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 그 열한 번째 문이 열렸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1 16:05
  • 호수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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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1 통해 힙합 뉴 제너레이션의 서막 열까
한국 힙합의 대중화 이끈 《쇼미더머니》의 과제
《쇼미더머니11》 ⓒMnet

국내 최장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화제’와 ‘논란’은 언제나 공존했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대중음악 주변부에 머무르던 힙합이라는 장르를 주류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신예 래퍼의 등용문이자 기성 래퍼들의 실력을 입증하는 기회의 장이기에, 비판과 논란 속에서도 많은 래퍼가 《쇼미더머니》의 문을 두드렸다. 힙합 음악이 음원차트를 점령하는 모습은 매 시즌 프로그램이 중반부로 치달으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현상’이 됐다. 힙합신의 ‘악’이라 비판받던 프로그램이 이제 한국 힙합을 결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로 여겨진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이름이 알려진 아티스트들은 이 프로그램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고 말하며 한국 힙합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로그램의 상징성과 영향력을 입증한 《쇼미더머니》는 이제 한 번의 반환점을 돌아 열한 번째 시즌의 문을 열었다. 이번 시즌의 과제는 ‘더 뉴 원(THE NEW ONE)’이다. 국내 힙합신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담아내고, 한국 힙합의 현재를 증명할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쇼미더머니》의 이번 시즌은 순항할 수 있을까. 시즌11을 마주한 《쇼미더머니》의 과제는 뭘까.

Mnet 《쇼미더머니11》 프로듀서 특별공연. 위부터 그루비룸·릴보이, 슬롬·박재범, 알티·저스디스, 더콰이엇·릴러말즈ⓒ
Mnet 《쇼미더머니11》 프로듀서 특별공연. 위부터 그루비룸·릴보이, 슬롬·박재범, 알티·저스디스, 더콰이엇·릴러말즈 ⓒMnet

보이콧 논란에서 음원시장 점령까지

지금은 한국 힙합 역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 《쇼미더머니》지만,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2012년 시즌1을 시작할 당시 《쇼미더머니》는 ‘래퍼판 나가수’라 불렸고, 대한민국 오디션 열풍을 리드했던 《슈퍼스타K》와 《보이스코리아》 등에서 룰을 차용했다. 비주류이던 힙합이라는 장르로 프로그램의 성격을 국한한 만큼 우려도 존재했다. 기획 의도인 ‘힙합의 대중화’가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구설에 휘말린 것은 출연진을 꾸리면서다. 당시 제작진이 실력이 뛰어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에게 출연을 제안하면서, 10년 이상 활동한 힙합 뮤지션을 오디션에 참가해야 하는 신인으로 치부했다는 논란이 인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사이에서 공분이 터져 나왔고, 프로그램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었다. 프로그램에 참여 의사를 밝힌 래퍼들과 불참하는 래퍼들 사이에 긴장감이 조성되면서 힙합계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돈’에 목적을 두는 프로그램이 힙합 정신을 상품화한다며 출연을 꺼리는 래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도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언더그라운드 래퍼들 사이에서 일반인 출신으로 우승을 차지한 로꼬(권혁우)는 힙합신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프로그램의 구원투수가 됐다. 시즌2에는 래퍼 스윙스가 공개 모집에 응모하면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해 보고, 대중과 마니아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시험무대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시즌2에도 참여한 MC메타는 “지난 시즌 참가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하나의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쇼미더머니》는 초반과 달리 많은 래퍼에게 하나의 ‘무대’로 인식되기 시작됐다. 시즌3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참가자가 늘어났고, 힙합 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당시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취지가 힙합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안 만드는 것보다는 방송을 통해 힙합과 랩이라는 장르를 알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여러 시즌을 거쳐온 프로그램에는 고민이 많기 마련이다. 《쇼미더머니》는 표면상으로는 경연 형태를 유지했지만,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힙합’을 보여줄 수 있는 포맷을 고민하며 계속 프로그램을 바꿔나갔다. 기존 래퍼들과 신예 래퍼의 합동 무대를 꾸려 경연을 한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이현도와 MC메타의 크루 간 대결 구도를 만들어냈다. 시즌3부터는 프로듀서팀을 등장시켰다. 힙합계의 산 역사로 불리던 지누션, 현역 아이돌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지코 등을 영입해 프로듀서팀끼리 경쟁하는 포맷을 꾸려낸 것이 이때부터다. 이후에도 다이나믹 듀오, 저스디스, 자이언티, 그레이, 그루비룸, 코드쿤스트 등 역량 있는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서로 캐스팅했다. 음악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에 프로듀서끼리의 ‘조합’도 염두에 뒀다.

