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에게 와준 고마운 작품, 모든 걸 던져 연기한다”
시사저널의 창간 기획 ‘차세대 리더 100’은 국내 언론 사상 최장기 기획인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의 미래 버전이다. 창간 33주년을 맞아 시사저널이 내놓는 ‘2022 차세대 리더 100’의 선정 과정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 경제(기업·IT·스타트업), 사회(법조·환경·NGO·종교·의학·과학·크리에이터), 문화(예술·영화·방송연예·스포츠·레저) 각 분야에서 내일의 대한민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 100명을 추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전문가 500명, 일반 국민 500명 등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기초자료로 해서 시사저널 기자들이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후보군을 압축했다. 최종적으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올 한 해 미디어에 나온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국내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함께 위기감이 커지는 2022년 말. 시사저널이 제시하는 100명의 차세대 리더를 보면서, 그래도 내일을 기대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소망해 본다.
어느새 전여빈(34)은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멜로가 체질》부터 스멀스멀 올라온 그의 진가는 《빈센조》로 보란 듯이 증명됐고, 《낙원의 밤》으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을 가뿐하게 입증해 보였다. 그는 지금 톱 작가와 톱 감독이 가장 욕심내는 배우가 됐다. 《빈센조》를 함께 한 배우 송중기가 전여빈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 《간신》(2015)으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영화 《죄 많은 소녀》(2018)로 그해 대종상을 비롯해 신인 연기상을 휩쓸며 괴물 신예로 주목받았다. 이후 첫 드라마 주연작 《멜로가 체질》(2019)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쓸쓸함과 공허함을 섬세하게 그리며 대중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엔 송중기와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빈센조》의 코믹한 변호사 홍차영과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의 시한부 재연 역할로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어떤 역할이든 기대 이상을 해내는 배우, 섭외 0순위가 됐다.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에서는 가장 보통의 청춘으로 공감을 자극하며 틀에 갇히지 않은 연기를 통해 대중들의 믿음에 보란 듯이 호응했다. 어느덧 데뷔 7년 차가 된 그는 “나에게 주어진 감사한 작품들을 충실히 잘 해내고 싶다”고 야무지게 포부를 밝혔다.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전여빈 분)와 외계인을 추적해온 보라(나나 분)가 흔적 없이 사라진 지효의 남자친구 행방을 쫓으며 벌어지는 4차원 그 이상의 추적극이다. 극 중 전여빈은 외계인 목격자 홍지효로 열연한다. 《연애의 온도》 노덕 감독과 《인간수업》 진한새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진한새 작가는 애초부터 전여빈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가장 핫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노덕 감독님의 《연애의 온도》라는 작품을 너무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그 작품의 대사들로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노덕 감독님과 작업하는 게 위시리스트였을 정도다. 《인간수업》 또한 감탄하며 본 작품 중 하나다. 진한새 작가님의 낯설고 기발한 필력이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승화될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컸다. 두 분의 조합이라면 꼭 함께하고 싶었다. 애초에 대본이 4부작까지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분과의 도전이 전혀 망설여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색채가 짙다. 실험적인 작품이라는 것도 좋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가와 감독이 전여빈이라는 배우를 원픽으로 꼽은 이유는 뭘까.
“저도 궁금하다. 근데 수줍어서 못 물어보겠다(웃음). 우선 노덕 감독님은 제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다 보셨더라. 단편까지 다 보셨다고 하더라. 작가님은 제가 《멜로가 체질》이라는 작품에서 상사에게 훈계를 받은 순간 눈을 번득이는 슬로 장면을 보고, 저 사람을 ‘홍지효’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효는 어떤 인물인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안전하고 견고한 담을 구축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미지의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그 담을 넘어 뛰쳐나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하는 지효를 위해 서서히 변해 가는 헤어 스타일링과 안경을 쓰고 벗을 때의 타이밍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언제나 발 뻗어 달려나갈 수 있도록 늘 운동화를 신었다. 탐험하는 마음으로 지효의 여정을 따라갔다.”
스스로 지효와의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학창 시절엔 MBTI가 INFP였다. 한데 일을 하면서 F가 T로 바뀌기도 하더라. 감정적인 부분이 사고형 인간으로 학습 혹은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제가 지금껏 맡았던 캐릭터들마다 제가 조금씩 묻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지효는 답답한 듯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용기를 낸다. 저도 제 속에 제가 너무도 많지만, 꼭 해야 할 말과 해결해야 하는 건 묵혀두는 성격이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땐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지효와 조금 다른 점은, 지효는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저는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는 거다. 내 의도 혹은 고마움 같은 것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노덕 감독과 작업해본 소감은 어떤가.
