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평타는 치는 오락물, 《블랙 아담》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2 13:05
  • 호수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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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담》이 던지는 '정의'에 대한 질문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만큼이나 슈퍼히어로들도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온 질문이다. 이 고민에 가장 무겁게 오랜 시간 매달린 대표적 인물은 배트맨이다. 대의를 위해 부정한 수단을 사용한 그는 선과 악의 희미한 경계 안에서 스스로 자경단이길 바랐다. 그는 선인가 악인가. 당신의 생각은?

히어로들은 같은 목표를 두고 신념에 따라 싸우기도 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어벤져스가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햄스워스)파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파로 쪼개져 “내가 맞네” “네가 틀렸네” 싸운 중심에도 신념이 있었다. 정의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어나자 캡틴과 아이언맨은 어벤져스를 ‘민간조직으로 운영할 것인가’ ‘유엔 산하 기관 아래서 공공조직으로 관리할 것인가’를 두고 첨예하게 갈렸다. 당신이 히어로라면 어느 편에 설 것인가.

DC와 워너브러더스가 새로 출시한 《블랙 아담》에도 이러한 질문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이는 “내 힘은 축복이 아닌, 저주이자 분노에서 태어났다”고 고백한 블랙 아담의 탄생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파괴할 수 있지만 반대로 구할 수도 있는 거대한 힘. 자연스럽게 그 힘은 누군가에겐 세계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신들을 구원해줄 힘으로 받아들여진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캐릭터를 앞에 두고 영화는 ‘정의를 위한 폭력 행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히어로 아닌 안티 히어로, 혹은 빌런

고대 국가 칸다크. 칸다크 백성들은 광물로 만든 왕관을 통해 악마의 힘을 얻고자 하는 국왕의 폭정 앞에 허덕이고 있다. 그중엔 자유를 갈망하는 테스 아담(드웨인 존슨)도 있다. 그는 신들로부터 막강한 힘을 부여받지만, 힘을 사적 복수에 사용한 죄로 신들에 의해 갇히고 만다. 그리고 5000년 후. 국제 군사조직 인터갱의 지배를 받는 칸다크에서 아드리아나(사라 샤이)는 왕관을 찾다가, 봉인되어 있던 테스 아담을 깨우게 된다. 아담은 자신을 막아서는 인터갱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하고, 이를 폭주로 단정한 히어로 군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JSA·Justice Society of America)가 블랙 아담을 막기 위해 칸다크에 온다.

1945년 데뷔한 블랙 아담은 DC 코믹스 속 ‘샤잠’의 숙적이자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당초 영화 《샤잠!》을 통해 블랙 아담을 출격시킬 예정이었던 워너브러더스의 계획을 비튼 건 드웨인 존슨. 자신의 제작사 세븐벅스 프로덕션을 통해 《블랙 아담》 솔로 무비에 착수한 그는 블랙 아담의 기원을 풀어내며 앞으로 있을 DC 유니버스와의 만남을 예고한다.

블랙 아담은 DCEU 세계관 안에서 최강 능력자로 평가받는 슈퍼맨에 맞설 수 있는 가공할 괴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이런 능력치보다 그를 여타의 능력자들과 진짜 차별화하는 지점은 힘을 휘두르는 방식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서 타협하길 꺼린다. 걸림돌이 되는 인물은 가차 없이 숙청하고, 반기를 드는 인물은 동정 없이 처단한다. 이것이 그를 히어로가 아닌, 안티 히어로 혹은 빌런으로 불리게 하는 요소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칸타크에 도착한 것도 블랙 아담의 저 성질머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저스티스 리그’ 팀의 조상 격인 팀이다. 그러니까 《블랙 아담》은 향후 DC 유니버스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블랙 아담뿐 아니라, 확장 유니버스에서 주요하게 활약할 JSA 팀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JSA의 리더인 호크맨(알디스 호지)을 비롯해 원로 대마법사 닥터 페이트(피어스 브로스넌), 신세대 히어로 아톰 스매셔(노아 센티네오), 사이클론(퀸테사 스윈들)이 첫 타자로 등장했다.

영화 《블랙 아담》 스틸컷ⓒ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본격 합류

경쟁사 마블이 최근 발 빠르게 세대교체를 진행하는 가운데, DC 역시 새로운 캐릭터들로 변화를 준 셈인데 일견 영리한 선택이다. 기존 DC 영화를 보지 않아도 관람에 지장이 없다는 점 역시 관객 문턱을 낮춰준다. 아쉬운 건 새롭게 소개된 히어로들치고는 기시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투구를 뒤집어쓰고 마법을 행사하는 닥터 페이트에게선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떠오르고, 분자 구조 조정을 통해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아톰 스매셔는 ‘엔트맨’(폴 러드)의 그것과 같다. 금속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리더에게선 ‘팔콘’(샘 윌슨)의 향기가 나기도 한다. 한마디로, 창의성이 여러모로 떨어져 보인달까.

영화는 이러한 기시감을 캐릭터들의 관계성을 통해 돌파하려 한 듯 보인다. ‘블랙 아담 vs JSA’ ‘블랙 아담 vs 인터갱’ 대립이라는 큰 줄기를 중심에 두고 닥터 페이트와 호크맨의 우정, 블랙 아담과 호크맨의 자존심 싸움, 아톰과 사이클론의 핑크빛 무드 등 인물들 간 관계성에 힘을 줬다. 그중엔 소모적으로 보이는 설정도 있으나, 감정적인 터치를 불러일으키는 관계 설정도 있다. 닥터 페이트와 호크맨의 우정이 그러한데, 피어스 브로스넌이 불어넣은 결과로 인해 닥터 페이트의 매력이 상당히 생생하게 잡힌다. 블랙 아담을 만나러 왔다가, 닥터 페이트에 ‘입덕’하는 이들이 꽤 나오지 않을까 싶다.

《블랙 아담》의 서사는 그리 좋지 못하다. 내러티브가 전형적이고, 사건 개연성은 아귀가 딱 맞물려 떨어지기보다 범람하는 액션 속에서 자취를 감추기 일쑤다. 묵직한 질문을 던지긴 하지만 그것을 조명하는 깊이감은 얕다. 그러나 《블랙 아담》의 경우 관객과 약속한 재미는 일정 부분 사수한다. 액션의 합에서 구체성이 보이고, 드웨인 존슨 특유의 박력도 내내 살아있는 덕에 그럭저럭 오락영화로 즐길 만하다. 무엇보다 DC 팬이라면 환호할 만한 근사한 쿠키를 머금고 있다. 근 10년간 DC의 행보가 기대에 못 미쳤고, 몇몇 작품은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는 건 많이들 아는 사실. 《블랙 아담》은 그런 실망감을 만회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적어도 실망감에 힘을 싣지는 않는, 평타는 쳐주는 오락물이다.

향후 DC의 계획은?

DC-워너브러더스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9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배트걸》을 후반 작업 중 전면 폐기하는 데다, 《더 플래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에즈라 밀러가 절도 혐의 등으로 실형 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전남편 조니 뎁과 오랜 법적 공방을 벌인 엠버 허드의 《아쿠아맨2》 출연을 두고도 여러 잡음이 흘러나오는 상황. 첩첩산중이라는 말은 지금의 DC에 더없이 어울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샤잠! 신들의 분노》 개봉이 연기됐는데, 그 와중에도 희소식은 있으니 헨리 카빌이 《맨 오브 스틸2》로 돌아온다는 얘기가 외신을 통해 보도되며 DC 팬들의 마음에 파동을 안기는 분위기다. DC의 미래는 장밋빛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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