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경찰 만드는 시스템이 시급하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5 15:05
  • 호수 17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경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여성, 경찰하는 마음》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둘러싸고 경찰이 뭇매를 맞고 있다. 이런 시국에 여성 경찰 23인, 31편의 글을 모은 《여성, 경찰하는 마음》이 출간됐는데, 내용 중에는 한국의 경찰조직에 대한 쓴소리도 있어 눈길을 끈다. 경찰조직 내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의 의견이 없다는 것은 시민 절반의 의견이 무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확대 해석하면 윗선의 눈치나 살피고 시민의 의견 따위는 대체로 무시한다는 것 아닐까. 고생하는 일선 경찰도 많지만, 이제라도 경찰조직이 여성 경찰들의 ‘자백’ 같은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문제 제기는 수개월간 가려져 있었다. 윗선에서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시도가 이어지자 지쳐버린 나는 ‘나만 조용히 있으면 모든 게 잘 끝날 텐데…’, 나아가 ‘진짜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계속 나를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정의로운 경찰이 되려면 내가 먼저, 스스로 정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용기 내지 않는다면 누군가 또 피해를 볼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나는 나쁜 사람 혼내주려고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여성, 경찰하는 마음│이수진, 이비현 등 지음│생각정원 펴냄│260쪽│1만6000원
여성, 경찰하는 마음│이수진, 이비현 등 지음│생각정원 펴냄│260쪽│1만6000원

이 책은 남성 경찰의 수가 압도적인 조직에서 여경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찰=남성’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그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을 알면서도 그녀들은 왜 굳이 힘들고 위험한 경찰 세계에 뛰어들었는지, 무엇이 그녀들의 가슴을 정의와 사명감으로 타오르게 했으며, 어떻게 조직 안팎의 편견과 차별을 견디며 버텨왔는지를 기록한 ‘여경 분투기’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남다른 정의감을 외면하지 못하는 뜨거운 마음 때문에 경찰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고뇌와 활약상은 여경·남경 논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찰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나아가 진짜 경찰을 만드는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는 게 더 시급하다는 본질적 진단을 끌어낸다.

“여경이 여럿 모여 차별에도 불구하고 왜 경찰조직에 남아있는지 물으면 대부분 비슷하게 답한다. 우리 사회에 여경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 지구대에서 여경은 기본적인 치안 수요를 감당하는 것 외에 여성 피해자와 가해자 관리, 아동청소년 보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업무, 행정 절차상 공정성을 높인다. 경찰조직 내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의 의견이 없다는 것은 시민 절반의 의견이 무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또한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또는 각 지방청에서, 사건 처리 과정 중 여성에게 꼭 필요한 부분들이 배제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내가 이 조직에서 나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 있다.”

문경란 전 경찰청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이 책 추천사를 쓰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남자 경찰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일하기를 시도하는 여경의 모습을 통해 경찰과 세상을 바꿔놓을 신선한 힘을 발견한다. 현장에서, 또한 책 속에서 만난 여경들에게서 곧 휴지기를 끝내고 그 열기를 뿜어낼 휴화산 같은 존재감을 느낀다. 민주경찰, 인권경찰, 민생경찰의 미래는 여경들에게 달려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