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하인리히 법칙’ 알아야 벼락거지 면한다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8 12: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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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결산 앞두고, 2022년 상장폐지 기업 살펴보니…
경영권 분쟁·잦은 주식 발행 등 ‘상폐’ 가능성 높아 

상장폐지는 주식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는 걸 의미한다. 그 여파는 한 기업의 존폐를 넘어 투자자들에게도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를 미리 예상해 자신의 피 같은 돈을 보호할 수 있는 투자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개미투자자는 그 반대에 가깝다. 이런 투자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사실 투자자들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주식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가 최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고금리 영향으로 상장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가 더욱 현명한 투자를 해야 할 시점이다. 시사저널은 2022년 증시에서 퇴출된 기업들을 토대로 상장폐지 징후에 대해 분석해 봤다.

서울 여의도 KRX한국거래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KRX한국거래소 모습 ⓒ연합뉴스

상폐 사유, ‘감사의견 거절’이 가장 많아

지난해 상장폐지된 기업들의 사유를 보면 ‘감사의견 거절’이 가장 많았다. 시사저널이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을 통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총 37개 상장사가 상장폐지됐다. 상장폐지 사유를 보면 △감사의견 거절(9개) △상장예비심사 청구서 미제출(9개) △피흡수합병(9개) △기업의 계속성 및 경영의 투명성 미비(5개) △상장폐지 신청(3개) △최종부도(1개) △유가증권 상장(1개) 등이다. 자발적인 상장폐지나 피흡수합병, 투자기구 회사들의 상장예비심사 청구서 미제출 등을 제외하면, 감사의견 거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감사의견(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은 감사인(공인회계사)이 기업을 감사해 그 내용이 회계 정보로서 적절한 가치를 지니는지에 관해 감사보고서에 의견 표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을 통틀어 비적정이라고 부른다. 만약 투자한 기업들에 이런 제목의 공시가 올라온다면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또 기업의 계속성 및 경영 투명성 미비도 상장기업들에는 치명적이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다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도 오는 3월 지난해 사업연도 결산을 앞두고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인한 상장폐지 주의보를 발령했다. 2022년도 사업 결산 시기가 도래함에 따라 상장사는 감사보고서를 외부감사인에게서 수령한 즉시 공시해야 한다. 특히 정기 주주총회 1주 전까지 주주에게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제공해야 하는데, 해당 감사보고서에 감사의견 거절 등 상장폐지 사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결산 시기에 예상치 못한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경영 안정성이 미흡하거나 재무 상태가 나쁜 기업에 투자할 경우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장폐지 기업들에서 공통적인 징후 나타나

그렇다면 지난해 어떤 기업들이 이 같은 이유로 상장폐지됐을까. 기업공시채널의 상장폐지 현황을 종합하면 △레드로버 △에이치엔티 △참존글로벌 △연이비앤티 △스포츠서울 △테라셈 △소리바다 △한프 △세영디앤씨 △현진소재 △지스마트글로벌 △뉴로스 △매직마이크로 △에스에이치엔엘 등이 기업 계속성 및 경영 투명성 미비와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증시에서 퇴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을 뜯어보면 모두 상장폐지 전에 몇 가지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먼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17일 상장폐지된 테라셈은 2021년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중단된 후 개선 절차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아무개 테라셈 대표와 경영진이 대규모 횡령·배임 사건으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상장폐지를 피할 수 없었다. 이 외에 스포츠서울, 연이비앤티, 에스에이치엔엘 등의 경영진도 횡령 이슈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기업들은 경영권 분쟁도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다. 지난해 9월7일 상장폐지된 음원 사이트 소리바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소리바다 실질적인 대주주 제이메이슨은 2020년부터 중부코퍼레이션에 소리바다를 매각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생겼고, 2020년 4월부터 경영권 분쟁 관련 소송들이 계속됐다. 회사의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소리바다는 결국 지난해 파산했다. 반도체와 LED의 부품 제조사 매직마이크로도 마찬가지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매직마이크로는 지난 5년 동안 대표이사가 무려 9번이나 교체됐다. 2019년부터 매각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상장폐지 기업들은 실적 악화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2월23일 상장폐지된 지스마트글로벌은 3년 연속 감사보고서에서 계속기업 불확실성, 내부통제 운용 미비 등으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이후 지스마트글로벌은 무상감자와 사업 정리 등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노력했다. 하지만 2021년 누적 매출이 17억원 수준에 그치며, 영업적자 1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그해 3분기 보고서에서는 매출이 전무했다. 세영디앤씨와 한프도 영업 손실 누적이 상장폐지의 주된 이유였다.

정리하면, 상장폐지 기업들은 대체로 △경영진의 횡령·배임 △경영권 분쟁 △장기적 실적 악화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처럼 상장폐지 기업들의 특징들을 사례별로 분류했지만, 사실 문제가 있는 상장사들은 이 같은 특징들이 연쇄적이고 복합적으로 발생하다가 관련 사유가 처음 발생한 지 3년 이내 상장폐지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유상증자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 등을 남발하는 기업들도 눈여겨봐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2017~22년 6월까지 상장폐지된 기업 75곳을 분석한 결과, 그동안 상장폐지 기업이 발행한 전체 사채 772건 중 주식 관련 사채는 409건, 유상증자는 359건이었다. 일반 상장기업들이 발행한 주식 관련 사채 및 발행보다 4.4배 많은 수치다. 이는 장기적인 실적 악화에 따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기자본 대비 대규모 당기순손실이 점차 확대되면서 결국 자본잠식 상태에 직면했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아울러 코스닥 기업들이 대부분 상장폐지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한국거래소가 코스닥에서 퇴출한 기업은 총 95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에서는 24개 기업이 상장폐지됐다. 특히 지난해 코스피 기업 중 경영진의 횡령 배임 등으로 상장폐지 심사대에 오른 기업은 한 곳도 없었으며, 대부분 코스닥 기업뿐이었다. 이 때문에 코스닥 상장기업들이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2022년 1월18일 오전 신라젠 주주연합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거래 재개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기업 내 작은 사고들도 눈여겨봐야

전문가들은 상장폐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찾아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 주식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1912년 침몰해 1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타이타닉호도 침몰 전에 여러 사전 징후를 보였다. 이처럼 하인리히 법칙을 잘 응용하면 반드시 부실 우려 혹은 상장폐지될 수 있는 종목을 걸러낼 수 있다.

종목이 상장폐지되는 것을 ‘대형 사고’라고 한다면 부실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투자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사고, 즉 상장폐지 조짐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최근 상장폐지 사유의 현황과 추세를 고려할 때 상장기업의 단순 외형뿐만 아니라 실질적 측면의 회계와 경영 투명성에 대해서도 각별히 관심과 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의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시 사항을 면밀히 살펴, 투자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증시 퇴출로 인한 기업 부담과 투자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정부는 상장폐지 요건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재무 관련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을 무조건 내쫓기보다 이를 실질심사로 전환해 향후 기업의 계속성, 사업성 등을 고려해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기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거래량 미달 등에 해당하면 즉시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됐다. 하지만 향후 기업은 상장폐지 사유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개선 기간도 주어진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부실기업들의 시장 퇴출을 막아 오히려 시장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급적 시장 잔류를 원하겠지만, 부실기업들이 주가 조작 등 투기 대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옥석 가리기를 하지 않은 채 부실기업들을 방치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투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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