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 쇄신·2기 정부 갈림길…“윤 대통령, 이상민 경질 고민 중”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1 10:05
  • 호수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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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선택 변수 ①여론 추이 ②이상민 후임 ③경찰 장악력
‘경찰 책임론’ 고수 속, 순방 뒤 변화 가능성 물밑 포착돼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경찰 업무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책임은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사태 수습 방안의 방향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성향과 캐릭터가 이태원 참사 대응으로 도드라지게 내보여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5일 서울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헌화한 뒤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 두 번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 첫 번째) 등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이후인 11월7일부터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분명하면서도 또렷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정부 책임론’이 아닌 ‘경찰 책임론’이라는 선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감찰·수사에 맞는 응분의 처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이 두 개의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이번 참사의 ‘성격’을 규정하며(경찰 책임), 사태 수습에 대한 ‘방향’(부실 대응한 경찰 실무진 등에게 책임 묻기)도 제시한다. 

이를 받아 당·정·대는 ‘선(先)수습 후(後)문책’ 기조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만큼 진상 규명을 철저히 하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재발방지책 마련이 급선무라는 취지의 발언들이 당·정·대 주요 관계자들의 입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선 야당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경질될 이유가 없거나, 최소한 ‘당장’은 물러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에선 한덕수 국무총리나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 등은 경질 대상이 아니다. 실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11월8일 국회에 나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내각 구성원이나 참모진은 없다고 밝혔다.

10월29일 서울 이태원에서 156명이 사망하고, 197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으로 발생한 참사에 대한 책임의 크기와 방향은 과연 어떠해야 할까. 윤 대통령의 말처럼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내각 주요 인사와 경찰 고위 공직자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사태 수습이 가능할까. 

야권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이 장관 등에 대한 경질 요구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민 여론이다. 무엇보다 대형 참사에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이 형사적 책임만 따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과연 국민은 지금 윤 대통령의 말과 인식에 동의하고 있을까. 윤 대통령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11월3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11월3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 절반 이상 “이상민 장관, 책임지고 사퇴해야”

지금 이태원 참사 책임론과 관련해 여론은 윤 대통령의 의중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MBC의 11월7~8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책임 소재와 관련해 이상민 장관의 거취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가 54.4%로 절반이 넘는 응답률을 기록했다.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 어려우므로 사퇴할 필요는 없다’는 답변은 39.6%였다. 경향신문의 11월4~7일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56.8%)이 ‘이상민 장관의 사퇴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사퇴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32.5%였다.(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지만, 일단 여권은 적극 방어에 나서고 있다. 김대기 실장은 11월8일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 경질 요구와 관련해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이나 청장을 바꾸라는 것은 후진적”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야당의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청장 등에 대한 문책 요구에도 “참사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고 분명한 선도 그었다. 두 사람도 사퇴 요구에 “재발방지책(마련)이 더 급선무”(이상민 장관), “현재 상황을 수습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일이 더 어려운 길”(윤희근 경찰청장) 등의 입장을 내놨다. 이에 여권에서는 이들이 일단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실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실질적 책임은 부실 대응의 주체인 경찰이 져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여기에는 법률가적 사고가 중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직후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과 류미진 서울경찰청 112 상황관리관을 빠르게 경질한 데는 ‘현장 대응이 지극히 부실했고, 그게 참사를 키운 핵심 원인’이라는 판단이 자리한다고 전해진다.

동시에 경찰을 견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도 있다고 한다.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이미지가 생겼는데, 최근 경찰에서 작성한 시민단체 동향이 담긴 ‘정책 참고자료’ 등 경찰 내부 문건이 연달아 공개된 것을 두고 이런 생각이 점점 굳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윤 대통령은 현재 경찰이 의도적으로 문건을 유출하며 조직적 저항을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봤다.

