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강타한 ‘김만배 로비 의혹’
  •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3 12:0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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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한국일보·중앙일보 간부 외에도 기자 로비 의혹 쏟아져

‘김만배 로비 의혹’에 주요 일간지 간부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리고 있다.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2021년 10월 검찰 조사에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가 2019년 5월 한겨레 기자 집을 사줘야 한다면서 나와 정영학에게 3억원씩 가지고 오라고 했고 실제로 줬다”고 진술한 바 있는데, 이는 허언이 아니었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당사자로 지목된 한겨레 편집국 신문총괄 석진환 기자는 2019~20년 아파트 분양대금 명목으로 김만배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9억원을 수표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목돈이 필요했던 석 기자는 법조기자 선배인 김씨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뉴시스에서 근무한 김씨는 2004년 6월 머니투데이에 입사한 후 대부분 사회부 법조팀에서 근무했다. ‘취재는 하지만 기사는 쓰지 않는 기자’로 유명했다. 두 사람도 법조기자단 인연으로 엮여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1월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타락한 진보언론’으로 전락한 한겨레신문

자사 간부와 법조 브로커 김씨 사이 거액의 거래에 한겨레는 이른바 공황 상태다. △법조팀장과 사회부장을 지낸 석 기자가 대장동 비리 의혹 보도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였다는 점 △당초 6억원을 빌렸다고 해명했다가 추가 3억원 전달 사실이 드러나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 △석 기자가 지난해 3월 김씨와의 금전거래 사실을 친한 후배이자 후임인 김아무개 사회부장에게 털어놨으나 김 부장은 이를 듣고도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드러나 매체 신뢰도에 직격탄을 받은 것이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조직이 도덕 불감증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개탄했다. 한겨레가 1991년 11월 ‘보사부 기자단 거액 촌지’ 특종으로 부도덕했던 기자 사회에 경종을 울린 언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타락한 진보언론’이라는 비난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겨레는 석 기자를 해고했다. 이 신문은 1월10일자 1면에 “한겨레신문사는 9일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와 금전거래를 한 전 편집국 간부를 해고하고, 김현대 대표이사와 류이근 편집국장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내외 인사로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가동해 석 기자의 금전 의혹뿐 아니라 보직 간부로서 대장동 기사에 미친 영향 유무 등 제기된 문제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석 기자가 9억원을 차용증도 쓰지 않고 빌렸다는 의혹과 돈 거래의 대가성 여부, 대장동 비리를 다룬 한겨레 보도 논조의 특이점 등도 진상조사위가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돈 거래 의혹은 비단 한겨레만이 아니다.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도 김씨 돈을 받은 자사 간부들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다. 직무에서 배제된 김정곤 전 한국일보 뉴스부문장은 2020년 차용증을 쓰고 이사 자금 1억원을 김씨에게 빌린 것이라며 이자를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고, 조강수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18년 김씨에게 8000만원을 빌려줬다가 2019년 이자를 합쳐 9000만원을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1월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김만배씨가 2020년 6월 조강수 전 위원 명의의 은행계좌로 1억원을 추가 송금한 사실을 파악했다. 조 전 위원은 같은 날 “회사에 더는 부담을 줄 수 없고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사표를 냈고 중앙일보는 사표를 수리했다. 이들 모두 사인 간 거래였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김씨와 억대 금전거래를 한 언론인들의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이 한겨레를 겨냥해 압수수색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이 김씨와 언론인들의 유착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관련 의혹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는 점은 언론계로선 뼈아프다. 김씨가 채널A 기자에게 명품 신발을 건넸다는 의혹, 김씨가 골프를 치면서 기자들에게 100만원씩 건넸다는 의혹, 화천대유가 전직 언론사 간부들을 고문으로 영입하고 급여를 지급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2021년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의 두 아들 계좌로 천화동인1호 자금 49억원을 보내기도 했는데 홍 회장은 그해 대장동 의혹이 보도된 직후 돈을 모두 갚았다. 홍 회장은 대장동 로비 대상자 명단인 ‘50억 클럽’에 언론계 인사로 유일하게 포함된 인물이다. 하나같이 언론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 악재들이다.

김만배씨는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간부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지회’ 통해 기자 관리…명품 주고 골프 접대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단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김만배씨는 본인이 관리하는 언론인들의 모임을 ‘지회’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떡밥을 던져주듯, 아파트를 분양받아 주거나 명품을 건네거나 골프 접대를 하거나, 상품권을 살포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기자들을 관리했다”며 “문제는 김만배씨의 목적을 가진 로비에 기자들이 아무런 경계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언론윤리강령은 또다시 무력화됐다”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일부 언론사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언론 전반의 문제”라며 “언론계는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부적절한 로비와 접대를 방지할 취재 보도 시스템을 전면 개혁하라”고 촉구했다.

한국기자협회는 반성문을 썼다. 기자협회는 “무겁게 반성한다. 어느 직군보다 존경받고 정의로워야 할 기자들이 언론윤리강령을 어기고 벌인 탈선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해당 언론사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합당한 징계 그리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한다”며 “해당 언론사의 진상조사가 모두 끝나면 기자협회 차원의 징계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SBS 기자 출신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언론윤리준칙을 멋있게 만드는 것보다 수시로 윤리적 목표와 중요성을 교육하고 이를 일상적으로 각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자 일선에서 은퇴한 이충재 한국일보 고문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자들 간의 상호 감시와 견제가 강화돼야 한다”면서 “그간 언론계는 다른 언론사의 문제를 가급적 다루지 않는 것을 관행으로 여겼다. 이런 동업자 의식이 언론계 자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국민들은 언론계가 자성과 성찰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너진 저널리즘 신뢰 회복을 위한 기자들의 성찰과 고민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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