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보이지 않아”…민주당 비명계, 다시 칼 빼드나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3 12: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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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 낮추며 손 내민 이재명…딜레마 빠진 비명계 ‘일시적 휴전 상태’
대북 송금 의혹·당헌 80조 등 뇌관 남아…체포동의안 이탈표 우려도

“추운 겨울은 언젠가 반드시 끝날 거라는 희망이 있지만,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에 불어닥친 겨울은 끝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 뒤에 봄이 정말 올지도 확신하기가 어렵다.” 합리적 성향의 한 민주당 인사가 최근 사석에서 내놓은 한탄이다. 한 비명(非이재명)계 인사도 통화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표가 억울하더라도, 재판이 이어지는 것 자체로 당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방위적인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가 ‘겨울이 아무리 깊고 길다 한들 봄을 이길 수는 없다’며 열심히 당을 다독거리고 있지만, 여전히 당내 우려가 팽배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표는 최근 당내 비명계 등에 손을 내밀며 통합 행보를 하고 있으나 쉽사리 ‘단일대오’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블어민주당 대표가 1월10일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 내 “검찰 ‘스모킹건’ 없어” 공감대

이 대표는 성남FC 대가성 후원금 의혹,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등과 관련해 1월에만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는 두 번의 조사에서 모두 검찰 수사가 ‘정치 수사’이며 검찰이 애초부터 기소를 목적으로 답이 정해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1월28일 두 번째 소환조사를 마친 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면서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의 검찰답게 역시 수사가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진실 밝히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 기소를 목표로 조작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 측은 두 번의 소환조사를 통해 검찰이 의혹 관련 결정적 증거들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도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친명(親이재명)계 인사는 통화에서 “두 번의 소환조사에서 모두 검찰은 의혹을 입증할 만한 ‘스모킹건’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검찰이 심할 정도로 언론플레이를 통해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비명계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통화에서 “지금까지 검찰로부터 나온 내용들을 봤을 때 이 대표가 유죄라고 할 만한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해외 도피 중 검거된 후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입이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이 대표의 방북을 대가로 북측 인사에게 300만 달러를 넘겼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 사실이라면 이 대표에게 제3자 뇌물죄 혐의 등이 적용돼 성남FC 후원금 의혹, 대장동 의혹과 함께 이 대표를 위협하는 강력한 사법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 대표는 “검찰의 신작 소설”이라며 대북 송금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앞의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가) 연관된 사건이 너무 많고 계속해서 추가로 나오고 있는데 걱정이 크다”면서 “이 모든 의혹을 검찰이 다 꾸며내는 게 가능한지는 의문이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는 최근 당내 결집을 위해 애쓰고 있다. 검찰로부터의 사법 리스크만큼이나 당내 분열이 위협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행보에서 최대한 비명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 대표는 조만간 검찰의 추가 소환조사에도 응할 계획이다. 당초 이 대표는 두 번째 소환조사 이후 추가 소환조사에 더 이상 응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1월30일 기자회견을 통해 “모욕적이고 부당하지만, (대선) 패자로서 (검찰이) 오라고 하니 또 가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는 ‘수사에는 떳떳하게 응해야 한다’는 비명계의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됐다.

아울러 이 대표는 비슷한 이유로 민주당 의원들에게 자신의 소환조사 현장에 오지 말아 달라고 재차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1월10일 첫 소환조사 때 당 지도부가 대거 동행한 것을 두고 비명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이 대표는 ‘나 홀로 가서 조사받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번째 조사 때도 일부 의원이 현장을 찾았고, 이 대표는 1월30일 “이번(3차 조사)에는 정말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 오지 마시라”며 “갈등과 분열의 소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호소했다.

 

비명계, 총선 공천 우려에 몸 사리나

특히 이 대표가 1월31일 비명계 주축 모임인 ‘민주당의 길’ 첫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한 장면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민주당의 길은 지난해 7월부터 연속 토론회를 열어온 ‘반성과 혁신’ 논의체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 그동안 이 대표에 대해 쓴소리를 해왔던 이원욱·김종민·조응천·홍영표·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민주당의 길이 발족하면서 비명계가 본격 결집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해 “그러나저러나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많이 있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며 낮은 태도를 보였다.

