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 상업 연극의 성공 공식 녹인 《셰익스피어 인 러브》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9 13:05
  • 호수 17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펙타클한 비주얼에 상업성까지 장착한 연극…“VIP 티켓값 11만원이 아깝지 않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제작 쇼노트, 연출 김동연)가 화제다. 탄탄한 원작과 화려한 출연진 그리고 많은 제작비를 들인 대극장 라이선스 연극으로 일찌감치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혔다. ‘셰익스피어 사랑에 빠지다’라는 제목 그대로 인류 역사상 불멸의 러브 스토리로 유명한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본에 작가의 실제 러브 스토리가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상상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낭만이 보인다.

영화와 연극은 종종 장르를 넘나들며 서로가 서로의 원작이 돼 좋은 콘텐츠를 생산한다.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무수한 희곡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영화화되며 고전의 아름다움을 전달해 왔다. 이 작품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 창작한 영화를 다시 연극 무대로 옮긴 유쾌한 이야기로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2014년 초연됐다. 셰익스피어의 유려한 대사들 그리고 마크 노먼과 톰 스토퍼드의 영화 시나리오를 무대 언어로 바꾼 극작가는 영화·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연극 《광부 화가들》 《네트워크》, 영화 《로켓맨》과 《워호스》 등 화제작을 집필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리 홀(Lee Hall)이다.

원작 영화가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동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연극은 원작의 기조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무대 특유의 앙상블과 조역 배우들을 적극 활용해 빅토리아 1세 여왕 시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연극 종사자들의 애환과 세밀한 감정까지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슬럼프에 빠져 작품 집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대 신인 작가 셰익스피어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창작 열정으로 인해 큰 고민에 빠진 장면으로 시작된다. 셰익스피어는 당시의 연극 배경으로 인기가 많은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희극 《로미오와 에델, 해적의 딸》을 집필하려 하지만 이야기가 전혀 풀리지 않는다. 뮤즈가 필요한 그는 친구이면서 동시대 또 다른 유명 극작가이자 시인인 크리스토퍼 말로우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말로우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몇 가지 조언을 해준다. 한편 극장주 헨슬로는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을 연상시키는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에게 빚을 갚지 못해 살해 협박을 받자 셰익스피어의 차기작을 급히 제작해 빚을 탕감하겠다고 말해 버린다.

셰익스피어는 대본을 제대로 탈고하지도 못하고 헨슬로의 일정에 쫓겨 급히 배우 오디션을 열게 된다. 당시 여자는 배우가 될 수 없다는 차별이 있었는데, 시와 연극을 좋아해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모두 관람해온 여인 비올라는 남장을 하고 ‘겐트’라는 이름으로 오디션을 보고 당당히 주인공 로미오 역에 캐스팅된다. 그리고 켄트를 만나러 간 셰익스피어는 그녀의 저택 연회에서 본 비올라를 운명처럼 만나게 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비올라는 아버지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령에 의해 귀족 웨섹스 경과 정략결혼을 하고 버지니아로 떠나야 하는 처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진 셰익스피어가 이때 느낀 절망감을 대본에 투영해 코미디로 시작한 극이 절절한 비극으로 바뀌게 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4인조 악사가 장면 전환과 분위기 환기를 위해 연주하면서 고전 셰익스피어 희극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작품의 배경이 된 ‘로즈 극장’을 재현한 듯한 무대 장치도 대극장만의 시각적 포만감을 준다. 공연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은 안쪽으로 깊은 시야를 주는 무대를 가졌다. 상하 리프트를 이용한 빠른 전환도 가능해 아날로그 느낌을 주는 2층 규모의 세트가 장면마다 신속하게 바뀌며 극 중 무대 안과 바깥세상을 동시에 잘 표현하고 있다. 대학로 중심의 중소형 연극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스펙타클한 비주얼이 관객들로 하여금 시각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다른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장치들이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문학과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문학과 예술의 후원자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극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준다. 당시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후원자의 역할도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와 비올라가 만나는 발코니 장면에서는 《햄릿》에서처럼 ‘셰익스피어 소네트 18’이 등장하고 남장을 한 비올라의 모습은 《십이야》를 연상시킨다.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문끼리 지참금이 오가는 정략결혼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페트루치오와 케이트의 결혼을 떠올리게 한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공연 사진 ⓒ쇼노트 제공

연극의 묘미 맛볼 수 있는 작품

이 작품은 VIP 최고가 11만원이라는 높은 티켓 가격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뮤지컬에 버금가는 규모의 22명 배우가 대극장 무대에 서있고 시야가 탁 트인 관람 여건도 좋은 편이다. 묵직한 주제지만 지루할 새가 거의 없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상업성도 가졌다.

특히 남녀 주인공 셰익스피어와 비올라 역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른바 스타 캐스팅이다. 여러 매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이상이와 김유정의 호연이 러닝타임 160분(인터미션 15분) 내내 눈을 사로잡는다. 스스로 극 중에서 희비극을 넘나드는 셰익스피어 역을 맡은 정문성, 이상이, 김성철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하다. 또한 남자와 여자, 배우로서의 환희와 억압된 여성의 내면이라는 두 가지의 대조적이면서 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비올라 드 레셉스 역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정소민, 채수빈, 김유정이 나눠 맡는다. 셰익스피어와 비올라의 사랑이 만들어낸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법 같은 이면을 다룬 이 작품은 3월26일까지 계속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