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전도연·이보영의 성공적인 귀환…여배우들의 연기 변신은 무죄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1 14: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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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이미지 변신 통해 새로운 매력 어필하는 전략 통해

사실상 중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배우들이 최근 드라마에 잇따라 복귀했고, 그 성적표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들을 잘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신이 주로 소비되던 이미지를 깨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멜로 퀸’ 이미지 벗은 송혜교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이 한 이 대사는 이제 하나의 유행어처럼 번졌다. 자신을 끔찍하게 괴롭혔던 연진과 그 패거리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해나가는 이 드라마에서 문동은은 연진에게 그렇게 편지를 쓰듯 독백을 한다. 그 말은 연진에게 닿지 않겠지만, 문동은은 그 독백으로 자신의 복수에 대한 일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설정과 거기서 나오는 대사가 인상적이어서였을까. 대중은 마치 저마다의 고단한 하루를 독백하듯 “연진아”를 붙여 밈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더 글로리》의 반응은 뜨거웠다. 멜로 드라마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김은숙 작가와 역시 ‘멜로 퀸’으로 불렸던 송혜교가 함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달달한 멜로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다크한 분위기의 문동은 역할을 연기하는 송혜교는 거의 웃지 않는다. 대신 학창 시절 끔찍하게 겪은 학교폭력으로 온몸에 화상 자국을 가진 모습으로,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는 가해자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를 선사한다. 지금껏 송혜교가 해왔던 작품들이나 캐릭터를 떠올려 보면 완전한 변신이다. 

송혜교는 《가을동화》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멜로의 결을 드러낸 후, 《풀하우스》로 한없이 귀여운 만인의 연인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그 후로도 《그들이 사는 세상》 《그 겨울, 바람이 분다》 《태양의 후예》 《남자친구》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 줄곧 멜로 퀸이라는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조금씩 결이 달랐던 게 사실이지만 대중은 송혜교 하면 멜로의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그건 연기자에게는 족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더 글로리》는 그래서 송혜교에게 중요한 작품이 됐다. 사랑이 아닌 저주를 쏟아내고, 달달함과는 거리가 먼 차갑고 낮은 목소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것. 그리고 그러한 변신은 대중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마치 억눌려 왔던 변신의 욕구를 마음껏 터트리고 보여주는 데서 나오는 시원함이 대중에게도 닿았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를 통해 보여준 송혜교의 변신은 우리네 업계에서, 특히 여배우들이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를 극복하고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물론 최근 들어 많이 달라지곤 있지만 여배우에 대해 틀을 규정하는 시선들은 여전히 완고한 편이다. 멜로 퀸 같은 대상화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그걸 잘하면 그 이미지가 굳어져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조금씩 나이가 들면, 굳어진 이미지를 탈피해야 하지만 그 고정된 이미지를 여전히 요구하기도 하는 대중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게 된다. 결국 방법은 송혜교가 보여준 것처럼 문동은 같은 자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 캐릭터에 도전하고, 이를 통해 기존 이미지를 깨는 것이다. 그것이 이러한 딜레마에 빠진 여배우들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tvN 《일타 스캔들》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일타 스캔들》의 한 장면 ⓒtvN 제공

가볍게 돌아온 전도연 

송혜교가 《더 글로리》를 통해 멜로 퀸이라는 이미지 탈피에 성공했다면, 전도연은 오히려 정반대의 행보가 눈에 띈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과 알콩달콩한 사랑에 빠지는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을 통해서다. 사실 전도연은 2005년 《프라하의 연인》 같은 멜로 드라마를 통해 사랑스러운 연인 역할을 연기하곤 했지만, 《너는 내 운명(2005)》은 물론이고 《밀양(2007)》 같은 영화에서 깊은 내면을 끄집어내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그 이미지가 한껏 무거워졌다. 특히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진 연기의 성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는 전도연에게 또 다른 의미의 족쇄가 된 듯 보였다. 무게감 있는 역할만 연기할 것 같은 배우로 인식되고, 그래서 그런 역할들만 선보이게 된 것. 2016년 《굿와이프》로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와서도 이런 이미지는 계속 따라다녔고, 《인간실격》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지만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일타 스캔들》은 그래서 송혜교와는 정반대 의미에서 전도연에게 중요한 작품이 됐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천연덕스럽게 잘도 소화해 내는 전도연의 모습은 그간 그를 짓눌렀던 필모그래피(필모)의 무게를 털어내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리고 여전히 러블리한 면면을 보여주면서 대중의 마음 또한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가볍게 몸을 푼 전도연은 《길복순》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제 어떤 역할을 해도 다 제 것으로 소화해 내는 대체불가 여배우의 탄생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JTBC 《대행사》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대행사》의 한 장면 ⓒJTBC 제공

여성들의 워너비로 선 이보영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의 고아인이라는 인물로 돌아온 이보영도 주목되는 여배우다. 한때 《적도의 남자》(2012), 《내 딸 서영이》(2013) 같은 작품을 통해 다소 보수적인 세계관 속의 여성 역할을 선보이기도 했던 이보영은 최근 선택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여성들의 워너비’로 떠오르고 있다. 

《마더》(2018)의 수진 역할을 통해 모성 그 이상의 여성 연대를 그려냈던 이보영은 《마인》(2021)의 서희수 역할로 역시 여성 서사의 여주인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대행사》는 이러한 이보영이 새롭게 그려가는 필모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가 이 작품에서 연기하는 고아인은 유리천장을 뚫고 나왔지만 여전히 공고한 남성 중심 사회와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기득권자들의 카르텔과 맞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여성들의 워너비이기도 하지만, 모든 을의 워너비이기도 한 고아인은 그래서 사회적 약자로 치부되는 이들의 히어로가 된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저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결코 그들 마음대로 자신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실력으로 보여주는 고아인이라는 캐릭터를 입고, 이보영은 차갑고 냉철하지만 그 버텨낸 이면에 남은 만만찮은 상처들을 연기해 낸다. 달라진 시대적 감수성이 요구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그는 자신의 필모를 통해 그려 나가고 있다. 

앞서 송혜교, 전도연 그리고 이보영의 사례를 보면, 우리네 사회에서 여배우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가 보인다. 많은 여배우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러블리한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송혜교가 보여준 것처럼 그러한 대중이 요구하는 이미지 안에서도 끝없이 새로운 성장을 모색해야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그걸 깨고 완전히 다른 변신을 해야 또 다른 성장을 꿈꿀 수 있다. 또 전도연이 보여준 것처럼,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으로 압도적인 연기력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때론 그 필모의 무게를 벗어버리고 대중의 편안한 눈높이로 돌아올 수 있어야 뭐든 가능한 연기자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보영이 보여준 것처럼 달라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들을 찾아내고, 그 변화에 맞는 모습을 연기에 녹여내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그만큼 우리에게 여배우의 성장은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걸 송혜교, 전도연, 이보영 같은 배우들이 실제로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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