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尹계’에 손 내미는 ‘非明계’…총선 전 합종연횡 가시화될까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6 14:05
  • 호수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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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내홍에 분당·창당 시나리오 ‘솔솔’…정계개편 주요 요건인 구심점과 돈이 관건

국민의힘 한 비윤(非윤석열)계 인사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인사들로부터 부쩍 전화가 자주 걸려 온다고 전했다. 전화를 건 인사들은 모두 비명(非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었으며 그중엔 현역 의원도 있다고 했다. 용건이 뭐였을까. 주로 각 당의 상황에 대한 위로와 격려, 한탄 등이 오갔고, ‘함께 당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비윤계 인사 역시 비슷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얼마나 구체적이고 진지한 제안이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비윤계 인사들이 털어놓은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정치권에서 간간이 나오고 있는 여야 각 당의 분당설 등 정치권 재편설이 아예 뜬소문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상황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까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냉정한 관측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출현 가능한 몇몇 변수에 의해 분당 혹은 그 이상의 합종연횡이 이뤄지는 등 정계개편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 또한 적지 않다.

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저들의 독선 계속되면 (분당도) 고민해야”

지금 국민의힘과 민주당 내에는 각각 주류와 비주류 간 전선이 꽤 첨예하게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중심의 당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친윤계와 비윤계가 대치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여러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비명계의 견제와 친명계의 외면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두 당 모두 계파 간 감정의 골은 서서히 깊어지는 양상이다. 산발적인 갈등이 공개적으로 불거지면서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이러한 상황이 각 당의 분당 사태로까지 발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요한 건 분당까지 이뤄지려면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커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에 못 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이미 조짐은 충분히 존재한다. 민주당에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고개를 더욱 치켜들 때마다 비명계의 반발 강도가 점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 대표는 성남FC 대가성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수사도 곧 이 대표를 향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추후 검찰의 기소, 구속영장 청구 등이 이뤄질 경우 원심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역시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계에 대한 비윤계의 불만이 상당하다. 내년 총선을 지휘할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의 룰이 ‘당심 100%’로 개정된 것과, 최근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조직위원장 심사에서 비윤계 인사들에 대한 ‘칼바람’이 분 것에 대해 의도적인 비윤계 배제 움직임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전당대회 룰 개정으로 인해 비주류 당대표 선출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가운데 국민의힘 비주류의 원심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당내 분위기에 대해 “친윤계가 아니면 마치 적이나 야당 보듯 하는 분위기로 (비윤계에게) 대놓고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정당이 이래도 되는가. 심히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단순한 갈등만으로 당장 분당까지 이르긴 쉽지 않다. 정치권에선 비주류들의 관심사가 결국 1년3개월가량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선에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에선 친윤계 차기 당대표가 공천을 주도할 경우 비명계와 비윤계는 모두 각 당의 공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차기 총선이 가시화되는 시점이 다가오면 분당이나 신당 창당 등이 활발하게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민주당에선 분당설이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박영선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한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민주당의 분열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26일 공개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지도부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전략적 실패를 했다고 본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민주당의 미래를 별도의 ‘투 트랙’으로 두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지금 이재명 지도부는 민주당의 미래에 대해선 메시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에 대해 “권력에 따라 ‘줄 세우기’ 하는 행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분당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라며 “2004년도에 민주당이 변화하지 않으니까 열린우리당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지금 또다시 민주당에 그런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박 전 장관은 이 대표가 공천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민주당처럼 공개적으로 분출되진 않았지만, 국민의힘 비윤계 내에서도 분당 등 추후 행보에 대한 고민이 감지된다. 한 비윤계 인사는 시사저널에 “분당은 이뤄져서도 안 되고 현실적으로도 어렵지만, 선거를 앞두고 저들(친윤계)의 독선과 이기주의가 계속되면 그땐 (분당·신당 창당 등의) 고민들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라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밝혔다. 또 다른 인사는 “분당이 이뤄질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친윤계가 아닌 사람들이 당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국고보조금 위해 비주류끼리 뭉칠 가능성

