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들의 천국으로 변한 독도, ‘바다 사막화’ 급속 진행 중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8 16: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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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도 해역 30%가 황폐화…해양 전문가 “이미 임계점 도달” 경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섬, 작지만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섬. ‘한반도의 갈라파고스’로 불리는 독도에서 ‘기후변화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다. 바닷속 암반은 온통 하얗게 변했고 해조류는 자취를 감췄다. 텅 빈 바닷속, 하얀 바위에는 성게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바다 사막화(갯녹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갯녹음’은 탄산칼슘 성분의 무절산호조류가 암반을 뒤덮어 바닷속이 사막화되는 현상이다. 홍조류가 살아있는 건강한 바다는 분홍색을 띠지만 사멸 후에는 바닷속이 흰색으로 변해 백화현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해양학자들은 ‘해적 생물’ 성게가 독도 바다 사막화의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성게가 해조류를 닥치는 대로 뜯어 먹는 바람에 갯녹음이 확산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연안환경생태연구소와 인하대·경희대·국립수산과학원 공동 연구팀은 최근 ‘해양과학저널(Ocean Science Journal)’에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독도 해역에 서식하는 성게를 제거한 후에 해조류 숲이 되살아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독도 주변의 감태·대황·미역 등 해조류와 둥근성게·보라성게·말똥성게 등 성게 3종의 분포 범위 및 상관관계가 시간·공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폈다. 성게 제거작업이 본격화하기 전인 2006~17년과 본격화가 진행된 2017~20년으로 나눠 시계열 분석을 진행했다.

독도의 동도와 서도 사이 수심 20m 수중 바위에 서식하는 성게 ⓒ해수부·한국수자원관리공단
독도의 동도와 서도 사이 수심 20m 수중 바위에 서식하는 성게 ⓒ해수부·한국수자원관리공단

기후변화로 인해 성게 천적들 급격히 감소

우선 바다 밑 암반층의 해조류 피복률(덮인 비율)을 비교했다. 2017년 4월에는 21%였으나 2020년 5월에는 28%로 증가했다. 특히 조사 지점인 3구역과 19구역의 경우 2017년 10%에서 2020년 36%로 4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또 2017년의 경우 조사 지역의 50%는 피복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20년에는 20% 이하 피복률을 보인 곳이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성게 밀도의 하락만큼 해조류의 점진적 확장이 명확하게 관찰됐다”고 강조했다. 해조류가 되살아난 것은 성게 제거 덕분이고, 성게가 갯녹음의 원인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바다 숲이 건강하려면 성게 밀도를 ㎡당 2개체 이하, 혹은 ㎡당 140~150g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해마다 급증하는 성게를 일일이 잡아내 독도 바다의 사막화를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대체적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수온은 약 1.35도 올랐다. 같은 기간 0.52도 상승한 세계 평균 수온보다 2.5배 정도 높은 상승률이다. 수온 상승은 해양생태계를 뒤흔든다. 바다는 하나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뜨거워진 바다를 피해 북쪽으로 올라가고, 해조류는 녹아내려 종의 다양성이 급감한다.

독도 인근 바다를 점령한 성게의 출몰 역시 기후변화 영향이다. 국립생태자원관은 “따뜻한 제주 바다에서만 발견되던 의염통성게가 울릉·독도 해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며 수온 상승으로 성게의 북방한계선이 올라가면서 서식지가 동해까지 이동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성게 천적들도 사라지고 있다. 성게 포식자 돌돔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독도가 아열대 바다로 변하자 온대성 어종인 돌돔이 북상 중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성게를 잡아먹는 불가사리도 독도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미국 과학매체인 ‘라이브사이언스’는 “해수 온도 상승으로 캘리포니아 해안의 불가사리 개체수가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불가사리 소모 증후군(outbreak of sea star wasting syndrome)’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불가사리 소모 증후군은 불가사리의 혈관 손상과 조직 파괴를 유발해 며칠 만에 생명을 잃게 하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국내 해양 전문가들은 독도의 불가사리 감소도 이와 유사하며 온난화된 해양과 바이러스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바다에도 숲이 있다. 독도 해저에는 모자반·톳·미역·감태 같은 해조류와 해초들이 자라고 있다. 육지 숲이 그렇듯 바다 숲도 해양생태계의 산실이고 근간이다. 바다 숲은 해양생물에게 산란·서식처를 제공하고 탄소를 흡수하는 등 해양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구가 더워지고 바다 수온이 높아지면서 해조류가 녹아내리고, 남아있는 해조류마저 성게가 뜯어 먹고 있다. 

ⓒ해수부·한국수자원관리공단
성게가 해조류를 뜯어 먹고 있는 모습 ⓒ해수부·한국수자원관리공단
ⓒ해수부·한국수자원관리공단
성게가 해조류를 먹어 치운 뒤 바위가 드러난 모습 ⓒ해수부·한국수자원관리공단

수천억원 들인 ‘바다 숲 조성’ 효과 검증 안 돼

해양수산부는 매년 3000㏊씩 2030년까지 5만4000㏊의 바다 숲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1년까지 전국 연안 211곳에 2만6644㏊의 바다 숲을 만들었다. 투입된 예산은 3443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해역에서는 바다 숲 조성 전보다 해조류가 감소했다. 해저 서식 동물의 생체량도 오히려 줄어들었다. 녹색연합은 “원인 규명 없는 바다 숲 조성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갯녹음 해소의 근본적인 처방을 촉구했다. 

독도는 수심 2000m의 깊은 해저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화산체다. 그래서 독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수심이 급격하게 깊어진다. 때문에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에게 독도 연안은 ‘바다의 오아시스’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독도 바다에서는 80여 종의 크고 작은 어류가 태어나고 성장한다. 광활한 동해를 건너야 하는 철새들도 ‘징검다리 휴게소’ 독도에서 쉬어 간다.

그런데 최근 독도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 독도의 상징인 괭이갈매기의 알 낳는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동해의 수온 상승으로 괭이갈매기의 주된 먹이인 물고기들이 예전보다 일찍 독도 바닷가에 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열대성 어종도 독도 바다에서 쉽게 관찰된다. 난류의 힘이 점점 세지면서 해양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평화롭고 건강하게 보이는 독도 바닷속은 ‘기후변화’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해조류가 사라진 곳은 바다 해적인 성게들로 가득하다. 해저는 석회조류로 뒤덮여 갯녹음이 확산되고 있다. 독도에 드리운 갯녹음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현재 독도 해역의 30%는 바다 사막화로 황폐화됐다. 성게들의 천국으로 변해 버린 독도 바다가 생태적 회복력을 상실한 것인가. 해양 전문가들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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