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기 감지’ 영아 1만 명 넘는데, 지자체 안전 확인은 67%뿐
  • 정용석 인턴기자 (yong@sisajournal-e.com)
  • 승인 2022.12.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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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가해자 90% 이상이 부모…지자체 확인 없으면 은폐 위험
‘즉각 분리 보호’ 영아 70% 이상 시설 입소…가정 위탁 10%에 그쳐
지난 4월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등 관계자들이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양모에게 징역 35년형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등 관계자들이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양모에게 징역 35년형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생후 4개월 된 아기가 숨졌다. 당시 숨진 아이를 살피던 의료진은 사망 원인을 아사(餓死)로 추정했다. 숨진 아기는 출생 이후 B형 간염 접종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예방 접종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지난 2018년 보건복지부가 도입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이러한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시스템은 예방 접종 기록이 ‘0회’인 경우 위험요인으로 파악하나, 사망 아동은 출생 직후 1회 B형간염 예방 접종 이력이 있어 감지하지 못했다.

위험을 감지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순 없다. 위기아동으로 분류된 0~2세 아동(영아) 중 지방자치단체의 가정방문 등으로 안전이 확인된 영아는 70%도 채 되지 못하는 등 사회안전망엔 구멍이 뚫려있었다.

22일 시사저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보건복지부로부터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통해 발굴된 영아는 1만884명이다. 이 가운데 지자체의 가정방문을 받은 영아는 67%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시스템은 예방 접종의 미접종 등 44개 정보를 활용해 선제적으로 위기 아동을 찾아 안전을 확인하고자 마련됐다. 빅데이터 정보를 통해 발굴된 명단을 지자체에 통보하면 담당 공무원은 대상 아동 가정을 방문해 양육환경을 조사한다.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신고율 떨어져 가정방문 필수적

복지 공무원의 가정방문이 꼭 필요한 이유는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가해자의 91.1%가 부모였다.

통상적으로 아동학대 가해자가 부모가 아닐 경우 비교적 신고가 빠르게 이뤄지지만, 부모가 가해자라면 신고율은 크게 떨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아이들이 크게 다치거나 숨져도 은폐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지자체의 가정방문이 없다면 결국 아동학대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다. 

가정방문 사각지대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에선 인력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사회복지 공무원 A씨는 통화에서 “복지부에서 넘어오는 위기아동 명단에 비해 현장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인력은 한없이 부족한 상태”라면서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등 업무가 과중하다”고 토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러한 고충을 고려해 지난 7월 복지부 장관과 지자체장 등에게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적정 인원 배치를 권고하기도 했으나 현장 인원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민간과 공공기관이 함께 아동학대 발굴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위기 아동을 확인할 수 있는 공무원 숫자가 부족하다. 기존의 행정직 공무원을 복지직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지만 제한적”이라면서 “지역에도 다양한 사회복지 인력이 있다. 민간 인력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위기아동에 대한 자료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민간 인력은 해당 정보를 이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면서 “민간의 영역과 아동학대 대응체계가 일원화되려면 우선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선우 의원은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도 인원이 부족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충분한 인원 배치 및 예산 편성을 통해 아동학대 위험에 놓인 아이들을 보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Pixabay
아동학대 ⓒPixabay

학대 아동 발굴돼도 대부분 시설 입소

가정 학대로부터 분리되더라도 영아들이 갈 보금자리는 열악하다. 대부분의 학대 피해 영아들은 단체생활로 내몰린다. 강선우 의원실이 받은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즉각 분리제도’를 통해 분리 보호를 받은 영아는 138명이다. 이 가운데 시설 입소가 103건(74.6%)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친족보호 18건(13.0%), 가정위탁 15건(10.9%)가 뒤를 이었다.

학대 피해를 받은 영아들은 시설 입소보다 전문 위탁가정에서 집중 돌봄을 받는 방안이 적합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송혜승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사업부문장은 “영아기는 발달 단계상 집단으로 돌보기보다는 집중 보호가 필요한 시기”라며 “유럽 등 선진국은 영아들을 시설로 보내는 것을 지양한다”고 설명했다. 

전문 위탁가정 신청이 까다로운 점도 걸림돌이다. 보호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가정 위탁부모 경험 3년 이상 △사회복지사업법 시행령 제2조제1항에 따른 사회복지사의 자격 △영유아보육법 제21조제2항에 따른 보육교사의 자격 △의료법 제2조제1항에 따른 의료인의 자격 등 전문요건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추가 자격 요건으로 일정 수준 이상 소득이 있어야 하며 보호아동을 포함해 자녀 수가 3명을 넘으면 안 된다. 

전문가들은 가정위탁 활성화를 위해서는 위탁가정 풀 확대와 행정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지자체 공무원으로선 까다로운 가정위탁 절차보다는 시설입소가 훨씬 편리한 방안”이라며 “위탁절차를 간소화해서 학대 아동을 빠르게 위탁가정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송 부문장도 “정부 차원의 홍보를 강화하고 행정 절차 간소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자격조건의 완화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선을 그었다. 송 부문장은 “자칫 자격이 부족한 위탁부모가 아동을 보호함으로써 또 다른 위험을 발생시킬 소지가 있다”고 했다.

다만 재정 지원이 열악해 인력풀 확대 가능성엔 물음표가 찍힌다. 대체로 보호가정은 지자체 별로 상이하지만 일 3만원 가량의 보호비용을 지원받는다. 지원자들의 헌신에 기대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꼴이다. 송 부문장은 “전문가정위탁 사업을 정부가 지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정부가 사업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은 예산 한계에 봉착해있다”며 “지방에 이양된 가정위탁 예산의 국고화를 통해 안정적인 재정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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