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 완화가 만능은 아니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24 07:3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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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규제 완화 통해 집값 안정과 부동산 연착륙 기대
정책에서 소외된 사람도 같이 살펴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 중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영역은 아마 부동산 일 것이다. 반도체, 산업 혁신 등 미래전략도 중요하지만, 내 삶의 현재를 지켜주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지표는 부동산 가격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민 삶의 질 그리고 주거 안정을 위해 부동산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역설했다. 그래서 나온 정부의 처방전이 바로 규제 완화다.

집값 하락으로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 주목된다. 사진은 2022년 11월10일 정부의 규제지역 해제 발표를 지켜보는 한 공인중개사 ⓒ연합뉴스

정부 노림수는 다주택자 통한 공급 확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핵심은 규제를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에 있었다. 다양한 규제 조치를 통해 투기를 억제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쉽게도 규제를 통한 집값 안정화는 실패로 끝났다. 코로나19로 초저금리가 유지되는 외부 환경과 강남 지역 등에 대한 규제가 오히려 해당 지역을 고급 한정판(limited edition) 이미지로 각인시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기현상을 초래했다.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래서 늘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이들의 요지는 간단하다. 서민과 약자를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규제를 강화하면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실물자산 가격은 상승해 성실하게 적금, 예금을 해온 서민층은 더 가난해지고 규제 강화로 인해 다주택자의 주택 구매 의지도 현저히 약화돼 주택 공급은 줄어들어 중산층의 고통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 공급에 방점을 찍은 이유 역시 평소 주장해온 자유시장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전임 정부가 해온 규제를 푼 후 시장이 작동하면 결국 불공정을 느끼고 시장에서 사라졌던 다주택자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밀턴 프리드먼의 서적을 즐겨 읽었다고 강조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가장 나쁜 시장도 가장 좋은 정부보다 좋다’고 역설한 시장주의자의 레전드다.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는 결국 공급 확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급은 누가 맡을까. 해답은 다주택자다. 다주택자가 주택을 사들이면 집값이 다시 올라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장기적으로는 공급이 확대돼 집값 안정과 부동산 연착륙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주택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하고 나머지 주택은 모두 임대를 내주기에 전세가 하락과 집값 안정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부동산 문제의 모든 원인을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에 두는 이유다. 예를 들어 건설사는 주택 공급이 확대된다는 믿음이 생겨야 의욕과 생산성이 향상된다. 주택 공급은 돈 없는 서민과 중산층보다 다주택자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주택 보유, 양도소득세 등 관련 세금을 모두 인하하는 정책 방향 역시 다주택자의 공급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지난해 11월 ‘융합사회와 공공정책’ 학술지에 동국대 연구진이 발표한 ‘부동산 규제 및 완화 정책이 아파트 매매가격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살펴보면 부동산 규제 정책은 오히려 서울 및 강남 아파트의 매매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동산 완화 정책은 수도권 및 6개 광역시 아파트의 매매가격을 유의미하게 낮추는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연구의 시사점은 부동산 규제보다 완화가 시장의 순기능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시장의 순기능은 주택 거래 증가 그리고 경제 활성화로 요약될 수 있다. 다만,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라는 방향성이 경제 활성화엔 도움이 된다고 해도 이번 정책으로 경제 활성화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사람들, 이른바 무주택자를 위해서는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공급 확대가 누구에게 향하는지는 더 중요하다.

3주택 이상 다주택 가구는 국내 전체 가구의 3%에 해당한다. 3%가 공급을 확대했을 때 85%에 해당하는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에게 해당 공급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또 다른 이슈다. 부동산은 수요와 공급의 단순 원리로 풀어내기 어렵다. 실제로 공급이 확대된다고 해도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한 계층 역시 늘어난다면 공급 확대가 실수요 확대로 직결되지는 못한다. 시장의 사각지대는 항상 존재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은 전국 4.6%로 나타났다. 즉, 여전히 4.6%의 가구는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조건하에서 살고 있다. 해당 비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지만 여기에도 통계의 함정이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조사 대상엔 고시원, 컨테이너 등의 비주택은 포함되지 않는다. 반지하와 쪽방촌,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은 전국적으로 180만 명이다.

 

시장의 사각지대 살피는 정책 필요

주택 공급이 시장가격의 안정을 도모하는지에 관해서도 좀 더 정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2020년 ‘한국생활과학회지’에 게재된 ‘주택가격과 주택공급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서울시를 중심으로’ 논문에서는 서울과 같이 인구 유입과 투기, 투자 등 수요가 많은 지역에선 주택 공급이 주택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는 데 제한이 있다. 오히려 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과 출산율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시장의 불공정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그러나 늘 부동산 정책은 주택이 없는 무주택자와 세입자에게 불공정했다. 정부가 내세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와 공급 확대, 투자심리 회복은 다주택자에게는 공정과 상식으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빌라왕에게 피해를 본 다수의 세입자와 철옹성 같은 아파트 가격에 무력함을 느끼는 무주택자에겐 또 다른 불공정으로 다가올 뿐이다.

부동산 정책은 낙수효과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규제 완화의 장점을 논하기에 앞서 무주택자와 세입자의 안전망은 어떻게 확보해 나갈지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업무보고에서 어려운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는 것이 복지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옳은 지적이다. 주거는 무주택자와 세입자에게도 존엄과 가치 그 자체다. 규제 완화만으로 그들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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