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빈곤 포르노’보다 나쁜 ‘PC 포르노’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2.11.25 17: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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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여지없이 또 외교 참사가 발생했다.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가난과 고통은 절대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 누구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돼서도 안 된다. 김건희 여사의 이번 행동은 엄청난 외교적 결례일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규탄받기 충분하다.”

민주당 최고위원 장경태가 대통령 윤석열의 해외 순방 중 김건희가 캄보디아의 의료 취약층 아동과 함께 촬영한 사진에 대해 한 말이다.

목사 김디모데도 페이스북에서 김건희 비난에 가세했다. 그는 “기독교 선교회 대표로서 국내외 구호사역을 해오고 있지만 이 바닥 NGO나 구호단체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는 대표적 ‘쓰O기’ 짓이 있는데 바로 김건희씨가 한 저 짓”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작자가 대통령 영부인 놀이에 심취한 나머지 주로 연예인들이 맡아서 하는 홍보대사 활동을 그렇게 해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비공개 일정’ 이라면서 저따위 콘셉트로 사진을 찍어 그것도 대통령실에서 이걸 제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이O들이 미친O들이 아닌가 싶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2일(현지 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의 집을 찾아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2일(현지 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의 집을 찾아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맞다. 가난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김건희가 잘못했다. 그런데 두 분 역시 잘못했다. 나는 두 분이 김건희에 비해 훨씬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PC 포르노’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내 생각일 뿐이지만, 왜 그런지 내 이야길 들어봐 주시기 바란다.

‘PC 포르노’란 말은 없다. 내가 이번 사건을 보면서 느낀 게 있어 만든 말이다. PC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다. PC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반대하는 운동인바, 가난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건 전형적인 PC 메시지다.

PC는 정의롭고 진보적인 운동임에도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비판자가 많다. PC의 본산지인 미국의 경우 2018년 예일대 조사에선 심층 인터뷰를 한 3000명 중에서 80%가 “PC가 문제”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왜 그랬을까? PC를 자기과시나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써먹는 사람들 때문이다. 나는 PC의 이런 오·남용을 ‘PC 포르노’라고 부르련다.

김디모데는 “자극적인 편집으로 감정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포르노와 비슷하다고 ‘빈곤 포르노’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는 자상한 설명까지 제시했는데, ‘PC 포르노’ 역시 자극적인 감정 유도라는 점에선 다를 게 없다. 두 분의 김건희 비난은 증오를 앞세운 정치적 선전선동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PC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비방용 과장법이나 욕설은 쓰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최근 출간한 《정치적 올바름》이란 책에서 “특정인을 겨냥해 속된 말로 잘난 척하면서 싸가지 없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면서 “PC의 생명은 겸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PC는 이상적 목표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호통을 치면서 모욕을 주는 방식을 쓰면 안 된다. ‘빈곤 포르노’의 경우엔 그 어떤 정치인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장경태를 포함해 많은 정치인이 구사한 ‘서민 코스프레’ ‘수저 마케팅’과 ‘빈곤 포르노’의 경계는 분명치 않다. 자기편 사람의 ‘빈곤 포르노’는 미담으로 여기면서 반대편 사람만 골라 비난을 퍼붓는 선택적 ‘PC 포르노’는 곤란하다. 그건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독선과 오만’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빈곤 포르노’보다 더 강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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