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비상 경영’ 넘어 ‘생존 경영’으로‘
  • 유호승 시사저널e. 기자 (yhs@sisajournal-e.com)
  • 승인 2023.01.03 12:0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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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IMF 대비”…복사비·활동비까지 줄이며 경영 효율화 주력

한국 경제가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잠시였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재계는 총수부터 임직원까지 위기 대응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해외 광폭 행보를 통해 돌파구 찾기에 분주하다. 직원들 역시 사무실 비품 사용비를 줄이는 등 경비 감소로 경영 효율화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현재 경제 상황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달러화 강세로 원화와 위안화, 엔화 등 아시아 통화가 약세를 보이며 제2의 외환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전문가들 역시 입을 모아 2023년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202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2022년 6월 내놓은 전망치인 2.5%보다 0.9%포인트 낮춘 수치다. IMF(국제통화기금)의 2.0%,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1.8% 전망치보다 낮다. 국내 경제가 마주한 대내외 경제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위기감이 높아진 국내 경제계는 ‘비상 경영’을 넘어 ‘생존 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새해부터 각 그룹 총수들은 글로벌 현장 경영을 가속화하며 대내외 경제위기 극복에 나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조주완 LG전자 사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등은 2023년 1월5일부터 8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3’에 참석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재판이 열리지 않는 틈을 타 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CES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람회이니만큼 글로벌 경쟁사의 사업 비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CES에 참석하는 총수와 주요 경영진은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미래 사업 구상도 함께 진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연합뉴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2023년에도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2022년 11월24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6단체 공동성명 모습 ⓒ연합뉴스

새해부터 CES·다보스포럼 참석 분주

1월16~20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에도 국내 총수들이 대거 집결할 것으로 보인다. 매년 1월 열리는 다보스포럼은 세계 정·재계 주요 인사가 모여 글로벌 현안을 의논하는 민간 회의다. 이번 포럼에선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는 물론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기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총수들이 글로벌 무대를 찾아 네트워크 강화 등으로 인플레이션 및 공급망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직면한 경제 상황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주요 인사와 마라톤 회동을 가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총수들의 해외 광폭 행보와 더불어 국내에선 고정비를 줄이기 위한 고강도 긴축 경영이 진행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사업장 복도 전등의 절반을 소등하고, 프린터 용지를 50% 절감하는 등의 비용 효율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생존 경영을 위해 단순 소모품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SK 역시 내년부터 임원 및 팀장의 활동비와 복리후생비, 업무추진비 등을 감축한다. 임원은 50%, 팀장은 30% 각각 줄어든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30인 이상 기업 24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 중 90.8%가 현상 유지(68.5%)나 긴축 경영(22.3%)을 실시하겠다고 답했다. 확대 경영을 택한 곳은 9.2%에 그쳤다. 긴축 경영을 실시하겠다는 기업 중 72.4%는 구체적 시행계획으로 전사 차원에서 원가 절감에 나선다고 응답했다.

또한 삼성 사장단은 2022년 12월26일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 모여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전략을 논의하기도 했다. 2022년 3분기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급락하는 ‘어닝쇼크’를 경험했다. 매출은 76조7817억원으로 3.79%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1.39% 급락한 10조8520억원에 그쳤다. 공교롭게도 3분기 실적을 발표한 2022년 10월27일은 이 회장이 승진한 날이어서 내부적 위기감이 더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지 않도록 각 계열사 사장단이 모여 실적 악화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주요 기업들 “마른 수건이라도 짜라”

금리 인상기 진입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기존 자산을 처분해 곳간에 현금을 쌓고 있는 기업도 많아지는 추세다. 기업대출 금리는 계속 오르면서 2022년 10월 기준 5.27%를 기록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한 2012년 9월의 5.3% 이후 최고 수준이다. 커지는 이자 부담과 강원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에 기업들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현금 모으기에 나섰다. 과거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으로 운영자금을 확보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이 냉각된 상황에서 상장이나 유상증자를 진행해도 제대로 된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힘든 탓에 짜낸 고육지책이었다. 지난 3분기 기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20곳의 현금성 자산은 250조262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아울러 비주력사업 정리와 부동산 매각 등 현금화 작업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고강도 긴축 경영에 나서는 모습은 마치 마른 수건을 짜는 것과 같다”며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곳이 대부분인데, 심상치 않은 경제 상황에 현재보다 더 큰 수준의 비용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기업 생존이 좌우될 정도의 위기니만큼 임직원이 합심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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