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비판에 마일리지 재검토 들어간 대한항공…부채 줄이기 실패?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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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장관 발언 6일 만에 “고객 의견 수렴해 전반적 개선”
마일리지 소비 늘려 재무 개선 계획 수포? “소비자 편익 늘려야”
대한항공 여객기가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항공 여객기가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일리지 개편안을 놓고 ‘개악’ 논란이 거세지자 대한항공이 한 발 물러섰다. 고객 의견을 수렴해 개선한 개편안을 다시 내놓겠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개편안을 지적하고 나선지 6일 만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마일리지 개편으로 부채비율을 줄이려는 대한항공의 포석에도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다.

오는 4월부터 시행하려 했던 대한항공의 새 마일리지 제도 도입이 사실상 연기됐다. 대한항공은 20일 “마일리지 관련 현재 제기되는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개선 대책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대한항공은 현행 지역별 마일리지 공제에서 운항 거리에 비례, 국내선 1개, 국제선 10개 등 기준을 세분화해 공제율을 조정하기로 했다. 이에 장거리 노선의 마일리지 공제율이 높아지면서 일방적으로 마일리지 혜택을 축소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개편안 재검토에 나선 것은 정부·여당의 거센 비판에 이은 여론 악화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에 대해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고객은 뒷전인 것 같다”며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여당도 가세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공제 방안을 재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해명이 뿔난 여론에 불을 붙였다. 대한항공은 개편안이 단거리 고객에게는 더 유리한 구조라고 항변했다. 마일리지로 사용하는 보너스 항공권을 구매하는 고객 중 국내선 이용 비중이 50%에 가깝고 일본, 중국, 동남아 등 국제선 중·단거리까지 포함하면 76%에 달해 대다수의 회원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단거리 노선의 마일리지 사용 비중이 높은 것은 그만큼 장거리 노선의 마일리지 좌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불만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아울러 지금도 구하기 힘든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 확대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마일리지 차감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마일리지 제도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에 대한항공은 보너스 좌석 비중 확대 등 해결 방안을 국토부에 보고했으나 원 장관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에는 원 장관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건설사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는 못할망정 국민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놓았다”며 “이것(개편안)이 이것이 더 국민에게 유리하다고 가르치는 자세로까지 나오는 것은 자세가 근본에서부터 틀려먹었다”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열린 건설 현장 불법행위 근절 관련 원도급사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열린 건설 현장 불법행위 근절 관련 원도급사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일리지=국민 재산권…국적기 위상 맞는 결정해야”

마일리지 개편안이 사실상 원점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대한항공의 부채비율 축소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영업상의 이유로 항공사들은 마일리지 규모는 외부에 공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통상 마일리지는 회계 장부에 부채(이연수익)로 인식된다. 지난해 3분기 재무제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이연수익은 약 2조780억원이다. 코로나 이전 1조6000억원 수준이었다가 국제선 운항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부채비율이 늘어나면 금융권 이자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자금조달도 어려워진다. 특히 대한항공은 현재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을 준비 중이다. 이에 따른 자금부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마일리지 차감 폭이 큰 장거리 노선의 공제율을 높여 재무적 부담을 줄이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단거리 노선은 저비용 항공사(LCC) 등 선택권이 많지만 장거리의 경우 그렇지 않다”며 “장거리 여행 고객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결국 소비자만 손해 보는 개편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행, 카드사, 보험사, 백화점 등과 연계해 마일리지 적립을 유도해 놓고 이제 와서 기준을 바꾸려는 꼼수”라며 “마일리지는 다양한 경제활동으로 적립한 재산권이라고 법원에서도 명시한 개념이기 때문에 국적기 위상에 맞게 소비자 편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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