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까지 차오른 방사성 폐기물, 처리 대책 시급하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8 11:05
  • 호수 17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용후 핵연료 증가로 포화 시점 1~2년 앞당겨져…7년 후 가동 중단하는 원전 나올 수도

7년 후인 2030년부터 가동을 중단하는 원전이 나오기 시작할까. 그럴 수 있다는 분석과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윤석열 정부는 탈(脫)원전에서 친(親)원전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그리고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 K택소노미에 포함시켰다. 당장 올해부터 원전 가동률이 높아진다. 그에 따라 사용후 핵연료도 그만큼 늘어나지만 저장시설은 포화상태다. 이대로 가면 원전 18기가 ‘올스톱’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시사저널은 방사성 폐기물의 저장 실태와 현주소를 짚어봤다.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내부 수조에 임시 보관 중인 모습 ⓒ원자력환경공단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내부 수조에 임시 보관 중인 모습 ⓒ원자력환경공단

사용후 핵연료 포화율 75% 이상

원전을 돌릴 때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고열과 강한 방사능 때문에 지정 장소로 옮겨 특별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는 영구처분장이 없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우리나라에는 51만5000다발, 1만8000톤의 사용후 핵연료가 원전 부지 안에 임시 보관 중이다.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포화율(저장량)을 보면 고리 85.9%, 한울 82.5%, 한빛 75.7%, 신월성 75.8%, 월성 75.1% 등으로 사실상 목까지 찬 상태다.

원전산업의 재도약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신한울 1호기가 지난해 12월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안전성 문제로 2017년부터 5년 넘게 가동이 중단됐던 한빛 4호기도 최근 재가동에 들어갔다. 신한울 2호기(9월 준공 예정)도 올해 가동을 시작한다. 지난해 말 계획예방정비를 마친 한빛 1호기는 가동 중단 113일 만에 가동을 재개했고, 신고리 2호기도 발전을 재개했다.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한 신한울 3·4호기도 올 하반기 착공한다. 새울 3·4호기, 신고리 5·6호기도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한수원은 올해 말 국내 원전 25기 중 최대 24기를 가동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재 원전 가동률은 80%를 넘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원전 가동률을 70% 초반까지 떨어뜨린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 정책 기조는 가동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1년 수립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안’ 대비 원전 비중을 당초 23.9%에서 32.4%로 8.5%포인트 상향 조정하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최근 확정했다. 

탈원전 폐기로 사용후 핵연료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설계수명을 늘리고 신규 원전을 더 지으니 방사성 폐기물이 증가하면서 저장시설의 수명이 단축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월10일 사용후 핵연료 포화 시점 재산정 결과를 공개했다. 한빛원전은 2030년, 한울원전은 2031년, 고리원전은 2032년에 꽉 찬다. 기존 전망보다 1~2년 단축된 수치다. 사용후 핵연료 발생량도 기존의 63만5329다발에서 이번 전망에선 79만3955다발로 15만8626다발 늘어났다. 이대로라면 7~9년 후엔 원전 18기의 가동이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격납건물 안에 설치돼 있는 습식저장시설로 옮겨 임시 보관된다. 대형 수조에 핵연료봉 다발을 넣어 방사능을 차폐하고 강제순환 냉각 방식으로 열을 식힌다. 고리원전 습식저장시설 용량은 8038다발이다. 설계수명대로만 운영해도 1만253다발의 폐연료봉이 발생한다. 저장할 그릇 사이즈가 턱없이 작은 데다 벌써 포화상태다. 고리 1호기는 이미 꽉 찼고, 2호기에 93.6%, 3호기에 95.7%, 4호기에 93.7%의 사용후 핵연료가 쌓여 있다. 한수원은 기존 저장 방식으로는 2030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조밀저장대(핵연료 간격을 줄여 전체 저장용량을 늘리는 장치)를 설치해 포화 시기(2032년)를 2년 늦추기로 했다. 급한 불은 끄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다른 원전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빛원전과 한울원전 저장시설은 8∼9년 안에 수명을 다하고 월성·신월성·새울원전도 순차적으로 포화될 전망이다. 다급해진 한수원은 2월7일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상태가 심각한 고리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기본계획(안)을 상정, 의결하기 위해서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고리원전 부지에 2880다발 규모의 저장시설이 추가 조성된다. 원전 내 지상에 경수로 건식저장시설이 지어지는 건 처음이다. 건식저장은 금속콘크리트 용기에 사용후 핵연료를 담아 방사선을 차폐하고 자연대류로 열을 식히는 방식이다. 한수원이 습식저장만으로는 원전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해 건식저장을 병행하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과 환경단체, 기장군·울산시의회 등은 즉각 반발했다. 한 원전 안에 두 가지 저장시설이 동시에 들어서면 방사능 유출 위험도 커지고, ‘임시 저장’을 가장한 ‘영구 저장’ 의혹이 짙다며 결사반대에 나섰다. 한수원은 습식과 건식저장은 임시 보관시설이 분명하고 영구 저장은 별도의 방폐장을 만들어 해결하겠다고 해명했지만 그 후폭풍은 거세다.

ⓒ탈핵부산시민연대
탈핵부산시민연대가 2월9일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 핵발전소 내 사용후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확정한 한수원을 규탄하고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

1978년 이후 방폐장 부지 선정 9차례 실패

사용후 핵연료는 반감기가 수백에서 수만 년에 이르는 고준위방사성 폐기물이다. 핀란드는 영구처분시설에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고 있다. 지하 500m 깊이 터널에 구멍을 뚫어 부식되지 않도록 설계된 처분용기를 밀봉해 거치한다. 여기에 완충재(벤토나이트)로 처분공을 채워 넣어 방사성 물질의 생태계 누출을 차단한다. 국제에너지기구(IAEA)가 안전성과 경제성을 입증해 권고하는 방식이다. 스웨덴과 프랑스, 미국, 일본도 2030∼40년에 영구처분장 운영을 목표로 건설허가를 신청하거나 부지 공모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적 논의조차 차일피일 미뤄왔다.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9차례에 걸쳐 방폐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2014년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경주에 건립했으나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은 주민들의 반발과 여론의 반대로 2009년부터 지금까지 공회전만 거듭했다.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됐지만 폭탄 돌리기는 반복됐고 사용후 핵연료는 쌓여만 갔다. 원인은 ‘님트(Not in My Term)’, 내 임기 안에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다. 방폐장 건설 계획이 충남 안면도에선 주민과 환경단체의 심한 반발로 취소되고 장관이 물러났다(1990년). 전북 부안에선 군수가 시위대에 집단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2003년). 이런 아픈 기억이 재발할까 몸을 사렸던 것이다. 

최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이 한국 원전 역사 45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문턱에 올라섰다. 여야 의원들이 3건의 법안을 내놨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위원회’를 만든 뒤 공론화를 통해 방폐장 예비 후보지를 선정하고 주민투표 등을 통해 부지를 확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제 겨우 공청회를 마친 상태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건설은 부지 선정부터 완공까지 37년이 걸린다. 지금 시작해도 2060년에나 가능하지만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고,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소극적이다. 특히 주민·환경단체·원전업계·정부 등 이해 당사자 간 소통 부재와 불신,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도 극복 과제다. 

7년 후, 국내 원전의 순차적 가동 중단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우려가 높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공간이 모자라 2016년 가동을 중단한 대만 궈성(Kuosheng)원전 1호기가 지난해 폐쇄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용후 핵연료 거버넌스 개편과 방폐장 부지 선정 로드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