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는 곧 배신? 여야 ‘사생결단’에 숨죽이는 소장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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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격돌에…親이준석계‧非이재명계 ‘내부 비판’ 자제
단일대오 이면에 공천?…“정치가 진영논리에 매몰” 우려도

“종북주사파 같은 반국가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국민 앞에 머리 숙이고 석고대죄 해야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정치 사라지고 폭력적 지배만…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통령실과 여야 간 불협화음이 극한 대치로 번져가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는 사이, 윤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입’은 연일 거칠어지고 있다. 양측이 죽고 죽이는 사생결단식 대결을 벌이면서 당내 강경파가 힘을 얻는 분위기다. 반면 중도‧소장파 의원들의 존재감은 그만큼 옅어지고 있다.

실제 지도부와 이견을 표하는 순간 당원들에게 ‘배신자’로 찍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 낙인 탓에 공천을 받지 못할 수 있단 우려가 실제 의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선 여야의 ‘진영논리’가 강해질수록, 정당 민주주의가 훼손될 수 있단 분석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왼)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왼)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 연합뉴스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전쟁터 된 여의도

여야 지도부는 국회뿐 아니라 SNS를 통해서도 서로를 향한 날 선 주장과 비난을 주고받고 있다. 검찰과 감사원이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비리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다. 여권에선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야당은 ‘정부의 야당 탄압’을 주장하고 나섰다.

26일 이 대표와 169명의 민주당 의원 및 보좌진, 전국의 지역위원장 등 약 1200명은 국회 앞에 모여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대표는 “가녀린 촛불을 들고 그 강력해 보이던 정권까지 끌어내린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민 아니겠냐”면서 “결코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피땀 흘려 목숨 바쳐 지켜온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자. 역사의 퇴행을 막자”고 소리쳤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날 대규모 규탄대회에 앞서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는 헌정사상 처음 있던 일이다. 정권 초 협치를 다짐했던 정부·여당과 민주당이 사실상 전례없는 정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규탄대회에 여당은 반발하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이 대표를 향해 “대장동의 돈은 검은돈이다. 그 돈이 이재명 측근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것만으로도 이 대표는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장동 일당의 검은돈이 민주당 대선 경선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심을 씻지 못하는 한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과 야당의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 역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요구하는 사과와 유감 표현은 거부하고 있다. 대신 여당 지도부 입장에 동조하면서 야당과 철저히 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26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민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 관련, “안타까운 것은 정치 상황이 어떻더라도 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우리 헌정사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져 온 것이 어제부로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가 더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의원, 당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의원, 당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단일대오는 선택 아닌 필수? 이견 사라진 與野

여야의 대치가 계속될수록 당내 결속은 더 단단해지는 모습이다. ‘하나로 뭉쳐 적을 쳐야 한다’는 기류가 여야 모두에 흐른다. 동시에 이 결속에 균열을 내는 발언을 허용치 않는 분위기다. 이에 지도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의원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취재에 따르면, 민주당 내에도 적지 않은 의원들이 ‘이재명 체제’에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전당대회 당시 이 대표에 반대했던 친문재인계, 친이낙연계,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 등이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를 비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대표가 당과 공동운명체로 묶이는 순간, 검찰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다만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공개적으로 ‘당대표 교체’를 언급한 이는 전무하다. 압도적 당심을 업고 당선된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당내 기류다. 이에 원외 인사인 김해영 전 의원만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 퇴진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김 전 의원은 당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상태다. 당원들이 조직적으로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은어) 등 비속어가 섞인 폭탄문자를 김 전 의원에게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의혹만으로 대표를 내치는 건 정부와 여당이 바라는 시나리오다. 그런 일을 발생할 수도, 발생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 상황을 우려해 이 대표에게 선당후사를 기대했던 것”이라며 “이제와 이 대표를 비판하는 것은 ‘당심’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역시 같은 기류가 읽힌다. 친윤석열계가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비윤석열계의 존재감은 옅어졌다. 이준석 전 대표의 징계로 구심점을 잃은 영향이 커 보인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사석에서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의 ‘강경 기류’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SNS 등에 관련 의견을 올리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실 보좌관은 “여당이라면 여유와 품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마치 야당처럼 다투고 있다. 대통령과 지도부 발언이 국민의 시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의원에게 ‘취중 SNS’를 자제하라고 말씀드린다”며 “당과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하는 순간 (당원들에게) ‘좌표’가 찍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공천 의식하나…“진영 논리에 ‘용자’ 사라져” 우려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의원들이 차기 총선의 공천을 의식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좌우로 크게 갈라진 현 정치권 상황에서 ‘중도’나 ‘협치’를 말했다가 지도부와 당원에게 ‘미운 털’이 박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는 2024년 총선 이전까지 유죄를 확정받지 않는다면 공천권을 그대로 쥘 수 있다. 국민의힘 역시 ‘포스트 이준석’ 체제가 확정된 터라, 친윤계가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야 하는 의원들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이유다.

다만 전문가 일각에선 당내 소장파가 힘을 잃는 게 민주주의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진영논리에 갇힌 우리 정치는 자기가 속한 진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다. 그에 반하는 입장이나 소신은 불온한 것이 되어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인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진영론자들은 양자택일 구도를 고착화하고 강화시켜 나간다”며 “누가 뭐라 한들, 지금과 같은 진영 대결의 정치 구도를 유지해야 자신들의 기득권도 계속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 평론가는 “지금의 정치 구도에 파열음을 내며 삼분지계를 선도할 세력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이라며 “국민의힘과 민주당 두 거대 정당 안에서도 변화를 향한 몸부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우리 정치에 이토록 용자(勇者)들이 없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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