제나 심리를 전공한 전문인력이 상주해야 하는데,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한국 최초로 대학교 인권센터장을 맡았던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권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적 선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기초는 다지지 않고 기구만 만들다보면 현장에선 혼란을 겪는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학교에 페미니즘 전공자나 젠더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결국 사회 복지나 간호학과(교수 중)에서 (인권센터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그런 분야를 연구한다고 해서 젠더이슈를 깊이 아는 사람은 한 줌도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정권에서 자리 하나 주듯 학교가 총장단과 친한 사람에게 센터장 자리를 주는 경우도 많다”며 “인권센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인권센터장이라는 자리는 성폭력 피해 상담에 있어 굉장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인데, 학교에서 그런 일을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면서 “인권센터를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학교의 성평등 수업을 늘리고 관련 인력을 추가 채용하는 게 필요하다. 보완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도 “대다수 학교에선 인권센터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니까 보직만 새로 만든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인력과 예산의 불안정성도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 정책 구성원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전제되어야 하고, 학내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의지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절실하다”고 평가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대학 내 성범죄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부상한 만큼, 정부가 보다 실효적이고 강제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병욱 의원은 “인권 또는 법, 상담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 센터장을 맡을 경우,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없어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할 수 있다”며 “각 센터에 맞게 전문 인력이 적정하게 배치되어 있는지 교육 당국이 현황을 파악하고 운영 평가를 통해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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