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동된 백남준 《다다익선》 그리고 미술의 새로운 변화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4 13:05
  • 호수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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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 개막
요즘 인류의 화두를 기계 설치물로 재현해 눈길

10월3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다다익선》의 재가동 기념행사가 공개됐다. 단종된 지 수십 년 된 구형 TV브라운관(CRT 모니터) 1003대로 구성된 원통형 탑인 《다다익선》은 잦은 고장과 화재 위험 때문에 미술관의 애물단지였다. 급기야 보존 복원을 위해 2018년 2월 작품의 전원을 끄고 4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재가동을 기념한 당일에도 구형 모니터 몇 개는 끝내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텔레비전과 비디오카메라를 미술 창작 도구로 쓴 백남준은 미술사에서 첫 비디오 아티스트로 평가되고, 넓은 범주에서 미디어 아티스트에 속한다. 미디어 아트란 회화나 조각처럼 유서 깊은 미술 창작 도구 대신 사진과 텔레비전, 게임, 인터넷, 모바일처럼 지금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뉴미디어를 창작 도구로 사용한다. 회화나 조각에 비해, 다양한 대중 미디어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익숙한 입체적인 감각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이라고 평가된다.

《작은 방주》 앞에 선 최우람ⓒ정지현 제공

예술과 기술의 협업이 만들어낸 뉴트렌드

그럼에도 영상작업이 다수니만큼 미디어 아트는 지루하고 난해한 현대미술 하면 떠오르는 대표 장르이기도 하다. 30분이 넘는 비디오 아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시장에 서서 보다가 나오는 관객은 없다시피 하다. 미디어 세대에 최적화된 미적 체험을 줄 듯한 호칭과는 달리, 미디어 아트의 역설은 철 지나고 지체된 미적 질감을 자주 제공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원본성 보존 때문에 1988년 구형 모니터를 고수했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예로 들자. 이 작품은 지난 35년여 동안 모니터 전면 교체를 포함해 셀 수 없는 보존 복원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미디어 아트의 대표주자 백남준의 작품이자,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작인 이 작품의 기나긴 수난은 미디어 아트의 상징적인 역설이다.

1988년과는 비할 수 없이 업그레이드된 미디어 체험을 통과한 동시대인의 미감각과 《다다익선》이라는 미디어 아트의 유물 사이에는 화해하기 힘든 시차가 놓인다. 브라운관TV가 뭔지 모르는 세대의 미감각에 1988년 비디오 아트는 다만 고증적인 가치 이상으로 와닿긴 어렵다. “예술과 기술은 서로 영향을 미치거나 작업자와 이용자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행한다”는 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의 해석은 이런 경우에 통한다. 미디어 아트의 뉴미디어 아트의 전성기는 그래서 짧다.

“공장의 자동화 생산라인을 지켜볼 때 0.1초도 안 쉬고 움직이는 것이 마치 커다란 유기체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세계 유력 미디어 아티스트 8인을 소개한 책 《미디어 아트 – 예술의 최전선》(2009년 출간)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최우람의 평소 생각은 이랬다. 그는 컴퓨터라는 동시대 미디어로 작업을 제어하고, 인간을 능가하는 AI같이, 요즘 인류의 화두를 기계 설치물로 꾸준히 재현해온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조명의 느린 점멸에 맞춰 꽃봉오리 모양의 뭉치가 여닫히면서 생명체의 착시를 일으키는 키네틱 작업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차의 협업으로 중진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올해 선정 작가로 그를 선택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2022년 9월9일~2023년 2월2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 시작 이래 총 9명(팀)이 선정됐다. 이 중 절반의 작품이 미디어 아트, 나머지 절반이 공간 점유형 설치미술이었다. 전시 준비 기간 동안 선정 작가 1명(팀)에겐 감당하기 너무 큰 공간이 주어진다. 공간이 사람의 사고와 행동 패턴에 영향을 준다는 공간심리학이나 신경건축학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선정된 작가라면 자신이 줄곧 지향했던 미적 태도를 훨씬 부풀려야만 전시실을 채울 수 있다. 기업의 후원과 국립 기관의 방대한 공간은 미술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선택압이 된다. 2014년 이래 선정 작가의 전시들 가운데 큰 볼거리 내지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처럼 대의명분을 주제로 내세운 작품이 여럿 포함된 건, 이처럼 미술계 바깥의 대기업 협력과 방대한 전시 공간이 만든 넉넉한 후원 때문이다. 이것은 미술을 확장시키는 이점도 있지만, 미술가 고유의 질감을 본의 아니게 변형시키는 맹점도 갖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우람 《검은 새, 원탁》ⓒ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우람 《빨강》ⓒ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우람 《URC 01과 URC 02》ⓒ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연출가로서의 미술가와 자기 완결형 미술

《최우람 – 작은 방주》는 미술가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이제까지 《MMCA 현대차 시리즈》에 선정된 작가들은 공간을 채우려 협업으로 작업했을 텐데, 최우람은 협업 창작을 훨씬 일찍 시작한 경우다. 6년 전 필자가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본 건 아틀리에가 아니라 공장 규모의 3층 건물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미술 전공 조수들이 아니라,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U.R.A.M(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기계 생명체 연합 연구소)이라는 창작 협업체계를 만들었다. 다방면에 우월한 1인 예술가 신화가 여전히 대중의 인식 속엔 강고하지만, 분야별 전문가들을 지휘하고 조율하는 연출가가 오늘날 주류 미술계 최선단에 나타난 미술가상이다. 현대차로부터 제공받은 전조등과 후미등을 이어붙여 각기 하얀 별과 빨간 별을 재현한 정크아트(산업 폐기물을 예술품으로 전용한 작품)도 있고, 드넓은 전시실에 길이 12m의 방주를 세우고, 양 측면에 배 젓는 철제 노(櫓)가 위아래로 파도치듯 움직이는 다소 단조로운 알고리즘 작업도 있다.

출품작 가운데 이목을 끈 작업은 주 전시실 바깥에 놓인 《원탁》이었다. SNS에 올라온 전시 방문 인증 사진 중에는 유독 이 작품이 많다. 공을 올린 철제 원탁이 있고, 원탁의 테두리를 따라 18개의 지푸라기 인체가 웅크린 채 원탁을 떠받든 모양새다. 18개의 지푸라기 인체가 각기 다른 높이로 움직이면서 원탁 위의 공은 이리저리 불안하게 이동하며 원탁 아래로 떨어질 기세다. 관객은 공이 혹여 떨어지지 않는지 유심히 지켜보는데, 공은 절대로 원탁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18개의 지푸라기 움직임이 컴퓨터로 조율돼 있다.

이런 기술은 미술가 혼자 실현하기 힘들다. 작가는 공이 떨어지지 않도록 로봇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기계계측에 뜻을 뒀을 만큼 기계광인 최우람은 금속 장비의 정교한 맞물림으로 구동되는 기계 미술품을 만든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논리정연한 작업이어서 비평이 끼어들 해석의 틈을 찾기 어렵다. 6년 전 그가 대구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을 때 필자는 평문을 썼는데, 고심할 것 없이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자기 완결형 미술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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