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은 지방 소멸의 대책” 여수에 터 잡은 스타트업의 야심
  • 전남 여수=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3 14: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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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라우드, 인구 소멸 위기 지역에 자율주행 기술 구현 노력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에서 마땅한 교통수단도 점점 사라져 가는데, 이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11월11일 전라남도 여수의 여수엑스포역 근처에서 사람들이 생소한 차량에 올라탔다. 운전사가 없는 자율주행 셔틀 차량이었다. QR코드를 스캔해 탑승권을 구매하고 차량에 타면 여수엑스포역에서 여수세계박람회장 컨벤션센터, 여수시청소년해양교육원, 오동도 입구를 거쳐 베네치아호텔까지 갈 수 있다. 

11월11일 스프링클라우드가 전라남도 여수에서 선보인 자율주행 모빌리티 솔루션 체험시설 ‘멀티버스플래닛 여수’ 실외 공간에 자율주행 셔틀 차량들이 전시돼 있다.ⓒ시사저널 오종탁

“지방 소멸 속 교통 인프라 갈수록 낙후” 

자율주행 셔틀 차량 운영사인 스프링클라우드는 이날 여수세계박람회장에 자율주행 모빌리티 솔루션을 두루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멀티버스플래닛 여수’도 선보였다. 이 회사는 직원 70여 명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이다. 자동차 공학자 출신인 송영기 대표가 2017년 7월 창업했다. 현재 레벨 4(대부분 자율주행 모드로 주행하나 운전자의 개입과 모니터링 필요) 이상의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설립된 지 5년여밖에 되지 않은 이 작은 회사가 꾸는 꿈은 원대하다. 단순히 자율주행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지방 소멸에 대응해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었다. 현장에서 만난 송영기 스프링클라우드 대표는 “지방의 인구 감소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데다, 교통 인프라도 갈수록 더 낙후해 주민들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는 기업이 많지 않아 우리가 해소해 보려 팔을 걷어붙였다”고 밝혔다.  

경기도 판교에 연구소가 있지만 자율주행 모빌리티 솔루션 체험시설을 여수에 연 것도 지방 소멸과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결정이다. 산업연구원이 한국의 지역 간 인구 이동 특성을 고려해 개발한 ‘K-지방소멸지수’를 토대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인구 변화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방 소멸 위험도가 높은 소멸위기 지역은 총 59곳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13곳으로 선두를 달렸고 강원도(10곳), 경상북도(9곳)가 뒤를 이었다.  

장현명 스프링클라우드 미래사업전략실 상무는 “전남 지역 등에서 경제 침체는 둘째 치고 머지않아 버스 운행 같은 기본적인 교통 서비스조차 충분히 제공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용객 부족, 운전사 인건비 부담 등 수익성 문제에 정면으로 부닥치기 때문”이라며 “옥죄어 오는 리스크를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상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상무는 이어 “수도권과 광역시보다 (어려움에 처한) 지방에 자율주행 모빌리티 솔루션이 먼저 구현돼야 한다는 판단으로 여수에 터를 잡게 됐다”고 덧붙였다.  

멀티버스플랜스 여수 개소식엔 스프링클라우드와 뜻을 같이하는 여수시청, 여수시의회 관계자도 대거 참석했다. 이 밖에 파트너사 임직원, 협력 연구기관과 대학 관계자, 일반 시민 등 수백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승용 외 택배·청소에도 자율주행 구현 

스프링클라우드는 멀티버스플래닛 여수 방문객들에게 △오픈소스 기반 사용자 목적형 자율주행 모빌리티 플랫폼인 ‘오페라 KIT’ △오페라 KIT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물류 배송용 자율주행차 ‘민트 D’ △스프링클라우드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자율주행 셔틀 차량 ‘민트 B’ △자율주행 청소차 △자율주행 고신뢰성 센서 ‘이노비즈 라이다’ 등을 소개했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게 자율주행 청소차다. 지방 소멸로 인한 문제를 떠올리며 구상하게 됐다고 장 상무는 설명한다. 그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극심해진 지역은 대중교통은 물론 청소 차량도 운영하기 쉽지 않을 거라 판단한다. 거리마다 청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전사고나 화재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면서 “자율주행 청소차가 해당 문제의 대응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내 체험 공간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프랑스 나브야(Navya)사에서 제조한 15인승 자율주행 셔틀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차량으로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의 16개국에 150대가량이 출고된 상태다. 여수엑스포역 일대에서 매일 손님들을 태우고 있는 자율주행 셔틀 차량도 이 모델이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차량에 탑승했다. 함께 탄 승객들이 들뜬 표정으로 차량 내부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운전석은 없었고 라이다 센서로 움직임이 통제되고 있었다. 라이다 센서는 자율주행 차량이 주변 물체와의 거리를 파악하고 주행 속도나 방향을 판단하도록 돕는 장치다. 자율주행 셔틀 차량의 움직임은 멀티버스플래닛 여수 내에 있는 관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자율주행 셔틀 차량이 여수세계박람회장 내 해안도로를 저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최고 속력은 시속 25km다. 갑자기 자전거 벨 소리 같은 경고음이 들리며 차량이 멈칫했다. 직원이 “주행 중 장애물이 라이더 센서에 인식될 때 이런 반응이 나타난다”며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멀티버스플래닛 여수 관람객은 자율주행 모빌리티 솔루션 외에 드론, 3D 프린팅, 스마트팜, 로봇 카페 등 다른 미래형 콘텐츠도 경험해볼 수 있다. 연구개발(R&D) 공유 오피스, 4차산업 아카데미 등 부대시설은 지역 창업 생태계 조성의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스프링클라우드는 국내외 연구원과 대학생 등이 자유롭게 멀티버스플래닛 여수를 이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저명한 전문가들을 초청한 포럼이나 자율주행 차량 레이싱 경진대회 등 젊은 층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도 개최하기로 했다. 

