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지만 간혹 타협도 해”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4 12: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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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에서 경찰 역할로 열연

배두나가 오랜만에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오랜 시간 국내외를 오가며 글로벌 스타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그는 지난해 영화 《브로커》에 출연했지만 해외 활동으로 국내 대중에게 인사를 하진 못했다.

현재 개봉 중인 영화 《다음 소희》는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2017년 1월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발생한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배두나는 극 중 소희의 시신이 발견된 후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형사 유진을 연기했다. 유진은 경찰서에서, 학교에서, 교육청에서 번번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어른들과 현실의 벽을 마주하면서 분노한다.

《다음 소희》는 아동학대 문제를 조명하고 두 여성의 연대를 그려 호평을 받았던 영화 《도희야》(2014)의 정주리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배두나는 《도희야》에서도 형사 역할로 처음 정주리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배두나를 서울 삼청동에서 직접 만났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최근작 중에 경찰 역할이 꽤 많았다.

“생각해 보니 《도희야》 《비밀의 숲》 《브로커》 《다음 소희》까지 다 경찰이었다. 이번 작품으로 쐐기를 박는 느낌이랄까. 하하.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감독님이 공직에 있는 역할을 만들 때는 바른말을 하거나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형사는 극에서 사건을 보는 역할이다. 어릴 때부터 관찰자나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는 역할을 적지 않게 했던 것 같다. 그게 나이가 있다 보니 ‘형사’ 역할이 된 것이고…. 어쨌든 그 모든 작품은 결국 내가 선택한 작품이다. 굳이 형사라서 피하지 않고, 차별화를 두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형사는 직업일 뿐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사람 혹은 제가 되고 싶은 이상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정주리 감독과 깊은 동지애를 느꼈다고 들었다.

“촬영 이전 그리고 이후에도 이어지는 감정이다. 사실 영화를 찍을 때 배우는, 촬영 시작과 끝을 오롯이 함께 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이 판을 깔아놓으면 중간 과정에 딱 들어가 연기만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한데 이번 작품은 감독님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다. 뭐랄까 동지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영화는 상업영화계에서 투자가 엄청 잘되거나 관객이 잘 드는 기대작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꺾기지 않는 마음이랄까. 옆에서 감독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감탄을 많이 했다. 타협하지 않더라. 꺾이지 않더라. 《도희야》 때보다 훨씬 리더십이 강한 모습을 보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변하지’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말씀도 적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다. 한데 이번엔 현장에서 배우에게 디렉션을 줄 때도 예를 들어, ‘그 연기 아니에요’ 하며 시원하게 주시는 모습을 보고 ‘와, 멋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하. 본인이 만들고자 하는 영상에 근접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일을 하시는 모습이었다.”

봉준호 감독도 그렇고 정주리 감독도 마찬가지다. 유명 감독들의 초기작을 늘 함께 했다. 정주리 감독의 경우 어떤 매력을 느꼈나.

“저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저는 정도를 걷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고,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크리에이터로서는 고집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말이 날카로운 것을 좋아한다. 감독님은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든다. 솔직한 마음을 내비치자면, 저는 그분의 영화를 엄청 좋아한다.”

정주리 감독이 나이로는 한 살 어린 것으로 알고 있다. 관계는 어떤가.

“저에게 있어 감독은 늘 어른 같다. 보스니까. 고용주라서 어쩔 수 없다. 하하.”

아까 얘기했던 정 감독의 강점들이 자신의 성향과도 비슷한지 궁금하다.

“닮고 싶다. 저는 고지식하고 좀 느리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긴 하다. 근데 그분들보다는 좀 타협한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 부분도 이겨 나가는 사람들이다. 저는 불의를 보면 어떤 때는 참는다. 하하.”

오랜 시간 톱배우로서 국외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비결이 있나.

“내 삶에서 촬영이 가장 우선이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만의 고지식함일 수는 있다. 영화제나 시상식보다 촬영이 우선이다. 촬영 때문에 칸영화제를 못 가는 것도 내 성격상으로는 당연한 일이다. 내가 고용을 당하고 있는 순간은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다. 그 마인드가 철저하다. 개인적으로 양심의 가책이 드는 일을 잘 안 하려고 노력한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업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적절히 분배하며 자유롭게 활동을 한다. 그러한 선택들도 고지식한 것의 일부인가.

“이번 영화는 후자인 셈이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고 싶다. 그게 상업적이고 블록버스터가 아니어도 무관하다. 다수의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를 해야 한다면 그것도 간혹 한다. 왔다 갔다 하는 게 저한테 도움이 되더라. 생각해 보면 외국에서 하는 작품은 대부분 재미를 추구하는 블록버스터가 많았고, 국내에서는 하고 싶은 작품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저도 드라마를 많이 하지 않나.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만 한다거나 저의 박스오피스를 위해 큰 영화만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작품 앞에선 계산을 하지 않는다. 어떤 시나리오를 보내도 재미있으면 한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배우다.”

혹시 연출에 대한 생각은 없나.

“전혀. 물론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유능한 감독님과 일을 하다 보니 나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더 작아지고 더 어려워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건,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나이가 드니 생각하는 게 많아진다. 20대 때는 생각이라는 걸 많이 했을까. 그때는 현재를 즐겼던 것 같다. 지금은 사색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한다. 그걸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막연하게 생각만 한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바람직한 어른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들에 다수 출연했다.

“저도 그 시절을 지나왔다. 청소년기와 20대 시절을 생각해 보면 막연하게 몰아붙여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럴 필요가 없고 마냥 행복해도 되는 나이인데도 말이다.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그 시기를 겪는 친구들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우리들 때보다는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되도록 참여하려고 한다. 뭔가 할 얘기가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사회 고발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마흔 중반쯤 되면 어릴 때보다는 걱정을 덜 하지 않나. 그 나이가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내게 ‘네 걱정이나 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 걱정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세트장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이 멋있다”는 말을 한 적 있다. 20년 넘게 톱배우로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나 자신이 기특하다. 20년 넘게 여기서 버티고 있지 않나. 워낙 배우 일을 좋아한다. 아직도 현장에서 ‘배우님 슛 들어갈게요’ 하는 말과 함께 현장에 걸어 들어가는 내 모습이 너무 멋있다. 하하. 배우 의자도 멋있고, 아직도 일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멋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해보자’라는 다짐을 늘 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참 좋은 직업이다. 굳이 내 입을 통해 얘기하지 않아도 영화를 통해 할 수 있고, 배우는 세트에 숨어서 찍기 때문에 짠 하고 나오는 드라마틱함도 있고, 쉬고 싶으면 쉴 수도 있다.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도 많다. 그 모든 게 재미있다.”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하고 있다. 환경이 지속적으로 바뀌고, 작품 속 세계관도 바뀌었다. 그럴수록 자기 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위태로웠던 순간에 어떻게 자신을 지켜 나갔나.

“어느 도시에 가도 저만의 루틴을 잘 따른다. 아침 일과는 늘 똑같다. 어딜 가도 일상처럼 지내려고 노력한다. 땅에 발붙이고 살려고 노력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누가 비행기를 태워 구름 위로 나를 올려놓으면 내가 나를 끌어내린다. 저를 끌어당겨 지하 밑으로 처박아 두려고 해도 내가 알아서 올라온다. 평소에는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집에서 저만의 페이스를 찾는 편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언젠가는 회식하고 들어왔는데 눈물이 나더라. 그런 쪽으로는 에너지가 없는 사람인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날 편안해하는지 배우게 되지 않나. 하이 텐션으로 나를 끌어올리다 보니 너무 힘들었던 거다. 그런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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