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리 나선 BGF vs 보폭 넓히는 롯데·한화·CJ 후계자들
  • 허인회·이석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12.27 07:35
  • 호수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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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 후계자들 승진 잔치 이면의 속사정…신사업 성패에 따라 승계구도 변화 가능성도

최근 계속된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인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재계의 경영 환경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빠졌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최근 제시한 2023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1.5%. 기존 2.3%에서 1.5%로 3개월 만에 0.8%포인트나 조정됐다.

재계는 당장 ‘돈줄 죄기’에 나섰다. 지금은 투자보다 한 푼이라도 아껴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내 기업 10곳 중 5곳이 새해 ‘투자계획이 없다’거나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삼성과 SK, 현대차, LG, 롯데 등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97조6966억원(9월말 기준)으로 전년 말(79조8053억원) 대비 17조8914억원(22.4%)이나 증가했다.

ⓒBGF그룹 제공·연합뉴스·뉴시스·한화 제공

위기 상황에서 후계자 전면 배치, 왜?

눈에 띄는 사실은 연말 인사에서 유통 대기업 오너 2·3세들이 대거 경영 전면에 배치됐다는 점이다. 롯데와 BGF그룹이 대표적이다. 한쪽은 본격적인 승계 수업을 받게 된 반면, 다른 한쪽은 계열 분리를 염두에 둔 승진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인적 쇄신을 앞세운 인사를 단행했다. 젊은 리더십을 앞세워 대표이사급 얼굴을 다수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도 상무로 승진했다. 신 상무는 2020년 일본 롯데홀딩스 부장으로 합류했지만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다 지난 5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 취임 이후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8월에는 신동빈 회장의 베트남 출장에 동행하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지난 9월 열린 ‘롯데-노무라 교류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기존과 역할은 변동이 없지만 1년 만에 승진한 신 상무의 행보는 부친인 신 회장의 승계 행보와도 거의 일치한다. 신 상무는 일본 사학 명문 아오야마가쿠인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게이오대를 거쳐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를 수료했다. 신 회장이 아오야마가쿠인대를 졸업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부자의 모든 학력이 동일하다. 이후 신 상무는 2014년 노무라증권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롯데그룹 합류는 2020년 10월 일본 (주)롯데 유통기획부 리테일 담당 부장으로 입사하면서다. 2021년 4월 일본 롯데홀딩스 영업전략부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에 올랐다.

신 회장 역시 노무라증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부장으로 입사해 유통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이후 1990년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상무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신 상무가 내년부터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수소에너지, 전기 소재 분야에서 글로벌 협력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신 상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지주사와 계열사 지분이 전무하고 국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 국적인 그가 2025년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1986년생인 신 상무는 만 38세가 되는 2025년이 돼야 병역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그룹의 홍정혁 BGF에코머티리얼즈 대표도 지난 11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홍석조 BGF 회장의 차남인 그는 BGF의 신사업개발실장도 맡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로 홍 사장의 그룹 내 입지가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홍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 BGF 대표이사는 2020년 동생보다 먼저 사장 자리에 올랐다.

눈에 띄는 사실은 홍정혁 대표가 사장 자리에 오르자마자 지분 정리에 나섰다는 점이다. 홍 대표는 지난 12월6일 보유 중인 BGF리테일 주식 1만3776주(0.08%)를 전량 장내 매도했다. BGF리테일과의 지분 관계를 완전히 끊은 셈이다. 대신 부친인 홍 회장으로부터 지주사인 BGF 주식을 매수했다. 홍 회장은 보유 중인 BGF 지분 53.54% 가운데 21.14%를 두 아들에게 매각했다. 이번 거래로 BGF 지분은 홍 회장 32.4%, 홍정국 사장 20.77%, 홍정혁 대표 10.47%로 변동됐다.

지주사 지분은 형인 홍정국 사장이 2배가량 많지만 아직 승계구도가 정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이번 지분 정리로 인해 BGF그룹은 홍정국 사장이 편의점인 BGF리테일을 맡고, 홍정혁 대표는 그룹의 신사업인 BGF에코머티리얼즈를 전담하는 모습이 됐다.

 

한화·CJ 3·4세들도 “공격 앞으로”

BGF는 최근 몇 년 사이 소재 사업을 신성장 사업으로 점찍고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2019년 BGF에코바이오를 설립해 바이오플라스틱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생분해성 발포 바이오플라스틱 소재 기술력을 갖고 있는 KBF를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부가 EP(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컴파운드 소재 기술을 보유한 코프라를 2500억원에 인수했다. 소재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현재 BGF 매출을 절대적으로 BGF리테일이 담당하고 있지만 향후 홍 대표가 이끄는 BGF에코머티리얼즈가 성장할 경우 그룹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승계는 아직 안갯속이다. 홍 회장이 여전히 BGF 지분 32.4%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는 연말 인사에서 사내 핵심 직위인 식품성장추진실장으로 옮겼다. 2021년 말 정기인사에서 임원급인 식품전략기획1담당 경영리더로 승진한 지 1년 만이다. 이 실장은 향후 글로벌 식품사업 확대를 위한 전략 수립뿐만 아니라 신규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회사 경영 전반을 총괄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도 연말 인사에서 전무로 한 계단 승진했다. 김 전무는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전략본부장도 겸임하면서 신규 사업 추진과 인사, 기획 등 경영 전반에 참여하게 될 예정이다. 후계자들에게 신사업을 포함한 중책을 맡겨 능력을 확인하고 ‘책임경영’으로 경영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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