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시대에 유승민의 시간은 올까
  • 박성의·변문우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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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심’ 탓 대선·지선 경선 패배한 劉…은퇴 접고 전대 출마 고심
‘중도·수도권·청년층’ 발판 삼아 ‘非尹 개혁 텐트’ 구축 가능성

보수 개혁을 이끌 적임자 혹은 보수를 등진 배신자.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혹은 무력한 만년 낙선 후보. 유승민은 ‘동전의 양면’ 같은 정치인이다. 따뜻한 보수를 꿈꾸지만, 처한 현실이 차갑다. 실세와 등지고 계파를 저격하며 유명해졌지만, 이 탓에 세(勢)와 ‘당심’을 잃었다.

이제 유승민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오는 전당대회 혹은 차기 대통령 선거가 그의 은퇴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유승민에게 ‘중간’은 없다. 정점에 서거나, 이대로 무너질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늘 ‘반대편’에 섰던 보수 진영의 반골(反骨) 개혁가였던 유승민의 시간은 과연 올 수 있을까.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또 척진 대통령, 등 돌린 당심

“권력의 뒤끝이 대단하네요. 공정도, 상식도 아닌 경선이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의 대결에서 졌습니다. (중략) 권력의 칼춤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중략) 여기가 멈출 곳입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4월22일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초선인 김은혜 전 의원에게 패하자 SNS를 통해 정계 은퇴를 암시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겨냥한 ‘낙선 운동’ 배후로 윤 대통령과 측근들을 저격했다. 파장은 컸다. 권성동·장제원 의원 등 당내 친윤 세력은 물론 윤 대통령 역시 유 전 의원에 대해 큰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실 사정에 능통한 여권 한 핵심관계자는 “‘통’(윤 대통령)이 유 전 의원을 싫어하다는 건 이제 오피셜한(공식) 사실”이라며 “윤 대통령은 피아(彼我) 구분이 확실한 스타일이다. 경선 과정에서부터 쌓인 앙금이 이제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변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제 유 전 의원 이름 뒤에는 ‘비윤’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래서 외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당을 움직이는 핵심 계파와 이제 막 취임한 대통령을 저격한 이상 ‘당심’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 측근의 힘이 셀 수밖에 없다. 특히 당권의 핵심은 국민 여론이 아닌 당 여론”이라며 “이 상황을 유 전 의원이 돌파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당의 분위기가 ‘친윤 대(對) 반윤’ 구도로 흐른다면 (세가 적은) 반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여론 추이도 그렇다. 여론조사업체 알앤써치가 뉴스핌 의뢰로 지난달 20~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최종 1012명에게 실시해 11월2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차기 여당 당 대표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서 유 전 의원이 26.6% 지지를 얻어 나경원 전 의원(12.5%)과 안철수 의원(10.3%)을 크게 앞섰다. 그러나 ‘당심’은 달랐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나 전 의원이 24.8%로 선두를 달렸다. 반면 유 전 의원은 14.1%를 기록해 안 의원(14.3%)에게도 오차범위 내에서 밀렸다.

2021년 7월9일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 ⓒ시사저널 이종현
2021년 7월9일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 ⓒ시사저널 이종현

연패에도 유산은 남았다?

분명 전당대회는 유 전 의원에겐 불리한 무대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선 ‘역선택’을 방지하자며 전당대회 당심 반영 비율을 90%까지 끌어올리자는 의견이 나온다. 그럼에도 유 전 의원이 출마를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유 전 의원에게 전당대회가 ‘차기 대권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이 주목하는 건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층)이다. ‘당심’을 얻을 수 없다면 ▲선호 당이 없는 중도층 ▲친이준석계를 주축으로 하는 비윤계 ▲수도권 기반의 청년층을 불러 모을 ‘반윤 텐트’를 꾸리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며, 이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무대가 이번 전당대회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박상병 평론가는 “유승민의 철학, 계획, 또 합리성을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바로 당권 도전이다.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승리하면 금상첨화지만 설사 지더라도 국민을 향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했다. 

비윤계를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선 유 전 의원이 ‘윤석열의 시대’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의 시대’, ‘문재인의 시대’와 비교하면 ‘윤석열의 시대’가 유 전 의원의 강점을 더 돋보이게 할 최적의 환경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그들이 주목하는 건 ‘정치극단주의(진영논리를 내세우는 극단적 정치 성향)의 심화’와 ‘글로벌 경제불황의 도래’이다. 경제학자로 13년,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정치인으로 22년을 살아온 유 전 의원이 기회를 잡을 적기(適期)라는 분석이다.

과거 바른정당에 몸담았던 여권 한 관계자는 “과거 실세였다던 ‘친박’과 ‘친이’가 지금도 실세인가”라고 반문한 뒤 “시대가 ‘친윤’을 거부하고 새로운 보수를 원한다면 그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 누굴까. 적어도 현재 ‘윤심’에 목메고 있는 당권 후보들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한 교수는 “주변 환경에 본인을 변화무쌍하게 맞추는 게 권력을 갖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그런 면에서 유 전 의원은 시류나 시대에 편승하지 않는다. 어려운 길이지만, 초지일관 같은 메시지를 내며 끝까지 ‘자기 정치’를 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결국 ‘시대’가 유승민을 원해야 한다. 현 ‘윤석열의 시대’에서 유 전 의원이 기회를 갖기 어렵겠지만, 차기 총선에 당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유 전 의원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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