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제로금리’ 고수하는 일본은행의 노림수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2 10:3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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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신봉자인 구로다 총재의 영향 커
최소 내년 4월까지는 엔화 약세 지속 전망

대다수 중앙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는데, ‘나홀로 행보’를 고수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은행(BOJ)이다. 각국 기준금리(상한)를 보면 인도 5.90%, 인도네시아 4.75%, 미국 3.25%, 캐나다 3.25%, 한국 3.00%, 호주 2.60%, 영국 2.25%, 유럽 1.25% 등이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제로금리(-0.10%)를 고수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149엔까지 치솟았다. 32년 만에 최고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떨어지고, 금리 역시 치솟으며 외환위기가 거론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비교적 평온해 보인다. 달러화 및 유로화와 함께 엔화가 국제통화 중 하나이기 때문일까. 엔화만 주요 국가들 중에서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주가(닛케이225)는 10월19일 현재 5.3%(전년 말 대비) 하락하는 데 그쳤다.

대다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행만 ‘제로금리’를 고수하면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EPA 연합

엔화 약세에도 주가 5.3% 하락 그쳐

일본은행의 최근 통화정책방향 결정문부터 살펴보자. 우선 일본은행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상품가격 상승에 따른 경기하강 압력에도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인식한다. 소득 증가가 지출 확대로 이어지면서 경제는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분기 성장률(연율)은 전년 동기 대비 1.6%, 전분기 대비 3.5%였다.

높은 성장세와 공급 요인으로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이 부분도 언급돼 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국내총생산 실제치와 잠재치의 차이인 산출갭이 커지며 중장기 기대인플레율과 임금 상승률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보지만, 에너지와 곡물, 내구재 등의 가격이 안정되면서 내년 이후에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될 것으로 일본은행은 예상한다. 종합적으로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 상품가격, 물가 등의 불안 요인이 여전한 상황에서도 단기 정책금리(-0.1%) 외에 일본정부채(JGB) 10년물 수익률을 0%에 머물도록 하는 기존 통화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얘기다.

일본은행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비교해 보자. 연준의 9월21일 결정문을 보면 일본은행과 비슷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완만한 성장, 고용 개선, 낮은 실업률 아래서 팬데믹, 높은 곡물·에너지 가격, 광범위한 물가 상승 압력 등으로 인한 고물가 등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경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준은 최대한의 고용과 2%의 장기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기 위해 페더럴펀드 금리 목표를 3.00~3.25%로 인상했다. 또한 팬데믹, 노동시장, 인플레이션 압력과 기대, 금융시장 및 국제경제 동향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통화정책을 조정해 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참고로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1.8%, 전분기 대비 -0.6%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각각 3.5%(9월), 8.2%(8월)다. 하지만 연준의 결정문에는 경제 전망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결정문과 같이 공개되는 경제전망요약(SEP)을 살펴봤다. 여기에는 연준의 법적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적정(appropriate) 통화정책 의견과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실질국내총생산, 실업률, 물가상승률 등에 대한 전망이 담겨 있다. FOMC 위원들은 향후 금리 목표가 올해 4.4%, 2023년 4.6%, 2024년 3.9%, 2025년 2.9%로 운용돼야 한다고 봤다. 이런 통화정책 아래서 실질성장률은 올해를 저점(0.2%)으로 2023년 이후 1.2~1.8%로 개선되고, 실업률은 2023~24년 4.4%까지 상승하며, 물가상승률(PCE)은 올해 5.4%에서 2023년 2.8%, 2024년 2.3%, 2025년 2.0%로 안정화된다는 전망이다. 불과 3개월 전의 전망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엔저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도교 연합

연준과 BOJ의 닮은 듯 다른 행보

결국 연준은 성장이나 실업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지금은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향후에도 이런 자세를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물가 안정과 더불어 또 하나의 목표인 ‘최대한 고용’ 쪽에서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현재 물가상승률 수준과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에서 확연한 차이가 발견된다. 연준과 달리 BOJ는 여전히 디플레이션이 걱정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올해 4월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초과해 3% 수준까지 올랐다. 상황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 BOJ는 제로금리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BOJ의 ‘나홀로 제로금리’ 행보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외 금리차 확대에 따라 자금의 해외 유출 압력이 높아지고, 일본 국채 매도 증가에 대응해 제로금리를 고수하기 위한 일본은행의 매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최근 금융 당국은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BOJ는 큰 부담이 없어 보인다. 일본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국채(JGB)의 외국인 비중은 현재 13%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국채를 매도해도 일본은행이 받아주면 된다. 일본 주식 거래대금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3% 정도지만, 순매도 경향은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면 엔화 약세가 남는다. 일본은행 입장에서 부담이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다.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해소에 도움이 되고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아직도 아베노믹스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무역수지가 악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지 개선을 통해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경쟁국들보다 엔화 가치 하락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제고될 수도 있다. 일본은행의 나홀로 행보에는 아베노믹스 신봉자인 구로다 총재의 영향도 크다. 그의 임기는 내년 4월8일까지다. 그때까지는 2% 목표를 초과하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므로 제로금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건도 충족될 것이다. 요컨대, 새 총재가 새로운 통화정책을 펼치기까지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이는 엔화 약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며, 그동안 이웃나라인 한국의 원화 약세와 기준금리 인상도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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