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논란에 좌불안석 정유업계…예사롭지 않은 ‘기부금’ 행렬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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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다퉈 하루 사이 360억원 기부
4개사 중 3개사, 예년보다 규모 확대
지난 12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지난 12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정유업계가 앞다퉈 기부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난방비 등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취약계층의 고통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도움의 손길이다. 그 규모도 전례 없다. 정유사들이 한 해 내놓는 기부금을 훌쩍 넘어서는 금액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에 성과급 잔치로 불거진 ‘횡재세’ 논란을 다분히 의식한 행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 4개사(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는 잇따라 기부를 공식화했다. 4개사가 기부하는 금액은 360억원이다. 각 사별로는 SK에너지 150억원,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가 각각 100억원, 에쓰오일 10억원 등이다. 기부금은 취약계층의 에너지 비용 등을 보조하는 데 쓸 계획이다.

정유사들은 이번 기부에 대해 정기적인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예년과 비교해 보면 그 규모가 대폭 늘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부 정유사들은 1년 치 기부금을 넘어서는 금액을 이번에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150억원을 쾌척한 SK에너지의 2021년 전체 기부금은 6억7000만원이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부금은 7억원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20배 넘는 금액을 한 번에 기부한 것이다. 다만 SK에너지의 2020년 기부금은 70억원이었다.

100억원을 기부한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2021년 전체 기부금은 66억8100만원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기부금은 22억4400만원이었다. 에쓰오일은 지난 2021년 총 6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쓰오일은 최근 취약계층과 복지시설 난방비 지원을 위해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 10억원을 전달했다.

이번에 저소득 가정에 난방비 100억원을 후원한 GS칼텍스는 2021년 총 337억원의 기부금을 낸 바 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부금은 332억원이었다.

이들 정유사들의 난방비 지원 명목의 기부금 행렬은 지난 8~9일 하루 사이에 쏟아져 나왔다. 연이어 이 같은 발표가 나온 데에 그만큼 ‘횡재세’ 논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지난해 정유사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고유가로 막대한 규모의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SK에너지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3조9989억원으로 전년보다 129.6% 증가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2조7898억원으로 155.1% 증가했고, 에쓰오일은 3조4081억원으로 59.2% 늘었다.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GS칼텍스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실적 속에 이들 정유사들이 기본급의 1000% 등의 성과급 잔치 소식이 전해지면서 횡재세 도입 논란은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

 

野 “화물노동자 등은 고유가로 고통…정유사는 역대급 성과급”

횡재세 도입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영업자·화물노동자 등은 고유가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고유가 호황을 누린 정유사들은 역대급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특수를 누린 소수 재벌 대기업과 ‘슈퍼 부자’들의 몫을 다수 국민과 나누자는 민주당의 횡재세 제안에 국민 과반이 찬성하지만 정부여당은 무조건 반대만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횡재세 도입에 반대 의견을 꾸준히 내놓은 바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횡재세 부과에 “적절치 않다”고 말했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유사가) 누진적 법인세를 많이 내서 (정부에) 기여하면 됐지, 기업의 이익을 좇아가면서 횡재세를 도입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기부는 상생 경영의 일환”이라면서 “취약계층이 조금이라도 난방비 부담을 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1월 난방비가 청구되기 시작하면 다시 횡재세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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