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2억원 상당 국고손실 초래돼
검찰이 6조원대 규모의 조달청 철근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혐의로 7대 제강사 전·현직 임직원들을 기소했다. 이들이 담합한 규모는 6조8442억원으로 관급 입찰 사상 최대 규모다. 약 6732억원 상당의 국고손실이 초래된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조달청은 별도의 손해배상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지난 21일 현대제철·동국제강·대한제강·한국철강·와이케이스틸·환영철강공업·한국제강 등 7대 제강사 전·현직 임직원 22명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위반·입찰방해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22명 중 담합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고위급 임원 등 3명은 구속, 나머지 가담자 1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검찰 기소는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로 이뤄졌다. 조달청은 1년 또는 2년 단위로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 산하 각급 학교 등 각종 공공기관이 사용할 철근을 구매하기 위한 입찰을 진행해오고 있다. 1년 치 물량은 130만~150만 톤(t)이며 이는 국내 전체 철근 생산량의 10~15%에 해당한다. 한 해 평균 계약액으로 따지면 9500억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이들 제강사들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조달청이 정기적으로 발주하는 철근단가계약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받을 물량을 정해 업체별로 배분하고 투찰 가격을 합의하는 식으로 담합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담합 수법은 치밀했다. 조달청의 철근 입찰은 희망수량 경쟁방식으로 실시됐다. 입찰자가 계약할 희망수량과 단가를 투찰하고,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 순으로 조달청 입찰공고 물량에 도달할 때까지 입찰자를 낙찰자로 정하는 방식이다.
보통 희망수량 경쟁방식의 경우 업체가 써내는 가격, 즉 투찰 가격이 상이하게 마련이다. 업체마다 원하는 물량도 다르고 조달청이 입찰시 예상하는 예정가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최종적으로 써낸 7~9차까지의 투찰 끝에 써낸 가격은 모두 동일했다. 최저가격을 사전에 합의한 것이다. 이에 예정가격 대비 투찰가격 비율인 투찰률은 98.94~99.99%에 달했다.
공정위와 검찰이 담합을 의심한 또 다른 근거는 입찰 업체들이 2012~2018년까지 매번 일정 비율(일정 물량)로 낙찰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정위 측은 “5개 분류별로 희망수량과 투찰가격으로 응찰해야 하는 다소 복잡한 입찰 방식이지만 총 28건의 입찰 과정에서 담합에 합의한 업체 중 단 한 곳도 탈락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역시 “평균 99.765%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투찰율로 7년간 단 하나의 탈락 업체 없이 관수철근을 낙찰받아 왔다”며 “결국 제강사들이 국가를 상대로 민간시장 대비 폭리를 취한 범행의 진상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업체들은 사전 조율에도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입찰 공고가 나면 모처의 까페에서 모여 물량 배분을 협의하고 조달청이 입찰 기초금액 산정에 필요한 가격제출을 요청하면 입찰담당자들은 어김없이 모였다. 아울러 입찰일에는 대전에 위치한 조달청을 방문하기 앞서 대전역 근처에서 각 업체별 배분 물량, 투찰가격을 점검하고 투찰 예행연습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2565억원을 부과했다. 전·현직 직원 9명에 대해서는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가담 정도가 훨씬 큰 대표이사 등 13명을 추가로 적발해 공정위에 고발요청했다. 7대 제강사 실무진들은 공정위에선 범행을 부인했으나 검찰에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달청은 피해를 입은 공공기관과 함께 별도의 손해배상도 현재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