 

높은 경질 여론 알지만 ‘행정 공백 없어야 한다’는 尹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청장 등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현재의 사태를 수습할 수도 없고,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는 물론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이 장관 경질 불가피론 등에 대한 여론도 참사 이후 꾸준히 전달받았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고민이 길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에 따르면, 그 이유는 크게 ①여론 추이 ②이상민 후임 ③경찰 장악력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윤 대통령은 민심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의 국정 지지율, 특히 ‘경찰 책임론’과 ‘책임에 따른 응분의 책임’ ‘선 수습 후 문책’ 등 자신이 제시한 핵심 기조가 나온 이후에 지지율 추이를 면밀히 살펴봤다고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11월11일 외교 순방을 떠날 예정인데, 이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도 여론 추이를 꼼꼼하게 살펴봤다는 후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윤 대통령의 ‘이상민 엄호’ 움직임은 모순적이다. 이 장관을 향한 민심의 강한 경질 요구를 잘 알고 있는 윤 대통령이 그 여론을 애써 못 본 척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지금 이 장관을 향한 윤심(尹心)을 읽는 키워드는 ‘행정 공백은 불가’라고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 장관과 윤 청장을 동시에 경질하면 경찰 업무에 행정 공백이 올 수 있고,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사태 수습부터 대안 마련까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지금 장관을 교체하면 그 업무는 대체 누가 하느냐는 생각을 윤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안 그래도 수세에 몰리고 있는 상황인데, 이 장관 경질에 따른 인사청문회 정국이 펼쳐지는 것도 부담이다. 자신과 통치 코드를 공유하면서 별 탈 없이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후임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최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함으로써 취임 6개월 만에 1기 내각을 완전체로 완성시켰는데, 이 장관 경질로 이를 다시 후퇴시키는 것도 윤 대통령의 심리적 저항감을 키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사정 정국에 강하게 힘을 주고 있는 윤 대통령은 현재 ‘좌동훈(한동훈)-우상민(이상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무부와 행안부를 통치 체제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그 핵심 축을 흔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 장관이 많은 반발을 뚫어내면서 지난 8월 경찰국 신설로 경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는데, 그 당사자가 이렇게 금방 사퇴하면 당초 그렸던 국정 구상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여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이 장관을 지금 경질하면, 이후 추가적인 논란이 더 벌어질 경우 대처할 카드가 사라진다는 의견도 개진했다고 알려졌다. ‘이상민 다음은 한덕수’ 식으로 야당의 공세에 계속 밀릴 수 있다는 우려다. 친윤(親윤석열)계 의원들이 이런 조언을 많이 했다고 전해지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야당의 공세에 계속해서 밀리면서 이후 국정동력을 점차 잃어버린 잘못을 반복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상당했다고 한다.

왼쪽부터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與 핵심 “尹, 후임자 찾으면 이상민 경질”…김한길 비서실장說 ‘솔솔’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고 나서 여론 추이를 살핀 후 이상민 장관을 경질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윤 대통령과 자주 연락하며 긴밀한 소통채널을 갖고 있는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유임하기보다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이밍만큼이나 방식이 중요하다. 국정에 공백이 생기지 않게 후임자 물색을 마쳐 놓고, 검증도 완료한 상황에서 이 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다. 이 장관은 그 후임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실제 임명될 때까지 백의종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의 경질을 윤석열 정부 2기 내각 시점과 연동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또 다른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정기국회의 예산 정국까지 마무리되고 나면 어차피 대통령실과 내각에서 차기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일부 인사를 교체하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오면 ‘윤석열 정부 2기’ 구상이 본격화될 것이고, 그 시작은 이상민 장관 경질이 될 것이다. 여론 추이가 그 타이밍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이 중용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11월9일 김 위원장과 3시간가량 비공개 오찬을 가졌다. 독대 형식이었다. 이를 두고 김한길 비서실장 발탁설도 조심스레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무엇보다 민심을 거스르지 말고, 정치적 책임을 물을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 대통령과 여권 지도부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오독하면 안 된다. 지금의 국정 지지율은 이미 빠질 만큼 빠진 상황”이라면서 “여기서 지지율이 더 내려간다면 그건 ‘위기’라는 말로도 설명이 어렵게 된다. 민심을 냉철하고 엄중하게 살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충분한 정치적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여권이 제기하는 ‘재난의 정치화’라는 논리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만든 주장에 불과해진다”면서 “모든 것을 행정·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재난의 사법화’가 훨씬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제 이상민 장관 경질은 사태 수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면서 “150명이 넘게 숨졌다. 충분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국민은 절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성민 대표는 “경찰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국민은 ‘대통령은 국정 책임자로서 책임을 다했냐’라고 묻고 있다”면서 “제대로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이 없다면 사태는 더 정치적으로 커지게 될 것”이라고 봤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국민이 놀랄 만한 파격적인 국정 쇄신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민심은 폭발할 수 있다”면서 “지금 여권의 상황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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