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사원, ‘나라살림 결산’ 회계법인에 의존…그런데도 수조원 오류 반복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4 10:05
  • 호수 17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결산검사 인력 60%가 민간…법적 근거 없이 매년 십여억 투입
전문가들 “감사원, 결산보고서에 ‘감사의견’ 첨부해야 ‘책임감’ 생겨”

정쟁의 중심에 선 감사원이 최근 국회로부터 중대한 ‘경고 카드’를 받았다. 감사원이 나라살림, 즉 국가회계를 결산하면서 매년 10조원가량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이 뒤늦게 발견해 수정한 오류 규모만 지난 10년간 총 9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감사원이 국가 결산 업무를 그동안 민간 회계법인에 의존해 왔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 역시 미비한 상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해마다 “국가회계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일”이라며 시정을 권고하고 있지만, 감사원이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회계에 대한 철저한 감시는 감사원의 최우선 업무이자 의무다. 이는 헌법이 증명한다. 헌법 제97조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규정돼 있다. ‘결산’이 감사원의 존재 이유 가장 앞에 명시돼 있는 것이다. 감사원법에도 감사원의 ‘임무’를 규정한 제20조 서두에 ‘감사원은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검사를 한다’는 말이 적혀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나라살림 결산검사 인력 60% 이상이 민간

감사원의 현실은 어떨까. 취재 결과, 그동안 감사원은 제1의 업무인 국가 결산검사에 외부 민간 회계법인 인력을 다수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관련 법 어디에도 없다. ‘감사사무의 대행’을 규정해 놓은 감사원법 제50조 2에도 ‘감사원은 필요시 기관에 대한 감사사무 중 일부를 각 중앙관서나 지방자치단체 및 정부투자기관의 장에게 대행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민간에 맡겨도 된다’는 얘기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그동안 결산검사 업무에 자체 인력보다 더 많은 민간 회계법인 인력을 투입해 왔다. 감사원이 내부에 ‘국가 결산검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결산검사를 수행하기 시작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인력 현황을 평균 낸 결과, 감사원이 자체 인력 54명을 투입하는 동안 외부 회계법인에선 80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감사원 본연의 업무에 6대4 비율로 외부 인력이 더 많이 동원된 것이다(표1 참고).

이에 대해 감사원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감사원은 시사저널에 “국가 결산검사는 감사원 자체 인력들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회계법인은 그저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보조 역할을 해주는 것뿐”이라며 “따라서 관련한 법적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업무를 민간에 ‘위임’하거나 ‘대행’토록 한 것이 아닌 ‘보조용역’에 그치기 때문에 법적 근거가 필요치 않다는 의미다. 인력 구성과 운용에 대한 지적엔 “내부적으로도 감사원 자체 인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해당 업무에 자체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면 감사원 내 다른 부서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간 감사원은 주로 삼정회계법인·삼일회계법인·한영회계법인 등 국내 대표적인 법인들과 국가 결산검사 업무를 함께 해왔다. 그 대가로 이들에게 해마다 12억원이 넘는 혈세를 지불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비용이나 업무 효율성을 떠나 국가회계 업무에 ‘민간’이 투입되는 것이 국가 안보상 적절하냐는 우려도 있다. 각 정부 부처와 기관의 살림이 모두 담긴 국가 재무제표이니만큼 내밀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해당 회계법인들로부터 비밀 엄수 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했다.

아울러 감사원이 특정 회계법인에 사실상 ‘일감’을 챙겨주었어도 현재 시스템상 이를 포착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이러한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시사저널은 국회의원실을 통해 감사원에 최근 수년간 감사원과 회계법인들 간 인사 이동이나 인적 교류 현황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이에 감사원은 “제출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감사원은 “감사원에 속한 회계사나 세무사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퇴사 후 바로 민간에 취업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 차원에서 퇴직자들의 현황을 따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의 외부 인력 활용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언제든 절차적 정당성의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도 해당 업무에 대한 감사원의 역량 강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렵더라도 외부 인력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전문 인력을 충원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감사원이 숱한 우려와 지적을 무릅쓰고 매년 예산까지 들여가며 민간 회계법인 인력을 투입했음에도 해마다 막대한 회계 오류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원 결산이 이뤄진 지난 10여 년간 매년 10조원이 넘나드는 오류가 발생해 왔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2년(회계연도 기준)부터 2021년까지 국가재무제표상 ‘전기오류수정손익’은 총 95조191억원에 이른다(표2 참고). 전기오류수정손익이란 감사원이 미처 찾아내지 못하고 이듬해 추가로 밝혀낸 회계 오류를 뜻한다. 즉 감사원이 뒤늦게 발견해 고친 오류가 10년간 95조원이 넘는 것이다.