분당이 이뤄질 조건이라면 뭘 의미할까.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구심점이다. 분당이나 신당 창당을 위해선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필수적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정계개편에는 구심점이 존재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새천년민주당에서 나올 땐 노무현이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창당한 국민의당은 안철수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뒤집어 말하면 구심점이 없으면 분당도, 신당 창당도 어렵다. 그런데 지금 여야 비주류들의 고민은 마땅한 구심점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민주당의 친문(親문재인)·친낙(親이낙연)계 등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분주히 구심점 찾기에 나선 모습이기 때문이다. 친문계는 최근 2017년 대선 댓글 조작 사건으로 유죄를 받고 수감 중이던 친문 적자 김경수 전 지사의 출소에 고무적인 분위기다. 물론 복권이 없는 특별사면으로 공직 선거 출마 등은 제한되지만, 하나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아울러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일부 친문계 인사는 지난해 말 김부겸 전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등도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친낙계 의원들은 1월말 미국을 방문해 연수 중인 이낙연 전 대표를 만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윤계에선 윤석열 대통령, 친윤계와 각을 세워온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가 구심점으로 거론된다. 다만 당사자들은 여러 자리에서 분당이나 신당 창당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유 전 의원, 이 전 대표와 함께 과거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정치는 생물이라 변할 수 있지만, 두 사람 다 2017년 새누리당에서 나가 바른정당을 창당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상당히 강해 (분당을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조건은 돈이다. “밖에서 봤을 땐 바람만 불면 다 될 것 같지만, 돈과 조직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이상이라도 실현하기가 불가능해진다. 그게 지금까지 존재했던 여러 신당의 실패 원인이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던 인사의 말이다.

정당에 돈이 있으려면 국회 의석수를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정당 국고보조금 때문인데 중앙선관위는 의석수 등을 기준으로 매 분기와 선거 때마다 정당들에 국고보조금을 지급한다. 그 액수는 2022년 기준 총 1420억원에 달했다. 더 중요한 건 국회교섭단체(의석 20석 이상) 여부다. 분기마다 지급되는 경상보조금의 50%는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들에 우선 균등 배분되기 때문이다. 정치세력들이 신당을 창당할 때 참여하는 현역 의원의 수를 치열하게 헤아리고 진영을 넘어 합종연횡이 벌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은 최근 ‘민주당의 길’ 연속 토론회 등을 기획하며 결집하고 있다. 사진은 2022년 7월 비명계 의원 주축 토론회 모습 ⓒ뉴시스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제도 개혁도 주요 변수

이는 현 비윤계와 비명계가 각각 분당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고민 지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분당을 결단하는 현역 의원 수가 교섭단체 기준 의석수인 20석에도 못 미친다면 현실적으로 신당 창당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 비명계가 전화를 걸어왔다는 비윤계 인사들의 증언도 이러한 그들의 고민을 뒷받침한다. 차기 총선에서 교섭단체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비윤계와 비명계 등 뜻이 맞는 세력이 기존 진영을 넘어 제3지대에서 뭉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여러 현실적인 조건과 별개로 최근의 정치 환경과 구조의 변화로 인해 비명계와 비윤계가 뭉치는 등의 정계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권력의 교체기 이후 이렇게 단기간에 빠르게 여야 양쪽에서 모두 분당설, 신당설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구조가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특히 최근 여야의 양극단 정치에 지친 중도층이 힘을 축적하며 조직화돼 가고 있는 양상이 있다. 코로나19 상황의 장기화, 생계가 어려운 중도층이 뭉치면서 제3 세력의 등장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정계개편이 발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이러한 정계개편 가능성 관측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사안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2일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띄운 선거제도 개편 문제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고, 김진표 국회의장 등 여의도에서도 일부 화답이 나오면서 2024년 총선에 곧장 도입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선거구당 1명만 선출되는 소선거구제 대신 2명 이상을 뽑는 방식의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 정상적으로 개편되면 3당, 4당도 적지 않은 의석수를 확보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선거제도 개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신당 창당 실험에 상당한 승산이 생길 것이고, 현재 갈등이 있는 정당들도 분당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선거제도 개혁은 현 기득권인 현역 의원들의 반대 여론이 커 적어도 2024년 총선 전 실현은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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