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찬 성범죄자에 잔혹 살해된 주부…11년 만에 ‘국가배상’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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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2012년 8월 발생한 중곡동 살해 사건 국가 책임 인정
성범죄 등 전과 11범 서진환 관리 구멍…유족에 2억 배상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서진환이 2012년 8월24일 사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서진환이 2012년 8월24일 사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2년 8월20일, 두 자녀를 유치원 통학버스에 태우고 돌아온 길이었다. 집으로 온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건 흉기를 든 전과 11범의 성범죄자였다. 성폭행을 목적으로 가정집에 숨어든 서진환은 반항하는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뒤 끝내 살해했다. 

전자발찌를 찬 강력 범죄 전과자가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고, 살인까지 하는 동안 국가 감시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곳곳에 뚫린 구멍을 활용한 서진환의 범행에 국가 책임이 인정되기까지는 11년이 걸렸다. 

서울고법 민사19-2부(김동완 배용준 정승규 부장판사)는 1일 서진환에게 살해 당한 피해자 남편과 자녀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피해자 남편에게 약 9375만원, 두 자녀에게 각각 5950만원씩 총 2억원 가량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중곡동 살인 사건'은 2012년 8월20일 발생했다. 서진환(당시 43세)은 범행 당일 아침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30대 주부 A씨가 유치원에 가는 자녀를 배웅하기 위해 문을 열어두고 나간 것을 목격한 뒤 집으로 들어가 숨어있다가 귀가한 A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했다. 서진환은 강하게 저항하는 A씨를 무차별 폭행했고, 경찰 출동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대피하던 A씨를 붙잡아 목과 머리 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서진환이 2012년 8월24일 사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서진환이 2012년 8월24일 사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시 서진환은 위치추적용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그는 강간치상 등 전과 11범으로 출소 후 보호관찰소의 감시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A씨 살해 전  흉기를 구매하고 주택가를 돌며 범행 장소와 대상을 물색하고 다니는 동안에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경찰은 A씨를 무참히 살해한 서진환을 체포하고 나서야 그가 전자발찌 착용자라는 점을 인지했다. 특히 서진환은 A씨를 살해하기 불과 13일 전에도 대낮에 중랑구의 한 주택에 침입해 주부를 성폭행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중랑구 성폭행 범죄 현장에서 서진환의 DNA가 확보됐지만, 검찰과 경찰이 DNA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서진환은 체포되지 않았다. 

만일 당시 성폭행 범죄 현장에서 확보한 DNA로 서진환을 특정해 검거했다면 A씨 사망 등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유족들은 서진환의 범죄를 막을 수 있던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서진환 거주지를 관할하던 중랑경찰서는 특수강도강간죄로 7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서진환을 단순 '자료보관 대상자'로 잘못 분류해 뒀고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 범행에 앞서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인근에 전자장치 부착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교정 당국의 관리 부실 실태도 드러났다. 서진환을 담당한 보호관찰관은 재범 위험이 높아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는 그를 월 3회 이상 면담해야 했지만 그가 두 차례나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한 달 넘게 단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과거 서진환이 기소될 당시 법 적용이 잘못된 점도 짚었다. 유족 측은 서진환이 2004년 강도강간죄로 재판 받을 당시 앞선 강간치상죄 복역 후 출소 3년이 안돼 재범했기 때문에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으로 가중처벌해야 했는데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조기 출소했고, 불과 9개월 뒤 또 다른 범행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족이 요구한 국가배상 책임은 쉽게 인정되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은 수사기관과 보호관찰기관 공무원들의 직무상 과실과 서진환의 범행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2심은 국가의 잘못이 일부 확인되지만 '법령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일부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서진환이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자신의 위치정보가 전자장치를 통해 감시되고 있음을 인식했다면 이처럼 대담한 범행을 연달아 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라며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또 "경찰관·보호관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과 피해자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크며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며 유족 손을 들어줬다. 

한편, 중곡동 살인 사건으로 검거된 서진환은 2013년 4월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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