비명계 역시 최근엔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을 되도록 자제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의 길 토론회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읽혔다. 토론회 참석자인 김종민 의원은 “토론회는 비명 모임이 아닌 비전 모임”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모여 설립한 정책포럼 ‘사의재’와 친문(親문재인)계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4.0’도 비슷한 분위기다. 이는 비명계 진영의 ‘이재명 딜레마’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대표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확실한 스모킹건이 등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비판했다가는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결국 사법 리스크를 극복할 경우 내년 총선 공천 불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대안이 부재한다는 점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비명계뿐만 아니라 대다수 민주당 의원에게 퍼져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친문 인사는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누가 공천권을 행사할지 몰라 이 대표에게 줄을 서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아닌 모습이 포착된다”며 “이재명 지도부가 흔들리긴 하겠지만 곧바로 붕괴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가면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도 다수가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비명계의 휴전 상황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관측도 있다. 예정된 여러 정치·사법적 상황 속에서 비명계가 다시 칼을 빼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장 지도부가 장외투쟁에 나서는 것에 대해 비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의 두 번째 검찰 소환조사 이후 장외투쟁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야권에 따르면 조정식 사무총장은 1월31일 각 의원실과 시·도당에 공문을 통해 2월4일 ‘윤석열 검사독재 정권 규탄대회’ 참석을 촉구했다.

이러한 지도부의 행보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도 이미 나오고 있다. 비명계 조응천 의원은 2월2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장외집회에 대해 “국민이 보시기에는 결국은 맞불을 놓고 방탄하기 위한 거 아니냐, 민주당 전체가 똘똘 뭉쳐서 또 방탄을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보실 수 있다”며 “하방식으로 주어지는 방침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방탄 이미지가 더 강해지고 국민이나 중도층으로부터 유리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조만간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또 하나의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소 자체만으로도 사무총장이 당직자의 당무를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당헌 80조를 두고 이 대표 거취에 대한 비명계의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명계 박용진 의원은 “당헌 80조는 당이 개인의 사법 리스크로 당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 장치”라며 당 규정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의 길’ 첫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차기 원대, ‘비명’ 전해철·이원욱, ‘친명’ 조정식 등 주목

다만 당헌 80조는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당무위원회 의결을 통해 예외로 할 수 있다. 당 대표는 당헌 80조의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해석도 친명계 진영에서 나온다. 친명계의 좌장 격인 정성호 의원은 1월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사무총장의 지휘하에 있는 당직자에 해당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정치 개혁 취지에서 마련된 조항이니만큼 이 대표의 경우도 책임 있는 자세로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최악의 경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인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비명계의 이탈표가 발생해 가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2월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될 경우 “100% 부결 또는 가결될 거라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고 최고위원은 “지금 당대표가 쓰러지게 되면 민주당의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같이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도 이 같은 현실적인 분석을 내놨다.

동아일보는 박홍근 원내대표가 1월31일 비공개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해 “(표결은) 자유 투표로 갈 수밖에 없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원내지도부가 신경을 써야 한다”며 표결 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고 2월2일 보도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하고 당내 갈등과 체포동의안 통과 가능성 등 여러 부정적 전망이 나오자 민주당 내 시선은 차기 원내대표 선거로 쏠리고 있다. 이 대표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원내대표의 비중이 점차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당대표 궐위가 발생하면 차기 원내대표가 그 역할까지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오는 5월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원내대표 선거 후보군이 비명계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비명계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전해철 의원과 김경협·박광온 의원 등 친문계 의원,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이원욱·안규백 의원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차기 원내대표 선거를 놓고 친명계에서도 고민이 깊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 대표의 최측근 정성호 의원과 현재 당 사무총장인 조정식 의원이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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