이처럼 중대한 오류가 발생한 이유로는 주로 국유재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토교통부나 국방부 등이 자산을 누락하거나 대장 가액을 잘못 입력하는 등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각 기관에서 시스템에 자산을 늦게 등재하는 등 일종의 시간차가 발생하면서 불가피하게 오류가 나는 부분이 적지 않다”며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예산정책처는 “이 같은 반복적 오류는 국가회계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시킬 수 있는 문제”라며 빠르고 확실한 시정을 촉구했다.

오류 반복되면 기업은 상폐인데 국가는 책임 공백

오류는 숫자 그 이상으로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 민간기업의 사례를 떠올려 보면 쉽다. 기업의 경우 재무제표에 단 한 글자만 틀려도 상장사는 즉각 정정공시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해당 기업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상장폐지 심사와 같은 거대한 후폭풍을 맞게 된다. 그런데 지금 한 나라의 살림에서 일개 기업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하고 반복적인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기업은 이 같은 오류가 발생할 경우 강력하게 책임 소지를 따져 묻는다. 그러나 국가재무제표 오류엔 그동안 누구도 책임을 묻거나 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책임의 부재’야말로 중대한 오류가 매년 반복되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강조한다. 유호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은 “민간기업에 이 같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국가 회계를 매년 이렇게 다룬다는 건 관계자들이 그저 기계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책임성과 전문성을 갖추는 데 자신이 없다면, 일부 외국의 사례처럼 우리도 국가 회계 결산을 위한 별도의 독립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국가재무제표 결산검사 제도 및 운영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개선방안’ 논문을 쓴 정도진 중앙대 교수 역시 “아무도 국가재무제표 결산에 사인(서명)을 하지 않는 책임 공백이 일차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산에 오류가 생겼을 경우 명확히 책임질 수 있도록 최소한 각 부처 장관과 감사원장의 사인이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하나의 원인을 지목했다. 예산과 결산이 전혀 ‘연계’돼 있지 않다는 문제다. 그는 “예·결산 간의 연계성을 매우 강조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매년 발표하는 한 해 결산 정보를 다음 예산 편성에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 모두 매년 예산을 따오기에만 급급할 뿐, 그것이 실제 어떻게 쓰였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결산 업무에 모두가 무관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국가의 결산과 관련한 조사연구 기능이 강화되어야 하며, 이것이 일정 부분 의무적으로 다음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재해 감사원장이 10월11일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최재해 감사원장이 10월11일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결산 감시할 위원회 오히려 폐지…“국가 회계의 수치”

정 교수는 지금 결산에 대한 국가의 인식이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우려도 표했다. 그는 지난 9월을 ‘국가 회계 수치의 달’이라고 규정했다. 정부에서 국가 회계와 관련한 위원회 3개(기획재정부 국가회계제도심의위원회·공익법인 회계기준 심의위원회·행정안전부 지방회계제도심의위원회)를 모두 폐지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정부와 독립돼 국가 재정을 살피는 이들 전문가 위원회를 없앴다는 건 국가 재정의 신뢰성을 더욱 떨어뜨리는 길로 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제 결산 오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더 없어질 것이며 자칫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오류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높아진다. 감시의 눈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국회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에선 그중 하나로 “감사원이 국가결산보고서에 감사의견을 첨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단순하게 왜곡 사항을 적발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원 차원에서 국가재무제표에 대한 적정성 의견을 내도록 한다면 더욱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지난 4월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감사원이 결산 검사를 한 후 재무제표에 대한 검사 의견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송부하도록 하고, 재무제표 작성에 중대한 오류가 발견된 경우 관련 공무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감사원을 비롯해 국가 결산 담당자들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해당 법안은 6개월간 별다른 논의 없이 국회에 잠자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