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그 자체였던 국가 시스템…‘지휘보고’ 체계 마비됐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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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도, 112신고 처리도, 뒤엉킨 보고 체계도 '재난' 수준
윤석열 대통령이 11월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방문,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방문,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 주요 책임자들의 최초 인지 시각

- 29일 22시20분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현장 도착

- 29일 23시 1분 윤석열 대통령 보고

- 29일 23시20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인지

- 29일 23시36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인지

- 30일 0시 14분 윤희근 경찰청장 인지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론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참사 후 당국의 지휘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고 발생 1시간 후, 치안 총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2시간 뒤에서야 서울 한 복판에서 발생한 참사를 인지했다. 

대통령실과 행안부, 경찰의 지휘·소통 체계가 마비된 탓에 촌각을 다퉈야하는 재난 대응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권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이 장관과 윤 청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심정지 환자’ 보도 나왔는데…경찰청장 몰랐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태원 압사 참사를 지난달 30일 오전 0시14분에 최초 보고 받았다. 참사가 발생한 시각인 29일 오후 10시15분에서 2시간이 지난 후였다. 

윤 청장이 보고 받은 시각은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온 때다. 당시 현장은 응급 처치와 수습으로 아비규환이었지만, 치안 총책임자인 윤 청장은 이를 알지 못했다. 

참사 당일 경찰의 지휘보고 체계는 엉망이었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이태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았고, 참사 발생 직후인 오후 10시17분 현장에 도착했다. 상황을 파악한 이 서장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한 시각은 23시36분이다. 이 서장은 23시34분께 자택에 머물던 김 서울청장에게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고 2분 뒤 김 청장이 다시 걸어 온 전화를 통해 보고가 이뤄졌다. 

이 때까지도 윤 청장에게는 즉각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윤 청장은 자정이 넘은 0시14분이 돼서야 경찰청 상황1담당관으로부터 사고 발생 사실을 파악했다. 오후 11시1분 윤석열 대통령이 소방청 보고를 받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로부터 사고를 파악한 뒤 사고 수습과 관련한 2차 지시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소방대응은 3단계까지 발령된 상태였다. 

11월1일 윤희근 경찰청장(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는 모습 ⓒ 연합뉴스
11월1일 윤희근 경찰청장(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는 모습 ⓒ 연합뉴스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 것은 윤 청장 뿐만이 아니었다. 재난 주무부처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밤 11시20분이 돼서야 이태원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났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 이 장관 역시 윤 대통령보다 19분 늦게 인지한 것이다. 경찰을 관할하는 이 장관이 사고를 인지한 것은 경찰 직보가 아닌 행안부 내부 알림 문자를 통해서였다. 

보고 체계 붕괴는 늑장대응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참사 45분이 흐른 오후 11시 이태원로를 본격 통제해 구급차 진입로를 확보했다. 김 서울청장의 현장 지휘는 윤 청장에게 보고를 한 뒤인 30일 0시25분에서야 이뤄졌다. 윤 청장 지시로 서울 지역 11개 경찰서 1371명이 지원을 나온 것은 0시58께였다. 

윤 청장은 참사 발생 4시간이 넘은 30일 오전 2시30분에 경찰청 지휘부 회의를 주재했다. 그 시각 압사 희생자는 1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11월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데이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은 추모객이 희생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데이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은 추모객이 희생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인파 운집따른 예방도, 112신고 처리도, 후속 대응까지 '재난'

이 장관과 윤 청장이 내부 보고를 통해 사안을 파악하기까지 각각 1~2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이를 먼저 인지한 대통령실과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대통령실은 행안부 장관이나 경찰이 아닌 소방청 상황실에서 직접 첫 보고를 받았고, 이후 이 장관이나 윤 청장이 내부 보고를 받기 전까지 별도의 연락이 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고 상황을 주무부처 장관이 먼저 파악하고 보고하는 통상적인 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것에서 더 나아가 대통령실과 행안부, 행안부와 경찰 간 소통도 긴밀하게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사고 전 112신고가 11건에 달했지만 결국 참극을 막지 못했다. 국민 안전 책임자들은 사건 인지조차  늦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에 경찰이 참사 이후 정국 전망과 시민단체 등의 움직임, 대응책 등을 상세히 적은 여론동향 문건을 만들어 관계부처에 배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당에서조차 윤 청장과 이 장관에 대한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 장관이 뒤늦게 유감을 표하긴 했지만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사고 원인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선동성 정치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은 여론을 더욱 차게 식게 만들었다. 

대통령실도 이 장관이나 윤 청장에 대한 문책성 조치를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선(先) 수습'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여론 동향을 주시하며 신중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은 대대적 감찰과 압수수색 등 조사가 진행 중인 경찰 조직에 대한 문책론에 무게가 실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 지시대로 한 점 의혹 없이 누구 책임인지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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