“노덕 감독님의 경우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다. 디렉팅이 긴 사람도 아니다. 현장에서 배우가 훨훨 날 수 있게 비행기가 돼주시는 분이다. 덕분에 저는 그 안에서 충실하게 지효가 되기만 하면 됐다. 촬영을 끝내고 감독님이 “여빈이 너는 내 가족 같아. 감독과 배우의 관계가 아니고 그냥 동생 말이야” 하시는데 찡했다. 감독님과 작업을 하면서 문득 배우와 감독은 아이와 그 아이를 품은 엄마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서로를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감독님이 모니터를 통해 모니터 밖에 있는 배우를 지켜보는데 마치 하나처럼 느껴지는 경이로운 날들이 있었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전여빈만의 방법도 궁금하다.
“무조건 대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행동에 물음표를 가진다. 이 캐릭터는 왜 이런 행동을 하지? 이 친구는 왜 이 아이와 친해졌지? 이 친구는 어떤 말투를 쓸까? 상상을 하다 보면 전여빈이라는 사람과 캐릭터의 교집합이 느껴질 때도 있다. 또 저에게 전혀 없는 새로운 표현들이 생각날 때도 있다. 그걸 살리려고 한다. 연기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함께 하는 것이다. 내 상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배우, 연출자 등등 무수히 많은 사람과 함께 메워간다. 어떤 순간에는 내가 상상하고 준비한 것들을 다 버려야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당시의 리듬과 기운에 모든 걸 붓는다. 그럼에도 고집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내 의견을 말한다. 결국엔 상대 배우와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것이 나타날 때 즐거움이 크다. 한 편 한 편 찍을수록 촘촘해지는 게 느껴진다. 밀도가 생긴다.”
현장에서 전여빈은 어떤 모습인가.
“이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니까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제가 꽂힌 말이 있다. 박은빈 배우가 인터뷰에서 종종 하는 말인데, 너무 공감이 됐다. 참고로 박은빈씨와는 전혀 알지 못한다(웃음). ‘뭐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라는 그 말이 너무 용기가 됐다.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너무 좋은 말이다.”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장르와 상관없이 다 잘됐다.
“작품을 좋아하는 폭이 넓은 편이다. 마이너한 작품도 메이저한 작품도 즐겨 본다. 내가 어떤 특색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당시에 제게 와준 작품 중 내 마음이 가장 정직하게 따라갈 수 있는 작품 혹은 궁금증이 많이 드는 작품을 선택한다. 독립영화를 촬영할 때는 그게 독립영화라고 생각하고 촬영하지 않는다. 그저 나에게 와준 고마운 작품이라는 생각에 내 모든 걸 던져서 연기한다. 그 시간을 충실히 이행했다. 매 순간 신중하게 고민해 작품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많이 보고 더욱 견문을 넓히려고 늘 노력하는 중이다.”
작품을 쉴 때는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산책을 하거나, 술을 잘 못 마셔서 친구와 커피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 높은 산을 잘 오르지 못해 낮은 산을 종종 타기도 한다. 면허증은 있는데 차가 없다. 운전 연습을 해서 드라이브를 해보고 싶다. 활동적인 걸 못 해봐서 서핑이나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싶다. 제일 하고 싶은 건 드라이브다.”
이 작품이 전여빈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잘 정리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촬영이 끝난 게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제야 이렇게 공개되고 인터뷰도 하니까 감정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뭐랄까, 여행이나 모험을 다녀온 기분이다. 거창하진 않지만 홍지효로 살아봤다는 것, 그게 전부다. 여행도 그렇지 않나. 다녀오기 전과 후는 분명히 다르다. 작품도 비슷하다. 임무를 완수한 뒤에 저는 분명 다른 사람이 돼있다. 부딪히고 깨지고 뭔가를 얻게 됐다.”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들 한다. 연기, 재미있나.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재미있다. 그런 저이기에 더 어렵고, 갈 길이 멀다. 계속 갈고닦고 싶다. 소명이 있는 직업이니만큼 잘 해내고 싶다. 박은빈 배우가 한 말처럼, ‘뭐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