이렇게 래퍼들과 프로듀서가 만들어낸 음원의 파급력은 컸다. 《거북선》 《RESPECT》 《니가 알던 내가 아냐》 《N분의 1》을 비롯해 시즌9의 《VVS》, 시즌10의 《쉬어》 《회전목마》 《리무진》 《불협화음》 등이 음원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흥행성을 입증했다. 특히 시즌10의 음원들은 멜론 음악차트 1~5위에 포진했는데, 비교적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미션곡들을 음원사이트 상위에 올려놓으면서 명성을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기술적인 랩과 속도에 중점을 뒀던 과거 시즌과 달리 힙합신에 스타일리시한 음악들이 많이 생겨나게 됐고, 실력 있는 프로듀서팀과 래퍼들이 성공적으로 결합하면서 대중성 있는 음원들이 다수 발매됐다는 평이다. 유튜브에 공개된 음원 뮤직비디오와 공연 영상 역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미디어 시장 변화로 인해 단순히 ‘시청률’이 프로그램의 흥행 요건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 《쇼미더머니》는 다양한 트랙을 통해 존재감을 입증한 셈이다.

위부터 《쇼미더머니1》 로꼬, 《쇼미더머니6》 우원재의 무대 한 장면
위부터 《쇼미더머니1》 로꼬, 《쇼미더머니6》 우원재의 무대 한 장면 ⓒMnet

제2의 우원재 나올 수 있을까

힙합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은 《쇼미더머니》 전 시즌의 목표이기도 하다. 스윙스는 시즌8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사람의 정신 상태가 많이 반영된 게 요즘 랩이다. 저희 세대 때는 의미가 있는 가사를 썼는데, 요새는 진지한 가사를 쓰려고 하면 ‘설명충’이라고 한다. 힙합은 언제나 최신의 것을 담아낸다. 요즘 친구들의 음악을 보면 그 정신이 반영된 것 같다.” 제작진 역시 랩, 그리고 힙합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쇼미더머니》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중에게 식상하지 않은 면을 꾸준히 보여주며 장수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초창기에는 힙합 음악의 색깔과 마이너 장르로서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 대중화·다양화된 힙합을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쇼미더머니》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최효진 CP는 “《쇼미더머니》는 단순 랩, 힙합을 넘어 시대상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해의 트렌디함과 다양한 연령대가 가지고 있는 고민, 시대상을 굉장히 잘 반영했기 때문에 관심도가 높은 게 아닌가 싶다”고 언급했다. 이번 시즌에는 디제잉, 비보잉 등 힙합의 스트릿 문화도 녹여낼 계획이다.

신예 래퍼들은 《쇼미더머니》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다. 일반인에서 스타 래퍼로 거듭난 이들도 있다. 시즌1 우승자인 로꼬는 ‘음원 강자’이자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이 됐고, 시즌6은 무명이었던 우원재가 대중에게 각인된 래퍼로 탄생하는 시작점이 됐다. 흥행성이 보장된 프로그램은 부활의 공간이자,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장으로도 작용하기에,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인지도가 높은 현역 뮤지션들의 참여도도 높아졌다. ‘힙합 거장’들이나 1세대 래퍼, 한국 프리스타일의 강자로 꼽히는 이들까지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전 시즌에서 아쉬운 성적으로 탈락한 이들은 ‘재도전’을 하고, 오랫동안 힙합을 해왔지만 대중에게는 주목받지 못했던 래퍼들도 ‘쇼미행(行)’을 택한다.

