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다중우주 또 없습니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6 15:05
  • 호수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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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무한한 확장

걸작과 괴작 사이, 열렬한 환호와 갸우뚱한 의문 사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상상력이라는 단어조차 너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영화의 세계관은 분명 모두와 폭넓게 통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올해 만날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내년 초 오스카를 위해 조금씩 예열되고 있는 레이스에서 벌써부터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당신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모든 예측은 무의미하다는 것.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포스터ⓒ워터홀컴퍼니(주) 제공

‘가지 않은 길’이 만든 혼돈의 멀티버스

나 자신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멀티버스, 즉 다중우주 이론의 핵심이다. 내가 속한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는 수많은 우주 중 하나의 모습일 뿐이며, 또 다른 우주에서 나는 전혀 다른 존재로 살아간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상상에 근거한 이야기다. 핵심은 그 모든(에브리씽) 존재가 모든 곳(에브리웨어)에서 한꺼번에(올 앳 원스)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에블린(양자경)은 코인세탁소를 운영 중인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를 둘러싼 현실은 복잡다단하다. 세금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와중에도 세탁소 운영과 살림, 얼마 전 미국으로 건너온 아버지의 부양까지 에블린의 몫이다. 친절하지만 소심한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로 말할 것 같으면 일상 유지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편. 게다가 그는 이혼 서류를 내밀기 위한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에블린의 근심에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도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살이 찐 것, 문신을 새긴 것, 동성애자인 것까지, 에블린은 딸의 다방면이 불만이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더 큰 혼란이 시작된다. 세금 문제 해결을 위해 국세청을 방문한 날, 남편 웨이먼드는 돌연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다른 차원의 세계인 ‘알파버스’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라 소개하더니, 에블린에게 악당 조부 투파키에 맞서 싸워 우주 전체를 구해 달라는 것이다. 에블린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도 마치 다른 존재가 된 듯한 모습으로 공격을 시작해 온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 모든 것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불과하다. 에블린이 당혹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다중우주 속 자신과 접속하듯, 보는 입장 역시 미적댈 시간이 없다. 영화는 아수라장의 롤러코스터에 관객을 태우고 이내 미친 듯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 다중우주는 가지 않은 길들로 만들어진 세계, 즉 ‘만약에’라는 가정으로부터 비롯되는 순간들의 집대성이다. 다른 우주 속 에블린은 쿵푸 마스터이기도 하고, 피자집 팻말 돌리기의 고수이기도 하며, 손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말랑한 소시지를 대신 가진 이들의 세계에서 동성 연인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성공한 영화배우이기도 하고, 동료의 천재적인 영업비밀을 알아차리는 철판 전문 요리사이기도 하다. 에블린이 지금의 인생에서 내린 것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가졌을 모습들이다.

에블린은 다른 우주의 자신에게 접속해 감정과 능력치를 전수받는 ‘버스 점핑’을 통해 정신없이 쏟아지는 위기들을 극복해 간다. 의자를 마구 휘둘러 적을 제압해야 할 경우에는 팻말 돌리기의 고수인 자신과 접속하는 식이다. 에블린은 유난히 많은 우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그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루지 못한 목표와 버린 꿈이 너무 많은 ‘우주 최악의 에블린’은 바로 그 덕분에 세계를 구원할 절대자가 된다. 그는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거대한 허무로 탄생한 조부 투파키의 블랙홀인 ‘베이글’에 온 우주가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일상의 무의미를 이기는 힘, 유머와 친절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유튜브와 SNS로 대변되는 ‘알고리즘’의 속성과 닮아있다. 하나의 상황이 모든 것과 연결되며 무한하게 확장된다는 점에서다. 이는 영화 속 에블린의 활약처럼 즐거운 상상력으로 발휘되기도 하고, 조부 투파키의 베이글처럼 무의미의 공포로 발현되기도 한다. 실제로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접속하다 못해 이제 거의 동일한 존재가 돼버린 인터넷 시대의 막연한 불안은 이 영화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과도하게 넘쳐나는 정보 안에서 사람들은 전 세계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결과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영화는 그 혼란을 다중우주라는 상상력에 접목시킨 결과물이다.

때론 감당하기 벅찬 인상마저 주는 상상력이 실은 삶의 가장 보편적인 철학으로 향하기 위한 장치임은 감독들의 이전 작품에서도 감지됐던 부분이다. 일명 ‘다니엘스’라 불리는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은 다용도 활용(?)이 가능한 시체를 이용해 외딴섬에서의 표류 상황을 극복하는 남자의 이야기 《스위스 아미 맨》(2016)을 선보인 바 있다. 이 영화는 죽은 사람의 몸이 부패하며 뿜어대는 가스, 즉 방귀로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놀라운 일을 해낸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결국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원을 그리는 것일 뿐’인 삶의 순환을 긍정하는 영화다. 모두의 각기 다른 우주가 충돌하더라도 그 혼란을 이해하고 껴안으려는 노력만이 서로를 구원한다. 웨이먼드는 평소 여기저기 눈알 모양을 붙여대는 장난으로 에블린의 신경을 긁어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머와 친절함은 혼돈의 세상을 구하는 가치다. 가장 중요한 순간, 에블린은 이마 정중앙에 눈알을 붙이고 진지하게 결전에 임한다. 삶의 거대한 무의미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사랑과 친절, 이해를 발휘하려는 태도는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영화는 에블인이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제3의 눈’을 뜨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중우주의 세계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비롯해 최근 10년 사이 열렬하게 영화계가 탐험 중인 상상력의 보고다. 과거의 영화들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했다면, 요즘은 지금 ‘여기보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들을 즉각적으로 구상하는 방식이 추구된다. 디스토피아는 이미 도래했고 더는 미래의 구원을 손쉽게 꿈꿀 수 없는 시대의 상상력이란, 이토록 즐겁지만 조금은 씁쓸한 구석이 있다.

One & Only 양자경

양자경이 아니면 누가 에블린을 연기할 수 있을까. 과거 쿵푸 영화들의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액션 히어로부터 기품 넘치는 은막의 슈퍼스타 등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에블린의 모습은 양자경 본연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성룡이 될 뻔했던 주인공 캐스팅이 양자경으로 변경되면서, 영화는 엄마와 딸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한 훨씬 폭넓은 우주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예스 마담》 시리즈(1986~), 《007 네버다이》(1998), 《와호장룡》(2000), 《더 레이디》(2012),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등에 이르기까지 다중우주에 버금가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에게 이번 작품은 할리우드 진출 후 첫 단독 주연작이라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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