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번지는 尹심…정부의 견제인가, 新관치인가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3 12: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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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입으로 본격화된 금융권 물갈이, 그 자리 꿰찬 대통령 사람들 

정부는 은행 등 금융지주사가 공공재이니만큼 일정 수위의 견제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이미 정부는 금융지주 등 소유 분산 기업의 경영 승계나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의 투명성 확보에 나선 상태다. 금융위원회 역시 이달 중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할 계획이다. 2020년 6월 정부가 발의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한 뒤 1분기 중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후속조치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2월2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건 ‘관치’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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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월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지주 회장 ‘황제 연임’에 제동 건 정부

윤 대통령이 직접 ‘관치’를 언급한 건 그동안 금융권에서 제기된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에 대한 비판과 무관치 않다. 특히 지난해 말 신한금융과 NH농협금융을 시작으로 BNK금융에 이어 우리금융까지 최고경영자가 모두 교체되면서 금융권에서는 ‘연임 불가’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금융지주 최고경영자들이 우호 세력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임기를 연장하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 행태를 이번 정부에서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최근 우리금융 회장 선거에서 ‘실력 행사’를 한 게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의결했다. 금융 당국의 중징계를 받게 되면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회장직 유지가 어려웠으나 손 회장은 연임 때처럼 소송전을 불사하고서라도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3연임 반대 기류가 커지고 금융 당국의 압박 강도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 3연임이 확정적이란 예상이 많았던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도 내정자 발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자진 사임 형식으로 용퇴 의사를 밝혔다.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관행에 부정적인 정부의 의중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로써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집권 시대는 사실상 종식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금융지주 최고경영자는 3연임, 4연임 등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체제를 구축해 왔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2012년 회장직에 오른 뒤 2015년, 2018년, 2021년 잇따라 연임에 성공(4연임)하면서 지난해 3월까지 무려 10년 동안 하나금융을 이끌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2014년 11월 취임한 뒤 2017년과 2020년 두 번 연임하고 현재 9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 초대 회장은 9년(4연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6년2개월(3연임)간 재임하면서 ‘직업이 CEO’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 연임’에 제동을 건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간 금융지주사는 국민 재산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투명한 지배구조가 필수였지만,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아울러 현직 최고경영자가 이사회를 장악해 감시 기능을 약화시켰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인사를 하면서 ‘참호를 구축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주요 금융지주 회장에 윤석열 캠프 출신 선임

하지만 금융권의 시각은 다르다. 또다시 ‘관치금융’의 서막이 오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먼저 금융 당국이 금융지주 이사회 운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엄연한 사기업인데도 정부에서 은행을 공공재라고 정의하며 당국이 사외이사 평가체계, 경영승계 표준안 등을 마련하고 주주환원 정책에도 간섭하는 등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과도하게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최근 선임된 금융권 수장 대다수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금융인맥’이라는 점에서 이런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 신임 회장과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먼저 이석준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 초창기 좌장을 맡았고, 이번 정부 경제정책 작업에도 관여했다.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임종룡 회장은 대선 캠프에서 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윤 대통령의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부의 초대 총리로 하마평에 오를 정도였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 회장에 임종룡이 선임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임종룡 회장과 이석준 회장이 절친한 관계라는 점도 주목된다. 두 사람 다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임종룡 회장이 우리금융 회장에 선임됐을 때 이석준 회장이 굉장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2021년 4월 임종룡 회장과 이석준 회장 등 경제관료 출신들이 저서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출간했는데, 이 책에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정책 밑그림이 담겼다. 두 사람은 금융권에서 ‘윤심(尹心)’으로 통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BNK금융 회장의 중도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를 꿰찬 빈대인 BNK금융 회장 역시 여권 인사로 분류된다. 부산 경성대 법학과를 졸업한 빈 회장은 1988년 부산은행에 입행했으며, 2017년 4월 은행장 직무대행을 거쳐 같은 해 9월 은행장으로 선임돼 2021년 3월 퇴임했다. 이후 빈대인 회장은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부산 남구청장 공천 과정에서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빈대인 회장은 윤석열 대선 캠프의 금융인 지지자 그룹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식과 채권 예탁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예탁결제원 신임 사장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최근 이순호 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이 내정됐는데, 이 실장은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 경제 분야 싱크탱크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비상임 자문위원도 지냈다. 인수위에서 경제 분야 국정과제 밑그림을 짰던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과는 대학 동기다.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인맥들이 주요 요직을 꿰차자 금융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먼저 우리은행 노조는 임종룡 회장이 내정되기 전부터 대립각을 세웠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 당국 수장이 연이어 우리금융지주 경영권 승계 과정을 지적해 손태승 회장 연임을 저지하더니 임종룡을 낙하산으로 밀어넣었다”면서 “그는 기획재정부 차관과 국무총리실장,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지금도 대형 로펌인 율촌에서 자문료 수억원을 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모피아”라고 꼬집었다.

예탁원 노조도 윤석열 대선 캠프 출신 사장 임명에 발칵 뒤집혔다. 노조는 “사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인데 ‘사전 내정’이 웬 말이냐”며 “공직을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친구 찬스’는 윤석열 정부의 ‘공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은행법 전문가로 알려진 이씨는 예탁결제원 주 업무인 자본시장과 전혀 무관하고, 행정 경험은 물론 조직에서 인사·예산 등 지휘·감독 업무를 한 적 없는 무명 연구원에 불과하다”며 “자본시장 5000조원의 국민 재산을 관리하는 창립 50주년 예탁결제원 사장 자리는 연습하는 곳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 금융인맥들의 자리 만들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오는 3월 주요 금융지주 사외이사 약 70%가 임기를 마치면서 신임 사외이사 후보군에 벌써부터 대통령직인수위와 캠프 출신 경제 전문가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는 정부 측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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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5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회장 후보 포함에 따른 우리금융 노동자 긴급 기자회견’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등의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개혁인가? 자리 나누기인가?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박익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권남훈 건국대 교수 등 대통령인수위 경제1분과 전문위원들이다. 박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하마평에 오른 법률 전문가다. 권 교수는 거시경제 분야뿐 아니라 규제 개혁, 플랫폼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가로 꼽힌다. 인수위 전문위원 출신인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또한 회계·세무 분야 학계 인사로 금융지주 사외이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민간기업인 금융지주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지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과거 은밀하게 금융권 인사에 개입했던 전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법제도를 활용해 공개적으로 인사 관련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특징이다”면서 “관치와 경제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정부와 금융권의 입장 차 역시 모두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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