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저주의 ‘극언 경쟁’, 정치는 사라졌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6 16: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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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근원은 ‘팬덤 정치’와 ‘극단주의 정치’

“법적인 책임을 어떻게든 회피하고자 발악하고 있다.” “나 혼자 살아보자고 추태를 부리고 있다.” 11월14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질의에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쏟아낸 말들이다. “(이런 감정은) 부모한테 배우고 사회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장관님은 부끄러움을 모르시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보고, 배우지 못하신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도 했다.

부모한테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탓하는 강 의원의 나이는 45세. 58세 나이의 이 장관보다 열세 살이나 적다. 나이라는 인생의 계급장을 떼고 맞붙는 곳이 국회겠지만, 연하의 국회의원에게서 ‘부모에게 배우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는 장년의 장관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같은 당 김용민 의원은 요즘 ‘사악’이라는 단어를 입에 자주 담는다. 캄보디아 방문 중 헤브론 의료원과 로타 소년의 집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를 향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장식품처럼 활용하는 사악함부터 버리기 바랍니다”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 의원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서는 “무능하고 사악한 정권”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전을 검색해 보니 ‘사악(邪惡)’이란 ‘간사하고 악함’이라는 의미다. 이쯤 되면 윤석열 정부는 악의 세력이니 아예 인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하루빨리 무너뜨리는 게 최선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민주당 진영에서 쏟아지는 극언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도 당 회의 자리에서 김 여사의 병원 방문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김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빈곤 포르노’란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을 가지고 가난을 자극적으로 연출한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전적 의미로는 성적인 자극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표현이 ‘반여성적’이라는 국민의힘 반발은 과잉 해석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가 무엇이든, 장 최고위원이 그것을 의도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듣는 사람들에게는 모욕을 담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논란에도 장 최고위원은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정치인들의 극언이 야권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국정감사 때 김제남 한국원자력재단 이사장에게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지”라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왔다. 같은 당 김성원 의원은 지난 8월 수해 현장 봉사활동을 갔다가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좀 잘 나오게”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미국 방문 중에 비속어 사용 논란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러니 정치권의 막말 혹은 실언은 여야 어느 한쪽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근래 들어 극단적이고 독한 말들은 주로 민주당 진영에서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막말은 보수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이념적인 색깔론을 들이대며 극언을 일삼아온 것이 보수정당 계열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2020년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데는 물론 코로나19 대응이 여당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준 원인도 컸지만, 보수정당 후보들의 잇따른 막말과 실언들이 중도층의 등을 돌리게 만든 영향도 컸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민주당 진영에서 험한 극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논란거리가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변화의 원인은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월등히 많은 민주당 의석 숫자다. 아무래도 의석수 비율상 설화가 확률적으로 민주당 쪽에서 많이 나오게 돼있다. 둘째,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주당 정치인들의 증오심이 그만큼 깊다는 얘기다. 셋째, 팬덤 정치가 민주당을 주도하니 강성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강경한 언어의 경쟁이 불었고, 그런 말들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극단적인가에 대한 언어 감수성이 떨어졌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민주당에선 극언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고, 논란이 불거져도 좀처럼 거두어들이지 않는 문화가 굳어졌다.

정치권부터 이러다 보니 사회 전체가 증오와 저주의 언어들에 둘러싸이고 있다. 주말마다 보수단체들의 집회를 이끌고 있는 전광훈 목사는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과 이재명은 주사파,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한을 더 좋아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북한으로 가지 않는다면 구치소에 보내야 한다”고 외쳐댄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가리켜 아무런 근거도 없어 ‘주사파’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의 폭력이며 정치적 선동이다.

윤석열 정부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신부들까지 나서서 죽음을 기원하는 증오와 저주의 언어들을 쏟아낸다. 대한성공회 김규돈 신부는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천주교 대전교구 박주환 신부도 윤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게시하면서 “비나이다~비나이다”라는 문구까지 넣었다. 김디모데 목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바닥 NGO나 구호단체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는 대표적 쓰레기 짓이 있는데 바로 김건희씨가 한 저 짓”이라고 썼다. 누구보다 용서와 화해의 목소리를 내야 할 종교인들까지 증오와 저주의 정치에 참전한 광경은 우리 시대가 어디에 서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언어는 삶의 문맥에 따라 존재”

막말과 극언의 정치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는 아니다.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삶의 문맥에 따라 존재한다”고 했다. 한국 정치에 난무하는 극언들은 극단주의적인 증오 정치라는 맥락 속에서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는 강경한 목소리들이 판을 장악해 버렸다. 여와 야, 혹은 보수와 진보는 공존하며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살벌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민주와 독재가 대결하던 수십 년 전의 정치에서도 이렇게까지 대결만 있고 정치가 부재했던 때는 없었다. 서로 싸우더라도 고비마다 정치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포기된 적은 없었다. 지금은 독재냐 민주냐를 가르는 선악의 이분법 시대도 아닌데, 정치는 사라지고 사활을 건 대결의 언어들만이 정치판을 뒤덮고 있다.

여야는 상대의 막말이 있을 때마다 국회 윤리위원회에 서로 제소한다. 하지만 솜방망이일 수밖에 없는 윤리위 제소로 막말이 다스려진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문제의 근원은 팬덤 정치를 등에 업고 강경 대결 일변도로 가는 정치에 있다. 2024년 총선을 거치면서 여야의 자정 노력을 통해, 그리고 유권자들의 심판을 통해 극단주의 정치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막말과 극언의 정치는 태연하게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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