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다루지 않는 정치, 양당의 ‘적대적 생계유지 관계’ 때문”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2 12:0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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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치개혁’ 목소리 높이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금은 ‘전 국민 무(無)대표 상태’…일 안 하고 ‘혐오 경쟁’만”
“국민 버리는 정치에서 살리는 정치로…정치개혁, 이번엔 끝장을 볼 생각”

2022년 12월28일 여야와 시민사회단체 소속 100여 명이 국회 앞 계단에 모여 하나의 피켓을 들어올렸다. ‘소선거구제 OUT! 2023 정치개혁의 해’. 싸움만 지속하는 정치, 그 정치에 힘을 실어주는 지금의 선거 제도를 바꿔내자는 외침은 영하의 날씨 속에도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렀다.

“소신을 가진 좋은 정치인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2023년은 정치개혁의 해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를 바꾸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빠짐없이 목소리를 낸다. 국회 안에선 동료 의원들과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을, 당 밖에선 청년들과 ‘정치개혁2050’을 꾸리고 전국을 다니며 정치개혁의 공감대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그는 왜 이토록 정치개혁에 열심일까. 계단 앞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 의원은 “좋은 정치, 국민을 버리는 정치가 아닌 살리는 정치를 하고 싶다”며 “이번에야말로 정치개혁의 끝을 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탄희 의원실 제공

최근 여야가 지각 합의해 내놓은 예산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어떤 마음이었나.

“차마 찬성 버튼이 눌러지지 않아서였다. 과연 이 예산으로 2023년 한 해 우리 국민이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새해엔 서민들의 삶이 더 힘들어진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이미 1년 전부터 경고음이 울렸지만 여야는 어떠한 대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서민들에게 최소한의 방파제를 만들어줄 재원마저 되레 고갈시켜 버렸다. 국민에게 절실한 문제를 국회가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국회 내에 좋은 정치인, 소신의 정치인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국회의원 300명 중 나를 대표하는 의원은 하나도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금 정치는 ‘전 국민 무(無)대표’ 상태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비율이 대선 이후 크게 늘어났다. 특히 2030세대에서 이런 양상이 더욱 도드라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내 삶의 문제를 아예 다루지도 않는다. 거대 양당 모두 50대, 부산, 남성 국회의원 위주의 ‘오부남 정당’으로 불리고 있다. 의원들 평균 자산이 일반 국민의 5배가 넘는 22억원에 달하고 평균 연령은 56~57세다. 대한민국 평균 연령이 43~44세이니 거의 띠 동갑 수준이다. 여성은 세상에 나오면 절반이지만 국회에 들어오면 10%에 불과하다. 양당 모두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무당층을 증가시키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무당층이 많은데도 양당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극단의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적대적 생계유지 관계’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양당은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본업을 전혀 안 하고도 지난 1년을 통으로 버텼다. 1년간 일을 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상대를 공격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관계가 적대적 생계유지 관계다. 결국 혐오 경쟁인 셈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 자체가 ‘반사이익의 구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잘해야 선택받는 게 아닌, 차마 상대방을 못 찍게 만들어야 선택받는 구조다. 그 구조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

선거 제도를 바꾸고 정치개혁을 이루는 일, 결국 기득권이라 불리는 현역 정치인들을 설득해야만 가능한 일일 텐데.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큰물에서 경쟁하자’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양당이 소금물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큰물에서 경쟁하면 오히려 유능한 정치인들이 더욱 살아나기 쉽고 소신 정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설득할 수밖에 없다.”

소금물에서 큰물로 바꾸자는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지금 정치는 ‘버리고 가는 정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와 유사하게 이번 복합위기에도 정치는 서민층 다수를 그냥 버리고 가는 쪽을 택하고 있다. 매달 전세대출 이자 60만원을 내던 이들이 200만원씩 내고 있다. 전체 임금근로자 3분의 2의 실수령액이 200만원 선인 상황에서 대부분 한계에 내몰려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책은커녕 재정 자원을 부자 감세하는 데 써버리고 있다. 지난여름 침수로 부각된 반지하 거주자가 전체 20만 가구를 넘고,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 사는 청년들만 50만 가구에 이른다. 그런데 이번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광복 이래 최대로 감액됐다. 정치가 주거 취약계층도 버리고 가는 것이다. 호남이나 영남에서 40년 넘도록 후보를 찍고 또 찍어도 ‘내 대표’ 한 번 만들어보지 못한 이가 많다. 지금의 선거 제도는 이런 유권자들도 전부 버리고 가고 있다. 결국 이렇게 버리고 또 버리다 보니 남은 건 짠물만 남아 그야말로 소금물 경쟁이 돼버린다. 이제 버리는 정치가 아니라 살리는 정치로 바꿔 더 큰물에서 경쟁하자는 의미다. 내가 실력 있고 좋은 정치인이라면 큰물 안에서 더 많은 국민에게 선택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탄희 의원실 제공
2022년 12월28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여 ‘2023년 정치개혁의 해’ 선포식을 열고 소선거구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탄희 의원실 제공

이탄희가 생각하는 이번 정치개혁의 핵심은 무엇인지 말해 달라.

“역시 제도의 핵심은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선거구 획정 권한을 국민과 전문가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국민공론화위원회, 그리고 전문가들이 모인 선거구 획정위원회에 선거구 획정 전권을 줘야 한다. 그래야 게리맨더링은 사라지고 양당 현역 의원들이 나눠먹기 식으로 선거구를 찢어 갖는 일이 끝날 것이다. 2024년 총선 선거구를 획정하는 디데이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번엔 어떻게든 끝을 볼 생각이다.”

이토록 정치개혁에 열정인 이유도 묻고 싶다.

“좋은 정치를 하고 싶어서다. 올해 국민들 마음속에 깊게 남아있는 말이 ‘중꺾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잖나. 그런데 내년은 경제적으로 빙하기라서, 결코 꺾이지 않는 마음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핫팩 하나 가슴에 품고 가는 정도지,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살기 위해선 사회경제적인 여건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 일은 결국 돌고 돌아 정치밖에 할 수가 없다. 5000만 국민이 경제활동을 해서 만든 예산 600조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정하는 게 정치이고, 전국 공무원 100만 명에게 명령해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정치다. 정치를 움직여야만 우리의 여건을 바꿀 수 있고 다함께 빙하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좋은 정치를 제가 하고 싶고, 그래서 정치개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정치개혁을 반드시 성공시켜 국민들에게 300명 가운데 내 대표가 있다는 위안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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