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운명 좌우할 ‘경우의 수’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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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소추 시 한창섭 차관이 직무대리…역대 ‘탄핵 장관’은 0명
與 일각서도 ‘포스트 이상민’ 목소리…“사법 아닌 정치로 풀어야”

“국민의 뜻, 국회의 뜻을 존중해 달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해임 건의, 대통령께서 무시하셔야 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 판단할 문제다.” (용산 대통령실 공식 브리핑)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를 두고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의결하면서다. 국민의힘이 ‘국정조사 보이콧’으로 맞불을 놓은 가운데 대통령실은 사실상 ‘해임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제 민주당에게 남은 카드는 ‘탄핵 소추’다. 민주당이 이 장관 탄핵을 추진하는 순간 ‘경우의 수’는 3가지로 좁혀진다. ▲헌정사상 첫 장관 탄핵 ▲헌재의 탄핵 소추 기각 ▲이 장관 자진사퇴다. 윤 대통령 최측근에서 ‘논란의 인물’이 된 이 장관. 그의 운명은 언제, 어떻게 결정될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2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2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핵 소추되면 ‘차관 직무대리’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이 장관 해임을 거부한다면 탄핵소추까지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친이재명계인 정청래 최고위원은 11일 페이스북에 “해임안을 대통령이 불수용하면 불같이 일어나 탄핵안을 통과시켜 국민 무서운 줄 보여줘야 한다”고 적었다.

탄핵소추안은 해임건의안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해 재적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원내 과반 의석(169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단독으로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처리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 탄핵소추까지 끌고가지 않을 수도 있다. 헌정 사상 첫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에 대해 부담을 느껴 역풍을 우려할 경우다.

민주당이 숫적 우세를 앞세워 현재까지 공언한대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다면 이 장관의 직무권한은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최장 180일 동안 정지된다. 이 기간 동안 이 장관은 야인(野人)으로 돌아가게 되며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야 한다. 대신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장관의 업무를 대리하게 된다.

민주당 원내 한 관계자는 “탄핵 소추는 최후의 카드다. 지금이라도 (여당이) 국정조사에 협조하고, 대통령이 해임을 결단하면 된다”며 “그러나 대형 참사에 대한 책임을 끝내 외면한다면, 이 장관은 헌정 사상 첫 ‘탄핵 장관’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관 탄핵 가능성? “전례 없다”

다만 이 장관이 실제 탄핵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역대 국회에서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지난 19~21대 국회에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결국 부결되거나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아 폐기됐다.

확률로 보면 ‘장관 탄핵’은 분명 어렵다. ‘해임 건의’가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면, ‘탄핵’은 철저한 사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임건의안과 달리 탄핵 소추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쳐야 해 명백한 위법 사유가 필요하다. 실제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이 이 장관의 무능(無能) 혹은 범법(犯法)과 관련 있는지 민주당이 증명해야 하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비해 당내 법률 검토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 법률위원장인 김승원 의원은 12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이 장관이 헌법 제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11월3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11월3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트 이상민’은 불가피?

정치권 일각에선 이 장관의 거취는 대통령실이나 여야, 헌법재판소가 아닌 ‘이상민 본인’이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법적 책임과 별개로 혼란을 야기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윤석열계 국민의힘 한 의원은 “대통령의 스타일 상 이 장관에 대한 신임을 먼저 거두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이 장관이 결단해야 한다. 스스로 물러난다면 대통령실과 당 모두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과거 논란에 휘말린 국무위원 대부분이 해임이나 탄핵이 아닌 ‘자진 사퇴’로 거취가 정해졌다. 야당이 해임을 건의했던 ▲임철호 전 농림부 장관(이승만 정부) ▲권오병 전 문교부 장관(박정희 정부) ▲오치성 전 내부부 장관(박정희 정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 정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노무현 정부) 등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

전문가 일각에선 이 장관과 대통령실이 정치적 결단을 할 ‘골든 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충분한 정치적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여권이 제기하는 ‘재난의 정치화’라는 논리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만든 주장에 불과해진다”면서 “모든 것을 행정·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재난의 사법화’가 훨씬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제 이상민 장관 경질은 사태 수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면서 “150명이 넘게 숨졌다. 충분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국민은 절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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