ⓒ시사저널 오종탁
송영기 스프링클라우드 대표가 멀티버스플래닛 여수 개소식에서 사업 확장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시사저널 오종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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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플래닛 여수 관람객들이 자율주행 셔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시사저널 오종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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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플래닛 여수 내의 관제센터에서 담당자가 자율주행 셔틀 차량의 실시간 모니터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시사저널 오종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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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라우드가 물류 배송용으로 개발한 자율주행차 ‘민트 D’ⓒ시사저널 오종탁

여수 인근 지역과 사천으로 서비스 확대 

제1회 포럼은 멀티버스플래닛 여수 개소식 다음 날 바로 개최됐다. 11월12일 열린 ‘퓨처핸즈업, 내일을 바꾸는 미래기술 이야기’ 포럼에선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와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문영준 한국교통연구원 선임기술위원이 강사로 나섰다. 지역 기업가, 연구자, 대학생 등이 진지하게 강의를 경청하고 질문도 대거 쏟아내는 등 열띤 분위기에서 포럼이 진행됐다. 스프링클라우드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포럼을 개최해 멀티버스플래닛을 미래 기술 트렌드와 지역 현안을 최전선에서 다루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송 대표는 “궁극적으로 지방 소멸 등 지역의 문제를 관내 기업, 연구기관, 대학 등이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른 시일 내에 상용화를 이루기 위한 기술적 성장도 당면 과제다. 아직 일반 도로에서 레벨4 자율주행 서비스를 실행하기엔 사고 등 위험이 존재한다. 스프링클라우드는 여수에서 계속 자율주행 차량을 테스트하며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해 24시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현코자 한다. 아울러 스프링클라우드는 여수 인근의 순천, 광양 등으로 자율주행 모빌리티 체험 콘텐츠를 확장해갈 계획이다. 현재 경상남도 사천에도 멀티버스 플래닛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 1월 경남도청, 사천시 등과 관련 투자협약(MOU)을 체결하고 6월엔 9만9174㎡(3만 평) 규모 사업 부지를 확보했다. 

한편 산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비수도권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가 국가 성장 침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지방 소멸 수준에 따라 지방 입지 기업에 차등화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는 수도권 기업이 비수도권으로 이전할 경우 법인세는 7년간은 100%, 이후 3년간은 50% 면제하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소멸위기 지역에 기업이 입지할 경우 무기한으로 법인세를 100% 면제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정부 “자율주행,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재정 지원 확대” 

정부는 자율주행을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이자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꼽으며 재정 지원을 확대해 가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선 연내 레벨3(운전자 개입이 필요한 조건부 자율주행)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이어 2025년 레벨4 버스·셔틀, 2027년 레벨4 승용차 출시를 추진하고 있다. 2035년 완전 자율주행이 대중화(자율주행 신차 보급률 50% 이상)될 경우 도로 혼잡도가 완화되면서 이동 시간이 줄고, 지난해 2916명이던 교통사고 사망자도 2035년 1000명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현재 제작 기준 보험제도 등이 마련된 레벨3 자율주행차와 달리 레벨4는 제도 미비로 국내 출시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2024년까지 완전 자율주행에 부합하는 제도를 선제적으로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자율주행 분야 새싹기업 대표들을 만나 “전방위적인 정책 지원으로 민간이 자율주행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차량 제작비, 사업 운영비 관련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민관 협의체인 ‘자율주행 산업발전협의회’를 활용해 기업 간 소통과 상호 투자를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율주행 테스트베드인 케이시티(K-City) 고도화와 임시운행 신속 허가제 도입, 가이드라인 배포 등으로 기업들의 수요에 맞는 테스트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새싹기업 대표들은 자율주행 테스트베드를 확대하고, 실제 도로에서 주행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임시 운행허가 규제를 개선해 달라고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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