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구사’, 聖을 빙자해 俗을 더럽히지 말라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oxen7351@naver.com)
  • 승인 2022.11.18 17: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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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치아 엘리아데처럼 고상하게 성(聖)과 속(俗)의 유기적 연관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초보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성과 속은 분리되어야 한다. 거기서 우리의 근대는 출발하는 것이고 전근대성을 극복할 지반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전히 정교 분리를 관철하지 못하고 신정 정치를 도모하는 세력이 현실정치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구사’, 즉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그것이다. 모든 것이 억압을 당하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 많은 사람은 ‘정구사’에 기대를 걸었고 1974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 결성된 이 단체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정구사’는 이때 해체되었어야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어렵사리 민주정을 세우고 민주주의를 향해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하나씩 내디딜 때마다 ‘정구사’는 대한민국 지향과 엇박자를 보였다.

성(聖)을 떠나 속(俗)에 깊이 젖어든 그들이 보여준 몇 가지 행태를 살펴보자.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비판했으며 2013년에는 박창신 신부라는 사람이 2010년에 있었던 북한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북한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같은 해 11월2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시국미사를 집전했다.

사실 ‘정구사’의 반(反)대한민국 친(親)북한 행태는 유래가 깊다. 문규현 신부라는 사람은 1989년 6월6일 ‘정구사’ 남북 동시 통일염원 미사의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하고 돌아왔다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을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키기 위해 그와 동행하려고 같은 해 7월25일 다시 불법 방북했다. 민주화 이래 ‘정구사’ 행태를 보면 오직 반(反)보수 친북한 입장에서 대한민국에 사건·사고가 생길 때마다 보수정권을 신앙의 이름으로 증오하는 활동을 보여왔다. 즉 성의 이름으로 속사(俗事)를 재단한 것이다.

14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 미사'에서 사제단이 헌화하고 있다.ⓒ뉴시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면에 나섰다. ‘정구사’ 소속 김영식 대표 신부라는 사람은 참사 희생자 이름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에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추모 미사에서 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변명이 가관이다. “10·29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도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라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정성껏 불렀다.” 그러면서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것이 패륜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패륜한 기도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이 성직자 활동인가? 명백히 정치활동이다. 명단 공개에 대해 민변조차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자 그에 대해 내놓은 답변도 가관이다. “앞으로 미사를 계속 드리게 된다면 이는 강제된 침묵 속에 애도하도록 만들고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책임자 처벌 꼬리 자르려는 정부나 여당에 책임이 있다.”

이런 흐름 속에 박주환이라는 어떤 신부의 충격적 망언이 자리한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해 떨어지는 모습이 담긴 합성 이미지를 올렸다. 같은 날 대한성공회 신부도 비슷한 글을 올렸다가 파문을 당했다.

반면 박 신부가 속해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는 그를 대신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그에 대해 성무(聖務) 집행정지 명령을 했다고 밝혔다. 그가 그간 무슨 성무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솜방망이 처벌을 보면서 한국 천주교 미래를 밝게 전망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종교인들은 이제 속을 떠나 성으로 돌아가라. 성을 빙자해 속을 더럽히지 말라는 뜻이다. 종교인들이 아니어도 우리네 속은 충분히 더럽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br>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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