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2023 채용시장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1.31 10:05
  • 호수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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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사업 채용 늘리는 5대 기업…조선·항공 업황 회복도 호재
“다양한 업종에 ICT 접목하면 채용 더 활발해질 것”

“올해 내내 신입 채용 한파일 거라는데, 조건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이라도 가야 할까요?” “불황 속에 기업 대부분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 이직하지 못할까 불안합니다.” 

채용 정보가 공유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요즘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글이다. 수많은 구직자나 이직 희망자의 불안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사람인 HR연구소가 기업 39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6.7%가 올해 채용을 지난해보다 축소 또는 중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업황 부진에 시달리는 국내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채용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월25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방문자들이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삼성전자, 신사업 인력 수급에 사활

그러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채용하거나(36.4%) 확대할 것(17.9%)이란 긍정적인 응답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마냥 절망적인 상황은 아닌 셈이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실제로 국내 주요 대기업 상당수는 올해 신(新)사업, 선행기술 개발 등 분야에서만큼은 채용을 줄이지 않을 계획이다. 아울러 일부 업종의 경우 오히려 채용을 크게 늘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계 1위 삼성전자는 DX(디바이스 경험)와 로봇 사업 분야 인력을 계속 증원해온 데 더해 자동차 산업 재편기를 맞아 전장(자동차 전기·전자장비) 엔지니어 구인도 활발히 하고 있다. 2월1일부터는 경력 채용 시 유관 경력 기준을 학사 학위 취득 후 ‘4년 이상’에서 ‘2년 이상’으로 대폭 완화한다. 국내외 빅테크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고급 인재를 빨아들이기 위한 전략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 직후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적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강도 높은 비용 절감 대책을 비롯한 ‘비상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회사의 미래와 직결된 기술 인재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겠다는 게 이 회장의 방침이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는 2026년까지 반도체와 신성장 IT,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고,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8만 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SK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재계 2~4위 기업도 대규모 신사업 투자와 인재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SK그룹은 2026년까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성장동력에 247조원을 쏟아붓고 관련 인재 5만 명을 뽑겠다고 공언했다. LG그룹은 배터리(소재 포함), 바이오, 인공지능(AI), 차세대 디스플레이, 전장 등 미래 성장 분야에 2026년까지 106조원을 투자하고, 5만 명을 채용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구체적인 채용 규모를 밝히진 않았지만 2025년까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주력 계열사를 통해 전동화·친환경 사업과 신기술·신사업 추진, 기존 사업 강화 차원에서 63조원을 투자하고 해당 분야 인재를 육성해 나가기로 했다. 

주요 기업 “위기에도 기술 인재는 안 줄인다” 

현대차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는 1월17일 세 자릿수 규모의 1분기 신입·경력 사원 채용을 시작했다. 전장·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SW), 애플리케이션 개발·운영, 모빌리티·커넥티드카, 기술 기획·영업 등 사실상 전 직군이 대상이다. 현대오토에버 관계자는 “자동차가 SW 중심의 차량으로 변화하고, 자동차 제조부터 판매까지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우리 회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의 채용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현대오토에버는 800명 넘는 직원을 뽑았다. 

신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포스코그룹도 인재 채용의 문을 활짝 열었다. 포스코의 IT·엔지니어링 계열사 포스코ICT는 지난해 말 정보보호 분야 신입·경력 채용을 진행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선 AI 분야 경력 인재를 구하고 있다. 소재 관련 신생 계열사인 포스코HY클린메탈은 2월 공장 가동을 앞두고 신입·경력 사원을 뽑아왔다. 방산과 친환경에너지를 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 중인 한화그룹은 지난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개발 인력 등을 포함해 통상 채용 인원보다 20% 이상 더 뽑았고, 올해도 신사업 관련 채용 규모를 늘릴 예정이다.

재계 일각에선 향후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사업 붐이 일어나게 되면 채용시장도 전반적으로 다시 활기를 찾을 거라 예상한다. 헤드헌팅사 유니코써치의 김혜양 대표는 “불황이나 산업 재편과 같이 당면한 이슈만 갖고 채용시장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고 단정하긴 힘들다”며 “산업계가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 시의적절하게 움직이면 미처 예상치 못한 채용시장 회복 기회도 충분히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론 구조조정되고 없어지는 일자리 규모만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관측했다. 

서울 중구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종로 지역의 대기업 빌딩들 ⓒ
서울 중구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종로 지역의 대기업 빌딩들 ⓒ시사저널 최준필

채용시장 회복, ICT 일자리에 달려

조선과 항공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특수가 사라진 뒤 실적 악화에 휩싸이고 인력 감축에 나선 기업들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수요 회복에 발맞춰 인력 충원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800여 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선발한 HD현대그룹은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의 채용 계획을 세웠다. 이미 1월9일부터 대규모 신입 공채를 진행 중이다. 채용 규모는 300~400명 수준이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계열사에서 ICT 전문인력을 뽑는 게 눈에 띈다. 또 다른 조선 계열사 현대중공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담당자를 모집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일반직 신입사원 공채를 3년 만에 재개해 100여 명을 채용했다. 경력 채용도 함께 진행했다. 코로나19에 필적하는 초대형 악재가 없는 한 조선·항공 업종의 채용 러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혜양 대표는 “올해 채용시장 기상도는 분명 ‘흐림’이지만, 먹구름 뒤 햇살 같은 기회도 엿보인다. 기회를 잡으려면 위기에 초점을 두지 말고 어떤 산업에 눈을 돌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나갈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대기업이든 중견·중소기업이든 적극적으로 신사업을 발굴하고 조선, 항공, 기계, 유통, 금융 등 전통 산업 분야에서도 ICT 관련 일자리가 속속 생겨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 IT·유통·금융·건설·식품 업종엔 ‘칼바람 쌩쌩’ 

지난해 하반기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서 시작된 인력 감축 바람은 국내 산업계로 순식간에 번졌다. 국내 IT 회사들을 비롯해 유통·식품·금융·건설 업종이 특히 직접 영향권에 들어갔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은 올해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실적 우려를 고려해 채용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필요 인력을 수시로 뽑아 높아가던 인력 증가율이 한풀 꺾였다. 네이버의 관계사 라인플러스는 아예 3월까지 채용을 동결하기로 해 화제를 모았다. 실적 부진에 떠밀린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말 창사 이후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같은 시기 롯데하이마트도 희망퇴직 대상자를 모집했다. 올해 추가적인 감원 조치가 나올 여지가 있다. 

희망퇴직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금융권이다. 지난해 말부터 국내 주요 은행이 줄줄이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5대 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에서 올해에만 3000명가량이 떠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향후 경기 침체가 더욱 심해지면 희망퇴직 조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예상에 기꺼이 퇴직을 희망하는 은행원이 부쩍 늘어났다. 최근 증권업계에서도 1위 미래에셋증권을 포함해 하이투자증권, 다올투자증권, 케이프투자증권 등이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계는 채용보다 당장의 생존이 절실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양이 힘든 데다 자금 사정도 여의치 않아 건설사 대부분의 경영 상황이 매우 안 좋다”면서 “대형 건설사든 중소 건설사든 신규 사업 축소와 비용 절감에 나서지 않은 곳이 없다. 폐업하는 회사도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식품업계 역시 채용 여력이 태부족한 현실이다. 이들 업종에 불어닥친 고용 한파는 실적 위기만큼이나 장기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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