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성희롱·폭언도 참아라”…사회복지사 불안 덜어줄 법안은?
  • 변문우 기자·정용석 인턴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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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법’ 개정안 발의…“피해 발생 시 신고 의무화”
전문가들 “신고 후 가해자에 대한 고려도 법안 내용에 반영돼야”
사회복지 종사자들은 근무 중 복지수급자들로부터 폭언·폭행은 물론 성추행을 당하는 등 신변의 위협도 자주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사회복지 종사자들은 근무 중 복지수급자들로부터 폭언·폭행은 물론 성추행까지 당하는 등 신변의 위협을 자주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신병원에서 근무 중인 5년차 사회복지사 A(29)씨는 요즘 심각하게 전직을 고민하고 있다. 병원 환자들로부터 폭언을 듣는 것은 물론, 신체적 위협까지 받고 있어서다. 한 환자는 평소 A씨와 관계가 좋다가도 정신 착란증상이 오면 A씨의 어깨를 밀치며 시비를 건다. 또 한 환자는 의료비 지원이 안 됐다는 이유로 사무실까지 찾아와 의자를 들고 위협을 가한다. 병원 가드를 통해 즉각 조치는 이뤄졌지만, A씨는 당시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서울의 한 주민 센터에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는 여성 B(31)씨는 복지수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B씨는 복지 사각지대 현장에 직접 찾아가 수급자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해왔다. 그런데 한 수급자는 B씨가 본인 집에 찾아올 때마다 B씨 옆에 앉아 원치 않는 스킨십과 성희롱 발언을 이어갔다. 결국 B씨는 고민 끝에 질병휴직을 냈다. 이 과정에서 B씨를 보호하는 장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처럼 사회복지 종사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 처해있다. 특히 이들은 근무 중 복지수급자들로부터 폭언·폭행은 물론 성추행을 당하는 등 신변의 위협도 자주 느낀다. 심각한 경우는 일부 수급자들이 사회복지사에게 칼을 겨누거나 찌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초 발표된 ‘2021 사회복지사 통계연감’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사회복지사 4210명 중 37.8%만이 근무환경이 안전하다고 응답했다. 또 전체 응답자 중 70.7%는 언어·정서·신체 등의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4명 중 1명(25%)는 수급자와의 관계 때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를 겪은 이후에도 자신이 소속된 기관에서 아무런 대응이나 사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61.9%로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사회복지현장은 직장 내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적절한 예방적 조치가 필요함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일부개정안(사회복지사법)’에선 이러한 예방적 조치가 의무화돼있진 않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6.1 지방선거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30일 오후 국회에서 6.1 지방선거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 수사기관 ‘신고 의무화’ 통해 안전망 마련

이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일부개정안(사회복지사 처우법)’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피해자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다. 현장에서 폭력 등의 피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의견이 없는 경우 시설의 장이 직접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또 피해자의 고충 해소를 위해 다른 보직으로의 전환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김민석 의원실 관계자는 “사회복지사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법적인 근거를 만들고자 제정한 법안”이라며 “비단 사회복지 종사자뿐 아니라 수급대상자 등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두루 보호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법은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돌봄 현장에 갔을 때 발생한 피해의 경우도 폭넓게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엔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의견이 없는 경우’ 신고를 의무화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의원실 관계자는 “실제로 복지 종사자와 수급자의 관계가 좋을 수도 있는데, 수급자가 정신질환이나 병력 때문에 우발적으로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사회복지 종사자가 신고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며 “서로 동행하는 관계에서 피해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고를 하게 되면, 오히려 피해자와 대상자 모두에게 후유증이 더 생길 수 있다는 현장 목소리를 많이 들어서 이처럼 명시했다”고 밝혔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발의안 개정안은 사회복지 종사자뿐 아니라 수급대상자 등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두루 보호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사진은 사회복지 종사자와 수급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발의안 개정안은 사회복지 종사자뿐 아니라 수급대상자 등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두루 보호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사진은 사회복지 종사자와 수급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복지기관 평가 불이익·가해자 복지 사각지대 우려”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선 사회복지사와 전문가들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다. 사회복지사 C(30)씨는 “직장 내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억제 수단이 생기는 건 환영할 일”이라며 “그간 사회복지사들은 현장에서 폭력 등 피해를 겪어도 묵인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잦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루 빨리 도입돼서 법적 보호를 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법안이 더 촘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상급 기관장 등이 인사상 불이익을 이유로 신고를 꺼릴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폭력 피해가 알려지면 사회복지법인 등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피해자의 피해 복구 과정을 원만하게 해결했는지를 평가 내용에 넣는 방안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가해자에 대한 고려도 법안 내용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고를 당한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복지 사각지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위협을 받았던 사회복지사 A씨는 “분명 법 제정이 된다면 클라이언트(복지수급자)가 사회복지사에게 보다 협조적 태도를 보일 수는 있다”면서도 “사회복지사의 신고를 당한 가해자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껴 더욱 숨어들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복지 사각지대에 몰릴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A씨는 “가해자가 법적 조치를 받은 이후 복지 시스템이 재개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사회복지사를 현장에서 직접 보호해줄 인력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청원경찰제도가 대표적인 방안이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악성 민원에 대응해 복지관 내 청원경찰을 배치하고 있으나 의무 사항은 아니다. 특히 복지관을 제외한 일터는 이 제도 자체가 요원하다. 사회복지사 C씨는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 대처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물리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청원경찰 배치를 의무화하는 등 안전한 근무환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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