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근심을 하면서 지혜로워진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6 14: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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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문학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학자 김형석은 100세를 넘기고도 왕성하게 저작 활동을 한다. 1960년 출간된 《고독이라는 병》을 기점으로 하면 벌써 저술 활동으로 만 환갑을 넘겼다. 오십만 돼도 기억력 쇠퇴 앞에 나이를 탓하는 이들에게 신비한 분이다. 일본에도 나이가 든 저술가를 말하면 소노 아야코를 비롯해 적지 않은 이가 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런 작가가 국내에 소개된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중국 철학자 양장의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는 더 신비하고 독특한 느낌을 준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양장(煖嶺·1911~2016)은 중국 인문학계에서 어머니 같은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교육자다. 우선 첫 번째 인상은 중국 인문학의 거장인 첸중수(풀精蝎)의 아내다. 첸중수는 라오종이(후唎櫓)와 더불어 중국 당대 철학의 두 거두로 꼽힌다. 철학자, 작가, 저술가로 양장 역시 결코 뒤지지 않는데, 여기에 영문학자인 딸 첸위안(풀蜈)이 더해져 그 집안이 이룬 인문의 숲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양장 지음│슈몽 펴냄│320쪽│1만8000원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양장 지음│슈몽 펴냄│320쪽│1만8000원

한 인간의 담담한 생로병사

양장은 장쑤성 우시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둥우대학과 칭화대학에서 외국어 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학한 후, 칭화대 외국어학과 교수 등 교육자이자 저술가로 명성을 떨쳤다. 평생 저술에도 힘썼으며, 이번 책은 93세에 쓴 《우리 셋》에 이어 96세에 집필한 책이다. 

이 책에선 작가가 살아온 시대의 혜안과 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자신이 느낀 삶에 대한 키워드들을 전달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태어난 저자의 삶은 비교적 안정된 집이라 해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날에는 국공내전으로 나라는 불안했다. 38세인 1949년 해방을 맞았다. 이후 지식인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시기인 문화대혁명을 겪어야 했다. 

글은 자신이 생각하는 귀신에 대한 생각, 인간, 정신, 육체, 운명, 천명, 문명 등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작가의 말에 귀에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작가는 물론이고 남편과의 오랜 고민의 산물이 너무나 쉽게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들이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지만, 이렇게 쉽게 이런 가치를 말해 주는 기회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작가의 글을 관통하는 가장 큰 생각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날 인간의 본성인 영성의 양심은 짙은 안개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두뇌의 지력이 강할수록 자신과 남을 더욱 잘 속인다….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인간의 고결한 품성 속에 수없이 많은 저열한 근성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 황금도 뜨거운 불 속에 넣어 불순물을 걸러내야 순수한 금이 된다. 인간도 이와 같다. 걱정과 근심을 하면서 지혜로워진다. 고통을 겪은 후에 미덕이 생겨난다.”

아울러 책 후반에 있는 짧은 글들은 지혜로운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경험담 같아서 더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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