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의 마지막 작품 《정이》, 2194년 우주에 기록되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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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수연의 처음이자 마지막 SF작품
연상호 감독의 영화 《정이》, 20일 공개

배우 강수연(1966~2022)의 유작.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이렇게 수식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시작점에 강수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물의 사적인 이야기를 SF 영화로 구현하는 ‘쉽지 않은 그림’은 강수연으로 인해 비로소 그려졌다. 그렇게 강수연의 10여 년 만의 복귀작이자 마지막인 작품이기도 한 《정이》는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지옥》을 만든 연상호 감독의 첫 SF 연출작이라는 수식어와 맞물려 기대감을 키웠다.

강수연은 제작보고회에서 공개된 생전 촬영 영상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SF를 만들고 싶다는 연상호 감독의 말을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2194년, 인류가 지구를 떠나 정착한 우주의 ‘쉘터’다. 이곳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전쟁 영웅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한 뒤 기계 육체에 심어 생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이 연구의 책임자는 정이의 딸인 서현(강수연)이다. 영화는 서현의 심리를 따라간다. 죄책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살아가는 지적인 캐릭터는 강수연 특유의 목소리와 만나 몰입감을 선사한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서현 역을 맡은 배우 강수연 ⓒ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을 ‘《정이》의 시작과 끝’이라고 되새겼다. 연 감독은 《지옥》을 촬영할 당시 《정이》의 대본을 썼지만, 영화화하겠다는 의지는 크지 않았다. 서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SF 영화로 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현 역으로 강수연을 떠올리고 나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강수연의 “한번 해보자”는 말이 《정이》의 시작점이 됐다. 그는 “서현을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강수연 선배 이름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며 “처음 선배님과 통화를 하고 티셔츠가 땀으로 다 젖을 정도로 떨렸다”고 했다.

결국 연 감독이 《정이》를 기획하고 영화화한 원동력은 강수연이다. 강수연은 현장을 좋아하는 배우였고, 후배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연 감독은 말했다. 정이 역을 맡은 김현주는 “현장에서 선배나 어른이 아닌 동료로 있어 주셨다”며 “굉장히 열정적이셨고, 배우로서 고민도 많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 밖에서도 후배들을 많이 챙겨주시는 선배였다”고 회상했다. 류경수 역시 “선배 같은 어른이 되고 싶고,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며 “강수연 선배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큰 영광이었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적혔다.

강수연은 아역 배우 출신으로, 청춘스타이자 월드스타였다. 3살 때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1976년 이혁수 감독의 《핏줄》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영화 《깨소금과 옥떨메》(1982),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와 같은 하이틴 작품으로 당대 최고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송영수 감독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로는 그 해 대종상 여자 인기상과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6)를 통해 월드클래스 배우로도 도약했다. 이 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배우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역사를 썼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베를린 리포트》(1991),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3) 등 영화에서 도회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같은 작품에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연기했다.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에는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출연해 35%가 넘는 최고 시청률을 이끌었다.

강수연은 2011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이후 상업영화 출연을 중단하고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영화계 발전에 힘을 보탰다. 단편 《주리》(2013) 이후 10년의 공백기를 단숨에 메워내고 《정이》로 복귀한 그는 촬영을 마친 뒤인 지난해 5월 급성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정이》는 강수연의 유작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SF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 강수연의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에게 기억될 작품인 《정이》는 1월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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