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제국’ 향한 이수만·방시혁·김범수 ‘쩐의 전쟁’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9 16: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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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지분 14.8% 인수한 방시혁, SM 최대주주로
이수만·방시혁 vs 김범수·SM 경영진의 경쟁 구도로 압축

국내 콘텐츠 산업에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빼놓고 설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SM의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K팝이라는 킬러 콘텐츠를 토대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시장을 선점한 K팝의 선구자다. 20년 넘게 콘텐츠 업계의 수장이었던 이수만 프로듀서는 2021년, 자신이 보유한 주식 전량을 매각한다고 공개해 화제를 낳았다. 콘텐츠 산업의 장악을 위해 네이버, 카카오, CJ ENM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기업 경영과 경제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SM은 알고 있다. 소녀시대와 레드벨벳 H.O.T, 신화, 동방신기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K팝 아이돌 그룹뿐 아니라 《아는 형님》 《효리네 민박》 《놀라운 토요일》 등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방송 콘텐츠 분야로 영역을 확장,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기업으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다는 뜻은 바꿔 말하면 가장 막강한 파급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이브는 물밑에서 SM을 계속 주시해 왔다.

SM 인수는 예상외로, 아니 예상대로 지지부진을 거듭했다. 2021년 5월 네이버와 카카오가 SM의 인수에 나섰으나, 그해 10월 네이버는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밝히고 인수전에서 빠졌다. 이후 CJ ENM이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한때 유력한 인수 대상자로 거론됐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직접 이수만 프로듀서를 여러 차례 만났을 정도로 CJ는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 SM 인수에 올인했지만 끝내 이수만 프로듀서가 내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왼쪽)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왼쪽)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SM 매각이 난항 거듭했던 이유

하이브 역시 SM에 손길을 내밀었다. 네이버와 CJ ENM이 인수전에서 어려움을 겪고 카카오와 SM이 협상에서 난항을 거듭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하이브가 SM 인수에 나섰다는 소식도 업계에서 들렸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카카오보다 더 높은 인수 금액을 제시했지만 이수만 프로듀서는 하이브의 인수 제의를 곧바로 거절했다. K팝에서 SM을 밀어낸 하이브에 인수당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왜 네이버, CJ ENM, 카카오, 하이브 등 국내 굴지의 콘텐츠 기업이 내건 인수 금액을 모두 거절했을까. 적어도 콘텐츠 산업으로 영역을 국한했을 때 그가 지닌 위상은 대기업 오너 못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1996년 H.O.T를 시작으로 25년 넘게 국내 콘텐츠의 트렌드를 선도한 그는 인수전에서 을이 아닌 갑의 입장을 고수했다. 자신의 위상 그리고 입지 강화는 인수 금액보다 더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인수 금액보다 이수만 프로듀서의 개인적 요구가 훨씬 더 협상의 어려움으로 손꼽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콘텐츠 업계의 절대자인 이수만 프로듀서의 의중에는 높은 인수 금액+자신의 영향력 유지 등 정량적 조건과 정성적 조건이 함께 맞물려 있다. 보통 인수기업이 주연이 되는 M&A 세계에서 이수만 프로듀서는 스스로 주연이 돼 파트너를 골라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다. 네이버, CJ, 카카오, 하이브 역시 조연이 되지는 못했다.

콘텐츠 업계 주연의 자리를 고수해온 이수만 프로듀서의 입지가 흔들린 건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라이크기획과 SM의 계약관계에 태클을 걸기 시작한 이후다. 라이크기획은 이 프로듀서의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SM으로부터 매년 ‘프로듀싱’이라는 명목으로 인세를 지급받아왔다. 문제는 인세 기준이 SM의 매출액을 토대로 산정됐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인세는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산정돼야 한다. 매출을 토대로 기준이 산정되면 회사는 매출은 발생했지만 적자인 상황에서도 꾸준히 인세를 지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최근 7년간 SM이 라이크기획에 지급한 금액은 1000억원에 달한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점을 문제 삼았다. SM 주주들은 이로 인해 현금 흐름이 좋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이 프로듀서 중심의 지배구조는 개혁의 대상이 됐다.

SM의 전문경영인인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는 얼라인의 요구를 받아들인 후 이 프로듀서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이후 카카오를 전략적 파트너로 선정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분율을 낮추기로 결정했다. 인수전에서 주연의 입장을 고수해온 이 프로듀서가 조연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사회에 대한 영향력 상실과 함께 유상증자로 지분율까지 위협받게 됐다.

30년 가까이 주연을 해온 이수만 프로듀서는 조연 자리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가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인수 제의를 그간 거절한 것도 K팝의 주연은 자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수만이 K팝의 선구자라면 방시혁은 K팝을 글로벌 주류에 올려놓은 개척자다. 선구자가 경계해온 개척자와 손을 잡은 건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다는 뜻이다. 이 프로듀서는 보유지분 18.46% 중 14.8%를 하이브에 넘겼다.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시사저널 사진자료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시사저널 사진자료

카카오도 SM 지분 9.05% 확보

주당 12만원에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분 14.8%를 취득한 하이브는 3월1일까지 소액주주가 보유한 주식도 공개매수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전체 발행주식의 25%를 추가로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공개매수에 성공한다면 하이브는 1조1400억원을 동원, 39.8%의 지분율을 확보해 SM을 완벽히 손에 넣게 된다. 하이브가 SM을 인수하면 시가총액은 10조8000억원에 달해 카카오를 넘어 콘텐츠 업계의 제왕이 될 수 있다.

이수만 프로듀서와 방시혁 의장은 공동성명서를 통해 전략적 시너지 창출과 지속적인 지배구조 개선, 그리고 경영 선진화를 약속했다. 시대적 요구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대중에게 파급력이 큰 두 기업의 결합은 경제적 가치 이외에 사회적 가치까지 담보돼야 파급력이 지속될 수 있다. 이수만과 방시혁의 공동성명서를 지켜본 M&A의 귀재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셈법은 이로 인해 한층 더 복잡해졌다. 카카오는 SM의 신주 및 전환사채 배정을 통해 SM 보유지분을 9.05% 확보했다. 카카오가 이수만과 방시혁 연합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하이브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지분 공개매수에 나서는 것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1조2000억원의 투자유치도 받았다. 카카오의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역시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SM 입성을 위한 이수만, 방시혁, 김범수 세 창업자의 자존심을 건 합종연횡과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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