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 개편, 강대강 대치 속 협치의 숨은 공간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7 12: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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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보훈부 격상·재외동포청 얻고 野 ‘여가부 폐지’ 막을까
‘주고받기’ 가능성…與 입장에선 ‘野 반대’ 명분 삼을 수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 정국이 점점 격화되는 가운데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협치의 공간을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 통과가 필요한 정부조직 개편안은 국민의힘 의석(115석)만으로는 단독 추진이 불가능하다. 169석의 더불어민주당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주고받기를 통해 각자의 실리를 챙기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대강 대치 속에서도 ‘협치 프로세스’가 가동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10월3일 고위 당정협의에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두는 안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 개편에 뜻을 모으고 이번 정기국회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 재외동포청도 신설한다. 이민청과 우주항공청 신설은 추후 추진한다. 

주목할 장면은 10월5일 포착됐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이날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에 정부가 준비 중인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고하고, 민주당의 의견을 청취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에 야당에도 충분히 미리 설명하고 최대한 협치의 과정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에게 충분한 사전 설명과 협의의 과정을 거친 것인데, 최근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비슷한 과정을 거친 사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만큼 당정으로서 정부조직 개편은 꼭 해내야 할 과제다. 그만큼 야당의 협조도 절실하다. 그래서 정부여당이 100% 원안 추진을 고집하기보다는 일부만이라도 동의를 얻어내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사저널 임준선
10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與는 ‘사전 설명’ 野도 “여가부 명칭 고집 안 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협치 시나리오는 민주당이 보훈부 격상과 동포청 신설을 받고, 국민의힘이 여가부 폐지에서 한 발 물러나는 안이다. 민주당은 5일 실제 행안부 보고 과정에서 여가부 폐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훈부 격상과 동포청 신설에 대해서는 “흔쾌히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가부의 역할과 위상을 미세조정하고 명칭을 일부 수정하는 차원에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오영환 민주당 대변인은 “(여가부 장관을) 차관급의 본부장으로 격하할 때 성범죄 관련 정책 논의 시 국무위원이 아니어서 타 부처와의 교섭력 등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문제의식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면서도 “우리 당이 반드시 여성가족부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라고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시나리오는 정부여당으로서도 나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정무적 판단만 하면 지금은 여가부 폐지를 강행하기 좋은 시점이 아니다. 당장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등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계속 반복되며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직접 성평등 이슈를 강조했듯 세계 주요국들은 한국의 성평등과 여성 역량 강화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 입장에선 여가부 폐지를 바라는 지지층을 향해 ‘민주당 알리바이’를 댈 수 있는 점도 정치적으로는 긍정적이다. 지지층에게 ‘우리는 여가부 폐지를 강력 추진했지만 거대 야당이 반대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여야의 주고받기 협치의 주된 동력이 될 수 있다. 양당 모두 각자의 지지층에게 할 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가동되면 여야 모두 100% 원하는 바를 얻지는 못하지만, 실리는 챙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여권 입장에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계속 강대강 대치 전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 통과를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야당 입장에서도 발목잡기 프레임이 고착화 되는 점은 부담스럽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두고 주고받기를 통해 자연스레 협치의 공간이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선거법 개정’ 협치 이끈다 

중장기적으로 여야의 협치 공간은 ‘정치개혁안’이 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모두 “양당 독식 체제를 깨야 한다”며 선거 제도 개편을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여야 모두가 약속한 정치개혁의 동력은 ‘불확실성’이라는 타이밍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있다. 정치권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는 1년 6개월 후의 차기 총선인데, 아직 다음 총선을 누가 이길지는 알 수가 없다. 총선의 구도가 이미 결정돼 한 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운 상황에선 선거 제도 개편은 매우 어렵게 된다. 유불리를 두고 서로의 셈법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다음 총선의 승기를 누구도 잡지 못한 당분간의 불확실한 상황이 여야 모두를 선거 제도 개편을 위한 협상장에 앉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여야 모두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9월2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 다양한 의지와 가치가 국정에 수렴될 수 있게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대표연설에서 이 대표의 제안을 언급한 뒤 “저와 국민의힘은 국가 발전을 위해 올바른 방향이라면 민주당과 협의할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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