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평범한 중식당이? 가라앉지 않는 ‘중국 비밀경찰’ 논란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7 12:0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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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세 지배인 왕하이쥔 “친미 세력 조작” 반발하면서 의혹 더 커져

중국이 해외 각국에서 비밀경찰서를 운영했다는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해외 인권단체가 한국에도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있다고 폭로했다. 인권단체는 국내 비밀경찰서의 위치를 밝히지 않았으나, 이후 서울 한강 변의 한 중식당이 ‘문제의 장소’로 지목됐다.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인권 탄압 행각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비밀경찰서를 통해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압박해,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시켰다는 것이다.

중식당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중식당의 실제 대표가 임원인 ‘오버시즈 차이니스 서비스 센터(OCSC·Overseas Chinese Service Centers)’를 통해서는 중국인의 본국 송환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상자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OCSC는 해외인권단체가 ‘경찰과 연결된 곳’이라고 지목한 곳이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시절 ‘여우사냥’(해외로 도피한 범죄자나 반체제 인사를 중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초법적인 작전)을 본격화하고, 홍콩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인권 탄압을 노골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는 세계에 퍼져있는 비밀경찰서를 통해 인권 탄압 및 첩보 활동을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비밀경찰서’ 국내 거점으로 지목된 중식당 동방명주 대표 왕하이쥔이 2022년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동방명주 앞에서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동방명주’-OCSC, 중국 비밀경찰과 연결?

중국의 비밀경찰서 의혹은 2022년 불거졌다. 스페인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지난해 9월 중국이 해외 21개국에 54개의 비밀경찰서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사안이 커진 때는 지난해 12월이었다. 2022년 12월5일자 보고서에는 한국 등 해외 48곳에서도 비밀경찰서가 추가로 확인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 세계 53개국, 최소 102곳에 ‘중국 해외 경찰 서비스 센터’가 꾸려졌다는 것이다. 유럽 18곳, 아시아 14곳, 아메리카 11곳, 아프리카 10곳 등이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이 비밀경찰서를 통해 중국인의 인권을 탄압했다고 보고 있다. 15개월 동안 23만여 명의 송환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부터 해외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나 범죄자 등을 잡는다는 ‘여우사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체제 인사나 그의 가족 등을 협박해, 당사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식이다. 인권단체는 전 세계에 포진된 비밀경찰서가 주요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한다.

국내에서 중국의 비밀경찰서로 의심받는 곳은 중식당이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동방명주’로, 한강 변에 위치했다. 외관상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중대형 크기의 중식당이었다. 동방명주 측은 안전진단 문제 때문에 올해부터 영업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동방명주 입구로 가는 길은 펜스로 막혀 있다. 1층 외에는 불이 꺼진 모습이었다. 이곳의 등기상 대표이사는 44세 여성이지만, 실제 대표 역할을 하는 지배인은 왕하이쥔(44·왕해군)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을 서울화성예술단 단장, HG문화미디어 대표,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 및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장, OCSC 주임 등으로 소개했다.

여기서 동방명주와 함께 주목받는 곳은 OCSC였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보고서에서 OCSC에 대해 ‘경찰과 연결되는 다리(bridges for police linkage)’라고 표현했다.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로 주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는 서울 구로구 단 한 곳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의 등기상 대표이사는 동방명주의 실제 대표인 왕하이쥔으로 나타났다. OCSC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인물 역시 동방명주의 임원과 동일했다.

전국 23곳 개설된 공자학원에도 의혹 번져

동방명주 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왕하이쥔은 지난해 12월31일 동방명주에서 열린 유료 기자회견에서 “(OCSC는) 질병이나 돌발적 상황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다친 중국인이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확하진 않지만 10명 정도를 돌려보냈다”면서 “반중 인사 송환은 전혀 없었고, 그러한 권한과 능력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는 ‘친미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도 비밀경찰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해 12월2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의 해외 경찰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일관되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하고 국제법을 엄격히 준수하며, 각국의 사법 주권을 존중해 왔다”고 했다. 이는 역으로 관련 의혹이 사실이라면, 중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고 내정에 간섭하는 등 심각한 국제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중식당 측의 중국인 송환 지원 역시 국제협약과 배치될 수 있다.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은 영사 외의 곳에서 영사 업무를 못 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 등의 해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되레 중국의 과거 인권 논란이 재조명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4년 부패척결을 선포하며 시작된 ‘여우사냥’뿐만 아니라, 홍콩 등의 사례도 있다. 2020년 6월 제정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테러 행위 △외국·외세와 결탁해 국가 안전보장에 위해를 가하는 경우 등의 범죄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정부 직속 국가안보국을 홍콩에 세우고, ‘국가기밀이나 공공질서’와 관련한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할 수도 있도록 했다.

이번 논란은 중국 공자학원 등으로도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 산하 교육기관이다. 공자학원은 홈페이지에서 기관을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교육기구’라고 소개한다. 공자학원은 2004년 서울 강남에 세계 최초로 설치됐다. 현재 전국에 23곳이 개설됐다. 공자학원은 매년 장학생을 모집해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중국 체제 선전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미국은 2018년 스파이 활동 혐의 등으로 공자학원을 수사했고, 영국은 지난해 공자학원 30곳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비밀경찰서 등 중국과 관련한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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