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금리 인하 기대감이 부른 참극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7 13: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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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 치솟던 물가상승률 잡히기 시작했는데…인플레이션은 왜 빨리 안 잡히나

인플레이션이 쉽게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5.4%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상승률(5.3%)보다 높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1월 근원 PCE 가격지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올랐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6%다. 근원 PCE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가늠할 때 가장 비중을 두고 보는 지표로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에 따르면 유로존의 2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5.3% 상승할 전망이다. 통계를 집계한 1997년 이후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1월의 5.3%와 같은 수준이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은 2월 기준금리를 2.5%로 0.5%포인트 올린 데 이어 3월에도 0.5%포인트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최근 물가상승률 하락과 주가 상승에도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사진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영상 ⓒ연합뉴스

초강세 보이는 미국 고용시장이 원인

올해 초의 전반적인 기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그러니까 인플레이션 감속이었다. 지난 1월 금융시장은 미리 기대감에 부풀어 주가가 오르고 채권 금리가 하락했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도 2월1일 기자회견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을 15차례나 언급했다. 40년 만에 닥친 인플레이션 전쟁의 끝이 보인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업률이 올라가지 않아도 물가를 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시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국은 고용 사정이 너무 좋다. 높은 금리 수준에도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게 문제다. 지난 1년 동안 미국에서 새로 생긴 일자리는 450만 개였다. 미국의 고용지표는 여전히 폭발적이다. 미국의 1월 실업률은 1969년 이래 가장 낮은 3.4%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의 실업률 3.5%보다 더 떨어졌다. 공급망 문제와 우크라이나 쇼크로 하락했던 인플레이션 조정 임금은 반등하고 있다. 임금이 오르는데 물가가 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연히 서비스 물가의 상승이 우려된다. 마침 기름값도 다시 오르고 있고 미국의 중고차 가격도 상승했다. 초강세를 보이는 미국 고용시장의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이 빨리 잡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연준도 임금 상승을 인플레이션의 주된 요인으로 본다. 서비스 분야의 인플레이션은 고착화할 가능성도 있다. 유동성도 생각만큼 줄어든 것이 아니다. 대출이 늘어나고 있어 미국의 총통화량은 연준이 원하는 만큼 감소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여전히 돈을 풀고 있는 중앙은행도 많다. 미국 연준은 금리 인상과 함께 지난해 6월부터 채권 매각으로 통화를 환수하고 있다. 한때 9조 달러에 이르렀던 연준의 자산은 2월 현재 8조44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중국 인민은행과 일본은행, ECB는 반대로 지난해 10월 이후 거의 1조 달러의 유동성을 새로 투입했다. 미국 연준의 채권 매각 규모를 상쇄하는 수준 이상이다.

하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 크게 보면 물가 급등은 확실히 고비를 넘겼다. 미국 CPI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작년 6월 9.1%를 고점으로 7월 8.5%, 8월 8.3%, 9월 8.2%로 낮아졌고, 10월에는 7.7%, 11월 7.1%, 12월 6.5%로 하락 추세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여전히 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승 추세는 확실히 꺾였다. 무엇보다 망가졌던 공급망이 개선되면서 상품시장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 미국의 주택시장도 가라앉고 있다. 작년 6월경에 고점을 찍은 부동산 가격과 월세는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물가 상승이 고점을 지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였지만 한국은행은 2월23일 올해 전망치를 기존 3.6%에서 3.5%로 내렸다. 시장의 지나친 변동성은 디스인플레이션에 대해 너무 앞서간 기대감의 문제가 크다. 금리 인상이 멈춘다고 해서 바로 금리 인하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이 끝난 후의 최종 금리 수준은 현재 시장이 전망하고 있는 것보다 높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작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연준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췄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이 하향 경로에 있다고 판단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있기는 하나 아직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아직은 인플레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강화해야 하는 단계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금리 인상 속도만 줄어도 바로 금리 인하를 기대한다. 섣부른 기대감은 실망을 부른다. 지금 시장에 나타나는 충격은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쳤던 기대감이 조정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둔화도 없는 이른바 ‘노랜딩’(무착륙)에 대한 기대는 무리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사실 미국은 통화 긴축 여파로 이미 지난해 말부터 경기 침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비 증가와 낮은 실업률로 침체의 모습이 확연히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물가상승률 2% 달성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가상승률 하락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가상승률이 9%에서 5%로 떨어지는 것과 2% 달성은 다른 문제다.

 

경기 둔화 없는 ‘노랜딩’ 기대는 무리

불안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지금은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지만, 낮은 재고와 부족한 공급으로 인해 국제유가는 언제든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봉쇄됐던 중국 경제의 재개와 인도의 고성장도 부담스러운 변수다. 중장기적으로 유가를 비롯해 원자재와 상품시장의 수요를 자극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다시 높아질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가라앉는다 해도 당분간 3~4% 수준에 머무르면서 좀처럼 그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지났다. 하지만 완전히 잡힌 건 아니다. 연준은 아직 긴축정책을 끝낼 생각이 없다. 서비스 부문의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실업률이 높아져 임금 수준이 내려갈 때까지 금리를 올려야 한다. 금리 인상은 계속될 것이고 인상된 금리는 연말까지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연준의 자산 감축도 계속된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 연준의 자산 규모는 약 7조50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야 한다. 1조5000억 달러의 자산이 감소하는 효과는 0.75~1.00%포인트 금리 인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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