베이식, 비와이, 행주, 릴보이 같은 래퍼들은 우승을 통해 존재감을 키우며 한국 힙합신에 한 획을 그었다. 머쉬베놈이나 원슈타인처럼 자신만의 색채가 있는 뮤지션들도 조명됐다. 아티스트들도 《쇼미더머니》의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한다. 박재범은 “11년 동안 엠넷과 제작진이 힙합 장르를 이해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했다. 《쇼미더머니》에 대해 리스펙트를 하며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그루비룸은 “요즘은 들을 이유가 있어야 듣는 시대다. 음악이 나오는 과정부터 참가자가 밑바닥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지원자 수가 늘어나는 것도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방증한다. 힙합신에서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들과 《고등래퍼》를 통해 발굴된 래퍼들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한 다음 관문으로 《쇼미더머니》를 선택한다. 시즌1에서 1000명에 불과했던 지원자는 시즌6 당시 1만 명을 넘어섰고, 이번 시즌에는 3만 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다. 제작진이 시즌11의 슬로건으로 ‘더 뉴 원’을 내건 만큼, 이 많은 지원자들 속에서 ‘원석’을 찾을 수 있을지가 이번 시즌의 성패를 가를 예정이다. 제작보고회에서 저스디스는 “우원재처럼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를 놀라게 한 인물이 있었다”며 원석 발굴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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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11》에서 주목받는 래퍼들. 왼쪽부터 던말릭, 테이크원, 다민이, 고은이, NSW YOON ⓒMne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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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11》에 출연한 이영지 ⓒMnet 제공

‘악마의 편집’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

《쇼미더머니》의 매 시즌 목표는 전 시즌과 다른 차별점이고, 과제는 논란의 불식이다. 이번 시즌은 특히 ‘새로운 인물’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출연자가 아닌 유명 출연자를 중심으로 한 편집은 특히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제작진은 《고등래퍼》 우승자 출신인 래퍼 이영지를 본방송 이전부터 예고편에 등장시키면서 시즌11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이영지의 눈물을 공개하며 이슈를 끌어왔던 엠넷은 2회에서도 이영지의 랩을 보여주지 않고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똑같은 레퍼토리를 담은 영상을 반복하면서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올라가자, 이영지가 ‘엠넷식 운영’에 피해를 받고 있다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긴 시즌 속을 관통하는 논란도 많다. 랩 가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가 하면, 판정 번복으로 인해 심사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마약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출연자가 ‘통편집’된 사례도 있다. 제작진은 “참가자들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법적인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토로하며 지원자 검증에 대한 한계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동안 제기됐던 논란의 요소를 얼마나 제로에 수렴하게 만드느냐가 이번 시즌에 대한 신뢰도를 결정한다.

《쇼미더머니9》 릴보이, 《쇼미더머니10》 신스의 무대 한 장면 ⓒMnet
《쇼미더머니9》 릴보이, 《쇼미더머니10》 신스의 무대 한 장면 ⓒMnet

이전 시즌뿐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항상 문제로 제기됐던 ‘악마의 편집’도 엠넷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출연자들의 뛰어난 무대보다 독하고 센 발언이 화제를 모았던 시즌이 있었고, 이기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악의적인 편집이 억울하다는 성토가 트위터에 올라온 경우도 많았다. 비록 그러한 논란이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해 《쇼미더머니》의 흥행을 이끌었을지라도, 이제는 힙합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올라서는 데 일조한 프로그램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 구도를 격화하며 논란을 흩뿌린 과거와 달리, 훌륭한 무대와 참가자들의 스토리로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쇼미더머니》가 직접 보여줬다. 내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릴보이는 시즌9에서 자신의 깊숙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며 스스로를 증명했고, 시즌10의 신스는 미란이와 함께 서로를 향해 응원을 보내는 무대를 만들며 호평을 끌어냈다.

이제 힙합은 비주류가 아니다. 최초의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주류 장르로 데려오고 힙합신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은 힙합신의 파이가 이미 커졌다. 이 시점에 《쇼미더머니》가 힙합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시즌11이 목표하는 ‘원석의 발굴’, 새로운 스타를 발견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쇼미더머니》가 ‘국힙’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음은 자명하고,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긍정의 눈길이 많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프로그램이 흥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좋은 음악과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비춰야 한다. 열한 번째 시즌은 그것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을까. 힙합의 부흥기 속에서 ‘뉴 원’을 발굴할 수 있을까. 이제 무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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